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만평] 故 김세은 교수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송곳만평] 故 김세은 교수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20.06.1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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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 만평(漫評)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만평을 연재 중입니다. 

송곳 만평으로 과거를 덮고 왜곡하는 

말의 난장(亂場)을 꿰뚫겠습니다. 

 

송곳은 KBS의 역사를 기록하는 

가장 날카로운 기록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KBS본부가 전말을 밝혀주었으면 하는 일, 

속시원하게 다뤄줬으면 하는 사안을 알려주십시오. 

 

송곳 손잡이는 KBS본부 조합원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제보 메일 : kbsunion@gmail.com

 

 

지난 2017년 7월,

한 일간지에 실렸던 ‘파격 칼럼’을 기억합니다.

 

물러나라, 물러나라, 물러나라...

 

버티기로 일관하던

KBS 고대영, 이인호와

MBC 김장겸, 고영주를 향한 명쾌한 외침,

 

지난 15일 세상을 떠난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고 김세은 교수님은

올곧은 언론학자의 모범

이렇게 늘 행동으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독재에 저항하다 내쫓긴

동아투위 해직 언론인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듯이,

이명박, 박근혜 정권 하에서는

공영방송의 추락을 진심으로 염려하며

탄압받는 언론인들의 곁을 지켜주었습니다.

 

길어지는 파업에 지쳐가던 때,

직접 광화문 '릴레이발언'에 참여해 주시며

우리의 파업은 정당하다고

함께 목소리를 높여주셨던 일도 기억합니다.

 

“힘내십시오. 곧 좋은 결실을 맺어서

다시 국민의 방송으로

돌아와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제 말씀을 듣는 시민 여러분이 계시다면

공영 언론에 대한 관심과 성원을 부디 거두지 마시고,

꼭 함께 지켜봐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어떤 언론인보다 더 언론인다웠던,

그래서 스스로를 끊임 없이 되돌아보게 만들었던

故 김세은 교수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 지난 2017년 12월 12일, 광화문 릴레이발언에 참여하셨던 故 김세은 교수님의 영상과 발언 내용을 함께 공유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세은 강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KBS구성원이 아닌 외부자로서 처음 이 릴레이발언 순서를 맡게 돼서 부담이 크고요. 또 저를 아시는분들은 아시는데 제가 사진이나 영상에 찍히는 걸 극도로 싫어하거든요. 이번에는 그럼에도불구하고 100일을 맞은 KBS파업에 저의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자 용기를 내서 나왔습니다.

지난 9월 초부터 함께 싸웠던 MBC가 극적인 해피엔딩으로 파업을 접었고 KBS만 남게 되었는데요. 저는 KBS만 남았을 때 이제 가만있지말고 함께 뭔가를 해야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KBS 구성원들이 24시간 릴레이발언을 시작하는가 했는데, 7일 목요일 오후부터는 전국언론노조위원장과 KBS 새노조 위원장이 단식을 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다행히 어제 오후 방통위에서 강규형 이사의 해임을 사전 통지함으로써 사태해결을 위한 전기가 마련됐죠.감사원이 KBS이사들의 업무추진비 부당사용 감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해임결의를 한 게 11월 24일입니다. 무려 17일만에 방통위에서 그런 결정을 내린건데요. 아마 방통위로서는 여러가지 고심을 거쳐서 신중하게 처리를 한다는 판단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공영방송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또 KBS 이사들의 문제가 명백한 위법임을 생각할 때 모든 절차와 수순을 최대한으로 가져가려 하지 마시고 좀더 조속하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주시기를 촉구하는 바입니다. 

그런 마음을 담아서 제가 지난 10월 31일 한 신문에 썼던 제 글 일부를 읽어보겠습니다. (칼럼 낭독) 

“(중략)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부당한 압력과 통제,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아왔던 KBS와 MBC 구성원들은 처참하게 추락한 공영방송의 공정성과 신뢰도를 그저 ‘남 탓’으로 돌리지 않고 성찰의 기회로 삼았다. 

