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호-8] 본부장 칼럼
[234호-8] 본부장 칼럼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20.04.2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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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장 칼럼

밥 굶기보다 체질 개선

  안녕하십니까? 길고 긴 코로나 19 사태에 대응하느라 모두들 정말 고생 많습니다. 그런데 다른 먹구름이 몰려옵니다. 많은 분들이 회사의 비상조치에 불안해 합니다. 비상조치의 방향은 직무 재설계, 재무적 위협에 대응이라고 합니다. 골자가 몸집 줄이기, 다운사이징으로 판단됩니다.

  국민들이 코로나 19 때문에 나랏돈으로 힘겹게 생활을 이어갑니다. 숙박업, 자영업자 등 사회적 거리두기에 직격탄을 받은 국민들이 수신료를 냅니다. 언론사를 비롯해 많은 곳에서 긴축조치를 하고 있습니다. 공사(公社)라고 해서 울타리 밖 위기를 모른 체하고 작은 변화조차 하지 않겠다며 버틸 생각은 없습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진심으로 변화를 이야기하겠습니다.

  사측의 혁신 역시 진심을 담은, 어려운 길이어야 합니다. 위기를 넘기 위해 인건비 줄이기가 가장 쉽습니다. 인건비 감축은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 그 본질을 덮습니다. 일률적인 인건비 줄이기가 얼핏 공평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비율이라도 임금, 연차가 낮은 직원 등 약자들에게는 감내할 수 없는 타격입니다. 

  2016년 이후 물가를 감안한 KBS 실질임금상승률 추정치는 –2.1%입니다. 직원의 희생이라는 단기처방으로 재정을 벗어날 수 있는 한계는 지났습니다. 직원의 고통은 위기를 벗어나는 수단이 아니라 위기 자체입니다. 경영실패가 인건비를 줄이는 손쉬운 조치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강력하게 저지할 것입니다. 

  인건비를 손대기보다 조직을 재구성해야 합니다. 밥을 굶기보다 체질을 개선하는 일입니다. 수익 창출과 공적책무를 하는 핵심 조직을 구분하여 도탑게 해야 합니다. 문제가 부서 간 기능과 성과의 불균형이었다면, 이를 해소하는 조치는 선별적이어야 공정합니다. 이제 KBS는 성과, 능력과 상관없이 고비용 조직을 유지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것은 열악한 환경에서 분투하는 그룹에게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혁신의 주체가 중요합니다. 작년에 전략기획실에서 전 사원을 상대로 아이디어 공모를 했습니다. 186건의 아이디어가 모였지만 한 건도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혁신 의지를 가진 사원들이 쏟은 시간, 공모를 진행하는 데 들어간 비용을 고려하면 큰 손실입니다. 각 본부가 공모의 주체가 되었으면 어땠을까요? 본부마다 절실한 혁신 주제를 정하고 공모된 아이디어를 실천했으면 작은 변화라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심사단계에 이르러서야 투입된 실무부서장과 아이디어 사이에는 방향과 수준, 실행 의지 면에서 접점(接點)이 없었습니다. 

  본부와 별도로 혁신추진부가 재구성되었습니다. 혁추부의 활동이 작년 비상경영계획과 유사하게 일과 비용을 조금씩 덜어내는, 마른 수건 짜내기 수준에 머무를까 걱정됩니다. “새로운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1000개의 회사를 만들었다 부숴야 한다”고 합니다. 코로나19가 부른 재정 위기가 아니더라도 경영진은 위기를 예측하며 각 본부가 혁신을 일찌감치 고민하도록 이끌어야 했습니다. 아쉽게도 각 본부는 혁신안에 대해 방관자에 머무는 형세입니다. 조직 논리에 함몰돼 변화에 장애물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제대로 된 혁신이 또 없다면 경영진의 리더십을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원들의 공감대는 혁신의 필수 조건입니다. KBS가 다른 부지로 이전하더라도, 그 구성원이 바뀌어도 여전히 공영미디어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공영미디어로서의 기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적책무를 다하겠다는 사원들의 정신 집합체가 바로 KBS입니다. 회사는 위기상황일수록 희생을 강요하기보다 비전을 보이며 정신을 한곳으로 모아야 합니다. 

  모두가 근무를 기피하는 전함이 있었습니다. 신임 함장은 선원 전원에게 만족스러운 것과 불만인 점, 그리고 전권(全權)을 가졌을 때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구성원의 답을 바탕으로 운용하니 무적(無敵)의 전함이 탄생했습니다. 경영진이 사원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혁추부라는 밀실(密室)에서 구성원들을 비용 면에서 저울질한다면, KBS호는 불화 속에서 방황할 것입니다.

  히노 에이타로라는 작가는 경계해야 할 사원 유형 중 하나로 하치코형 사축(社畜)을 꼽습니다. 하치코는 세상을 떠난 주인을 계속 기다렸다는 일본의 충견(忠犬) 이름입니다. 하치코 타입은 일개 사원 주제에 경영자 마인드로 일하며, 동료들에게까지 희생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회사에 대한 사랑도 짝사랑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사원들에게 회사가 침몰하려 할 때, 과감하게 배를 갈아타라고 합니다. 공영방송인의 정신 집합체인 KBS에서는 선택하기 힘든 길입니다.

  노조위원장이 변화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사축(社畜)이라고 비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KBS의 미래를 책임질 그룹과 약자, 그리고 구조조정 같은 극한 사태 방지를 떠올리며 진심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동료들과 변화의 방향에 대해 당당히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사측의 진심을 기대합니다. 사람이나 인건비를 줄이려고 하지 말고 강한 조직체를 만드는, 어려운 길을 감으로써 진심을 보이십시오. 필요한 근육을 집중적으로 단련해야 합니다. 직원들이 밥을 굶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본부장 유 재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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