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호] 진실 실종의 시대, 저널리즘을 말하겠습니다.
[100호] 진실 실종의 시대, 저널리즘을 말하겠습니다.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3.03.0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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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김용진, KBS를 떠나며..

진실 실종의 시대, 저널리즘을 말하겠습니다.

1. 먼저 25년을 몸담은 KBS에 사표를 던졌습니다. 그 동안의 일들이야 알려졌지만 뭔가 변화를 택한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는지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뉴스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KBS에 계속 있는 건 뭔가 죄를 짓는 느낌이 들었다. 국민들이 낸 피 같은 수신료로 무위도식하고 있다고나 할까?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저널리즘, 사회적으로 중요한, 오로지 공공의 이익만을 위한 탐사저널리즘을 제대로 해 보겠다는 것이 내가 기자를 하는 유일한 이유다. 외형으로만 따지자면 그 걸 하기엔 KBS만한 공간이 없지만, 내 개인적으론 KBS 안에서 빠른 시일 내에 그 걸 더 하긴 힘들다고 판단했다. 다른 공간이 필요했다.

2. 정확하게 언제 입사해서 언제 사표를 냈습니까? 왜 KBS에 들어왔는지요, 당시 그리 잘나가던 언론사가 아니었을텐데?

1987년 11월, 대학교 4학년 때 입사했다. 그 당시 유행이던 ‘현장 투신’할 용기는 없었고, 그렇다고 대기업 들어가기는 싫고, 그래서 타협의 산물이 언론사였다. 마침 KBS 입사 시험이 87년 가을에 있었다. 언론사 첫 도전이었고, 시험 삼아 한 번 본 게 덜컥 붙어서 결과적으로 청춘을 KBS에 바치게 됐다. 입사 시점이 전두환 정권 말기였는데, 불과 몇 달 전만해도 KBS는 시위대들의 공격 대상이었다. 입사 당시에도 KBS는 여전히 전두환 방송, 관영방송이라는 이미지가 매우 강한 매체였다. 그 때는 언론지망생들이 지금처럼 많지도 않았고, KBS는 더욱이 언론지망생들이 선호하는 언론사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 같은 수준의 사람도 들어올 수 있었겠지.

2-1. 험난한 정국에 박사학위를 하셨는데 어디서 무슨 내용으로 했는지 알려주시죠.

2008년 9월 울산으로 발령이 나자 KBS 경영평가위원도 한 적이 있는 은사께서 동아대 박사과정에 등록하라고 강권하셨다. 논문 제목은 ‘이명박 정부 하 주류매체의 정보통제와 소셜 미디어의 대응’이다. 조중동과 KBS 등 지상파 메인뉴스가 쌍용차 사태나 4대강 문제 등에 대해 무보도(無報道) 또는 축소 보도로 일관하는 양태를 분석한 후, 주류매체가 외면한 이런 이슈들이 SNS 상에서는 어떻게 유통돼 나갔는지를 살폈다. 별 재미는 없다.

3. KBS에서 노조간부와 기자로서 몇 번의 징계를 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몇 번이나 되는지요.

떠난 마당에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만, 정직 2번을 받았는데 둘 다 글 때문이고, 서기원 관제사장 저지투쟁 참여로 견책 1번 받았다. 하지만 사장상 등 소위 모범 사원에게 주는 상은 그 보다 몇 배는 더 받았다. 심지어 태풍 중계차 보도로 대통령상까지 받았다. 대통령상은 나중에 정직 감형 받는데 도움이 되더구먼.