뒤틀린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정치권에 맡겨두고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그런 편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권력에 굴종하는 속성을 스스로 바꾸겠다고, 앞으로는 눈높이를 시민에 두겠노라고 반성하고 다짐했다. 

새로 출범한 정부여당과 방통위가 정치적 부담을 지지 않게끔, 공영방송을 장악한 인사들이 왜 당장 물러나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증거들을 수집하고 실체적 진실을 밝혀냈다. 

버티면 버틸수록 비리가 쏟아지고 빼도 박도 못하는 전횡과 불법의 증거들이 차고 넘치도록 줄줄이 나오고 있지만, 공영방송 사태는 여전히 뭔가 꼬인 듯 막힌 듯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공영방송을 정치 문제로 접근하는 관성이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고대영과 이인호 등은 임기 보장을 무기 삼아 굳건히 버티고 있는데, 방통위는 정부여당의 눈치를 보며 전면에 나서기를 주저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막장을 주저하지 않는데, 정부여당은 다른 정치현안들과의 연계 속에서 자유한국당의 눈치를 본다. 공영방송에 대한 인식의 한계도 간간히 드러나고 있다. 

파업에 대한 시민의 관심도 정점을 지난 듯하다. 공영방송에 대한 시민의 무관심이나 외면은 결국 여론을 조작하고 왜곡하려는 불순한 정치인을 배양하는 토양이 될 뿐이다. 정권 홍보방송으로 전락한 공영방송의 폐해가 고스란히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세월호 유가족의 절규는 잘 말해주고 있다.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 공영방송 구성원들이 하루 빨리 현장으로 돌아가 그들이 그토록 갈구했던 공정방송을 마음껏 구현할 수 있도록 방통위는 조속히 행동에 나서야 한다. 

어떻게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할 것인지 논의하고 제도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도 정비나 보완보다는 인적 청산이 최우선이다. 공영방송이 망가진 것은 언론을 도구화하려 했던 최고권력자와 그 공범자들, 부역자들 때문이었지 제도가 미비해서가 아니었다. 

공영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는 것은 더 이상 정치권의 몫이 아님을 분명히 해두자. 정치권은 큰 틀에서 법적, 제도적 지원을 하면 된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오롯이 방통위의 몫으로 넘겨주고 손을 떼야 한다. 방통위 역시 정부여당의 눈치를 보지 말고 오로지 그 설립목적대로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보장”하기 위해 주어진 권한과 책임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 정치권이 아닌 방송 종사자들과 시민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듣고 참여시켜야 한다. 정치권에 줄 댄 전문가나 시민단체들도 가려내어 배제해야 방통위의 정치종속을 단절시킬 수 있다.

방통위의 정치 독립은 방송의 정치 독립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방통위가 정치권에 종속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그동안 경험으로 생생하게 학습했다. 현 정부여당이 지난 정부여당과 뭐가 다른지 보여줘야 하는 것처럼, 방통위 역시 과거의 방통위와 뭐가 다른지를 제대로 보이고 증명해야 한다. 

장기전에 접어든 공영방송 파업은 그 시험대가 될 것이고, 방통위가 그 철학과 능력을 증명해야 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제가 이 글을 쓴지 벌써 40일이 넘었습니다. 

저는 KBS 구성원들이 다른 방식이 아닌 릴레이 발언을 하는 것이 대단히 의미가 있다고 보는데요. 공개적으로 무엇인가를 말한다는 것은 공, 퍼블릭의 성격을 갖습니다. 

지금까지 KBS 구성원들은 이 자리에서 주로 국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면서 자기반성과 앞으로의 각오 등을 말씀하셨습니다. 

국민의 성원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파업의 진정성이 전제되어야합니다. 진정성은 철저한 자기반성과 자기 이익의 희생에서 얻어질 수 있습니다. 

숨김없이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푸코가 말했던 파레지아(진실말하기)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285명의 KBS 구성원들의 발언에서 그런 진실성과 용기를 보았습니다. 

