[227호-7] KBS형 유연근로시간제,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227호-7] KBS형 유연근로시간제,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9.04.18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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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여지책 혹은 언 발에 오줌 누기식 제도로 볼 수 있는

유연근로시간제는 근로자에게 절대로 유리한 제도가 아니다.

제도가 전격 시행되기까지는 앞으로 두 달 반 정도 남았다.

고려해야 할 사항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KBS형 유연근로시간제,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올 7월 1일부터 주 52시간 근로시간제가 시행된다. 1주(휴일을 포함한 7일) 법정근로시간인 40시간과 개별 근로자 동의에 따른 연장근로시간 12시간을 합해 52시간을 넘어 근로를 시키면 사업주가 구속이 되거나 벌금을 내야 한다. 우리 회사에서 주 52시간 근로가 가능할까? 가능한 부서도 있겠으나 대부분의 직원은 현재도 주당 68시간을 훌쩍 넘어서는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심하던 회사는 근로기준법을 꺼내 들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 아닌 배급적 근로시간제

궁여지책 혹은 언 발에 오줌 누기식 제도로 볼 수 있는 유연근로시간제는 근로자에게 절대 유리한 제도가 아니다. 평소 같으면 받았을 시간외 실비도 유연근로시간제가 도입되면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예를 들어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경우 한 달 이내의 단위 기간(우리 회사는 4주를 기본 단위로 산정할 예정이다. 총 근로시간은 208시간(소정근로 160시간+연장근로 48시간)이 된다.)을 기준으로 1주 평균 40시간 내의 근무(우리 회사의 경우 소정근로 160시간 이내의 근무)라면 어떤 날 12시간을 일하더라도 시간 외 실비가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그날 이후의 어떤 날, 평균값을 맞추기 위해 덜 일할 수 있을 뿐이다.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경우 근로기준법에서 따로 적용 직종을 정해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 회사 대부분의 직종에 적용이 가능하다. 현재로서는 극히 일부분의 부서(드라마, 예능 일부 PD, 일부 기자, 일부 촬영감독 등)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직종에 적용될 예정이다. 일이 몰리는 날에 많은 시간 일을 하게 되면 근로자가 시간 관리를 통 해 이후의 근로 시간을 선택해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될까? 정말? 현재, 업무를 배정 받아 근로가 이루어지는 직종의 경우,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말이 선택적 근로시간제지 ‘ 배급적 근로시간제’로 운영될 공산이 크다. 팀장, 혹은 부장의 경우 직원들의 근로 시간 관리를 위해 골머리를 썩어야 할지도 모른다. 깨알 같은 이야기지만 야간(22:00-06:00), 휴일(토, 일요일, 공휴일 등)근로의 경우 160시간 이내라도 시간외 실비는 등급별 기준단가의 50%가 추가 지급된다. 한 가지 다소 희망적인 이야기는 어찌됐든 단위 기간 평균 주당 52시간만 근무하면 된다는 것이다.

평균의 함정, 복불복 해외 출장 정액 실비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 것이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적용받고 있는 근로자가 해외 출장을 가게 된다면? 현재, 우리 회사의 경우, 출발 당일의 출국 수속에 드는 시간과 이동 시간, 도착 당일의 이동 시간 등이 시간외 실비 산정에서 제외되는 것을 차치하고라도 출장 기간 내 시간외 실비는 작년 한 해 시간외 근로 발생일 기준 1인당 약 40,000원, 전체 출장일 기준 약 20,000원이 평균적으로 지급됐다. 해외 출장의 경우 시간외 근로 시간이 1시간 적게 입력되는 것을 감안하면 3직급 직원을 기준으로 시간외 근로 발생일 기준 6시간에서 7시간 정도, 전체 출장일 기준 4시간 정도의 시간외 근로를 한 셈이다. 대부분 알고 있듯, 해외 출장의 경우에는 근로 지시나 감독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제한된 비용과 인원, 시간이라는 한계 상황 속에서 업무 강도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적용이 불가능한 상황. 이런 상황을 재차 고심하던 회사가 꺼내든 또 다른 유연근로시간제가 바로 ‘사업장 밖 근로의 간주근로시간제’다. 말 그대로 사업장 밖(해외만 해당, 지방출장은 제외 예정)에서 근로하게 되는 경우 몇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소정 근로시간(8시간)만을 근로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이런 제도가 말이 되냐고? 그래서 유연근로시간제가 근로자에게 불리한 제도라는 것이다. 다만, 회사는 출장 당일과 도착 일을 포함해서 전체 출장 기간 동안 위에서 살펴본 평균 20,000원을 상회 하는 수준의 정액 실비를 지급할 계획이다. 또 다시 깨알 같은 이야기지만 출장 기간 중의 휴일(토, 일요일)은 실제 근로를 하든 하지 않았든 대휴로 변환해서 출장 종료 후 사용하게 하되, 사용하지 않을 경우 지급되는 비용이 없는 미보상 대휴로 적용할 예정이 다. 논외의 이야기지만 미보상 대휴는 연차촉진제도의 경우처럼 호불호가 나뉘는 제도라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재량껏 무제한 근로?

아까 앞에서 ‘극히 일부분의 부서’를 이야기한 것을 기억하시는지? 그 부서에 속한 드라마, 예능 일부 PD, 일부 기자, 일부 촬영감독(야외 드라마 촬영) 등에게는 또 다른 유연 근로시간제인 재량근로의 간주근로시간제(줄여서 재량근로시간제)가 적용될 예정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간주근로시간제의 또 다른 종류이니 만큼 실제 근로 시간과는 상관없이 노사 간에 인정한 시간만이 근로 시간으로 인정된다. 사실상 우리 회사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이 직원들에게 회사는 기존의 시간외 실비를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재량근로수당을 지급할 예정으로 논의 중에 있다.

제도가 전격 시행되기까지 앞으로 두 달 반 정도 남았다. 회사는 회사대로 근로자는 근로자대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검토되어야 할 사항은 이 모든 제도의 시행은 사용자와 근로자대표 간에 서면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에 근로자 과반수 노동조합이 있으면 그 노동조합의 대표가 근로자대표가 되지만 없을 경우, 근로자 전체를 대상으로 과반의 동의를 얻어야 유연근로시간제도의 도입이 가능하다. 물론 회사는 7월 전까지 우리 회사에 과반수 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를 상정해 다양한 법적 보완 장치를 마련하려고 하고 있다.

법전의 한 구석에 조용히 자리만 차지 않고 있던 유연근로시간제라는 녀석이 오래 쌓인 먼지를 걷어 내고 이제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내딛으려 하고 있다. 이 녀석은 지금 자신이 어떻게 다뤄질지를 몹시 궁금해 하고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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