4. 김선배는 2010년만 해도 KBS에 대해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뒤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결국 박근혜정권의 출범으로 더욱 냉혹한 시기가 예상됩니다.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박근혜 정부의 인사 행태, 특히 윤창중, 김병관, 황교안 등을 지명하는 걸 보고 “무엇을 하든 상상이상이다”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3월 4일 특별담화 역시 형식, 내용, 분위기 모두 쇼킹했다. KBS가 문제가 아니라 이러다간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까 걱정된다. 어처구니없는 역사의 후퇴를 막고 대한민국이 제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여론을 전달하고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이 시기 KBS의 가장 큰 책무라고 본다. KBS에 대한 내 개인의 희망과 절망이 중요한 게 아니라 KBS가 얼마나 중요한 기관인가를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조중동 등 족벌언론, 언론재벌, 상업언론 등에 맞서서 공공의 이익을 수호해야할, 그리고 수호할 역량을 갖춘 유일한 언론기관이 KBS다. 비록 KBS에서 내 용도는 더 이상 없다고 판단돼 떠났지만, KBS는 국민들과 종사자들이 함께 지켜내야 할 가장 중요한 공공의 자산이라는 생각은 변함없다. 후배들에게 막중한 책임을 떠넘기고 가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 무겁다. 하지만 외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최대한 하겠다.

5. 지금이야 ‘탐사’라는 이름이 여기 저기 날아다닙니다만 2005년인가요, 처음 탐사보도팀을 만들 당시에는 ‘탐사’는 조금은 ‘지리적 탐험’의 냄새를 풍겼습니다. 그 때 왜 탐사를 만들었습니까?

초기엔 “탐사보도팀 아무갭니다”라고 전화하면 십중팔구는 무슨 탐사요? 라고 되물어왔다. 하지만 지금은 보편화된 용어다. 나름 보람을 느낀다. 탐사보도는 “사회개혁을 위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이슈를 언론인이 독자적 취재로 찾아내 보도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제일 크고 영향력 있는 언론사에 그런 탐사보도팀이 하나 있어야 하는 게 너무 당연한 것 아닌가? 너무 늦게 만들었고, 너무 빨리 해체돼 버렸지. 지금 후배들이 다시 살리고 있으니 반드시 부활하리라 믿는다.

6. KBS와 한국사회에 매체비평과 탐사저널리즘을 자리잡게 만드는데 역할을 하셨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지? 개인적으로 이 두가지 분야를 평가한다면?

여러 의기투합한 동료들과 함께 한 일이고 내가 특별히 기여한 건 없다. 미디어포커스와 탐사보도팀은 2003년부터 2010년까지 KBS 외부에서는 대체로 KBS의 공영성을 확인시키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내부에선 엇갈린 평가 속에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기억에 남는 일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들은 수두룩하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자. 저널리즘에서 매체비평과 탐사보도는 아무리 그 중요성으로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영역이다. 이유는 굳이 설명 않겠다. 흥미로운 것은 영미권의 저명한 탐사저널리스트들 중 대다수가 동시에 미디어비평가란 사실이다. 왜 그런지는 생각해 보시길.

7. 지금의 방송언론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 하나를 거론한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도나 거시의 측면에서 말이죠.

공영방송의 경우 무엇보다 인사권이 권력에 장악돼 있는 것이 제일 큰 문제지. 사장 하나 바뀌면 그 인사 체인 하에서 소위 미관말직까지 다 바뀌니...제도의 문젠 아니지만 그것 못지않은 문제가 내부 역량이 아직 제대로 축적돼 있지 않은 것이지.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공영방송의 기풍이랄까, 종사자들의 수준이랄까 이런 것들이 아직 아쉬운 부분이지.

8. 구성원이 갖고 있는 문제와 해법은 무엇인가?

아직 많은 내부 구성원들이 공영방송인으로서의 역할과 책임 등을 깊이 있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안타깝다. 언젠가 내부 구성원들로부터 KBS는 정부의 입장을 충실하게 전달하고 판단은 국민들이 하도록 해야 한다는, 정부 대변인의 대변인 수준의 얘기를 듣고 절망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이미 그런 신념이 굳어져 대화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정권이 아무리 바뀌고, 제도가 아무리 바뀌어도 내부에 이런 인식이 상존하는 한 KBS는 어렵다.

9. (개인적인 차원으로 넘어와서) 일단 학교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로 선택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형수나 애들의 반응이랄까)

대학에서 언론지망생들을 가르치고, 뉴스타파 대표도 병행할 것이다. 가족들은 내 결정이나 판단을 지금까지 대부분 지지해 준 편이고 이번에도 그렇다. 마음 편하게 해 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10. 새로 받게 된 월급 수준은 어떻습니까? KBS의 반토막? 공영방송이나 공정언론을 지향하는 언론의 급여가 종사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돈 얘기는 하지말자. 아이들을 늦게 봐서 이제 학비가 본격적으로 들어갈 시긴데 면목이 없었다. 사실 방송이나 메이저 신문의 높은 급여 수준은 거기에 소속된 언론인들의 사고나 취재 반경을 매우 제한하는 족쇄다. 일정한 경제적 수준에서 살림살이나 자녀 교육의 방식을 고착화시켜 놓으면 거기서 탈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대우가 낮은 언론사로의 이동도 힘들다.

11. 적지 않은 나이에 교수로 옮겼는데 뭔 특혜가 있지 않았냐는 의혹이 있습니다. 혹시? 학언유착의 모델이 될수있다는 지적이..^^

손해 보는 특혜도 있나?

12. 교수로서 첫수업(언제했는지)을 했을텐데 기자로서 리포트를 할 때와 다른 점이랄까 새롭게 느끼는 느낌이랄까 어땠는지요? 학생들한테 가르치고 싶은 내용은?

주로 탐사보도 분야를 맡게 되는데 교수와 제자라기 보단 선후배 관계라고 생각하고 지도하려 한다. 언론인은 사회의 목탁이자 소금이 돼야 하지만 길을 잘못 들면 사회의 암덩어리가 된다는 것을 우선 주지시키려 한다. 기능 전수는 그 다음이다.

13. MB정권의 언론장악과 막장불통에 맞서 <뉴스타파>가 태어났고 이제 제 2막을 가열차게 열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 2막의 주안점을 주고 있습니까?

뉴스타파에 대한 후원 열기는 우리 제작진들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다. 기대와 성원이 부담스럽지만 뉴스타파가 지향하는 비당파, 비영리, 독립언론 모델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이 공감을 획득한 결과라고 본다. 기성매체가 다루지 않는 부분, 다룰 능력이 안 되는 부분에 특화해서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토대로, 주권을 올바로 행사할 수 있게 미력이나마 기여하고 싶다.

14. 많은 시민들이 뜻과 재물을 모아 뉴스타파를 성원하고 있습니다. 부담감이랄까 상당할텐데요. 어떻습니까? 미디어관련 매체의 시선도 있고요.

13번 답으로 대체

15. KBS의 기자로서 25년을 보냈습니다. KBS에 대한 회한이 없을 수 없습니다. 내부자적인 외부자로서 KBS에 바랄 점이 있다면?

앞서 말했지만 한국 언론을 얘기할 때 KBS만큼 중요한 기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현행법도 그런 것을 규정하고 있다. KBS가 적어도 BBC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후배, 동료들과 힘을 합치고, 그런 수준까지 올라가는 것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되리라 믿고, 시청자의 입장에서 열렬히 성원하겠다.

16. 우리와는 세대가 다른 민주주의 세대의 기자 피디 등 KBS 구성원들이 성장하고 주축으로 자리잡아가고 잇습니다. 후배들에게 한마디 하시다면?

사실 후배들이 유일한 희망이다. 리셋뉴스의 민간인사찰 특종, 대선 때 십알단 특종 등등은 역시 공영방송 종사자로서의 투철한 신념을 가진 후배들이 일도 잘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사실 이들이 망가진 KBS를 겨우 지탱하고 있다. 무능하고 무지한 이들이 KBS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이 분할 따름이다. 하지만 훌륭한 후배들이 조직의 중추가 될 때 KBS는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17. 이제까지 받은 상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상과 그 이유는?

입사 3년차에 노동계 블랙리스트 디스켓을 폭로해 한국기자상을 받은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기자의 역할과 사명을 깨우치게 한 계기였다.

18. 환송회 언제할까요?

언제라도..

토크진행 : 복진선(뉴미디어기획부)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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