저도 연구자로서의 자기 반성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흔히 연구자는 연구로 말한다는 말을 합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현장에 나가거나 행동을 하는 것보다 한 걸음 떨어져서 거리두기를 하면서 연구하고 논문을 쓰는 것이 나름의 역할이고 할 일이다 그렇게 얘기하는거죠. 

학계에서는 학회가 성명서를 쓰는 것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이 많이 나뉩니다. 저도 한때는 연구자는 논문으로 말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성명서에 이름을 올리는 것도 정치적인 행위이고 청정한 중립의 지대에서 고고하게 연구자의 품위를 지키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당장 현실의 일에 관여하는 것은 운동가이거나 자리에 욕심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연구자라면 어느정도 시일이 지나서 이른바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한 시점이 되어서야 그에대해 이론을 기반으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태도가 어찌보면 깨끗함을 가장한 외면이라는 걸, 안이하고 비겁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걸, 그리고 그런 안이함과 비겁함에 대한 변명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알게됐습니다. 

우리가 민주주의와 언론에 대해 배웠던 것. 그리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과 다른 일들이 언론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그걸 모른척하고 지낸다는 건 이른바 지행합일이 안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무겁게 다가오기 시작한겁니다. 

이쯤에서 제 연구 관심에 대해 말씀을 드리는 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민주주의와 언론의 문제, 언론인의 역할에 대해 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고요. ‘언론은 곧 언론인이다’ 라는 생각으로 양지와 음지에 자리잡고 있는 두 부류의 언론인을 주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들을 연구함으로써 한국 언론의 특성과 지형, 역사 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음지의 언론인은 해직을 당한 언론인이라할 수 있고, 양지의 언론인은 정관계로 진출한 언론인 우리가 폴리널리스트라고 말하죠. 폴리널리스트들을 첫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동아투위와 조선투위 80년 해직언론인에 대한 연구를 2008년 2009년에 했는데요. 특히 동아투위 선생님들을 만나서 그 분들의 파란만장한 생애사를 접하면서 정치권력의 부당한 폭거에 30-40대의 젊은 언론인들이 하얀 백발의 70-80대가 되기까지 수십년동안 복직은 커녕 명예회복도 되지 못한 것이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제가 그 분들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무척 서글프기도 했고요. 말도 안 되는 비상식이 민주화 시기에도 바로잡히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저는 헤아리기가 참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YTN과 MBC에서 또 해직자들이 나왔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던 2008년 그리고 그 막바지였던 2012년이었죠. 2008년 가을 YTN에서 6명의 해직자가 나왔을 때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니 대명천지에 87년에서 20년 이상이 지난 시점에서 언론인 강제 해직이라는 똑같은 일이 일어나다니.’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지금이 어떤 시기인데 금방 해결되겠지’하는 안이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2010년 여름 부터 1년 동안 안식년을 다녀왔고요. 안식년 다녀와서 2011년 가을부터 언론학회에 연구이사로 학회일을 하게됐습니다. 

동시에 방송학회 추천으로 KBS 뉴스옴부즈맨 1기 위원으로 활동하게 됐습니다. 제 다음에 발언하실 윤태진 교수님도 그때 함께 발언 했었는데요. 당시 얘기를 좀 해드릴까합니다. 

당시 KBS는 김인규 사장이 MB의 낙하산 사장으로 온지 얼마 안됐던 시절입니다. 언론학회, 방송학회, 언론정보학회에서 2명씩 뉴스 옴부즈맨으로 추천이 됐는데요. 

막상 KBS에 가보니까 그냥 옴부즈맨을 하는게 아니라 그것을 방송 프로그램으로 찍어서 내보낸다는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할 것인가 말것인가를 놓고 저희들끼리 고민이 많았습니다. 

낙하산 김인규 사장이 외부전문가 얘기를 듣고 뉴스를 정말 잘 만들겠다 그런게 아니고 그저 안팍에 보여주기 위해서 면피성으로 만드는게 뻔한데 그걸 우리가 잘 알면서 언론학 전공교수들이 거기에 동원되는 건 좀 아니지않나 그런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어차피 우리가 안 한다고 해서 프로그램 안 할 것도 아닌데 이왕이면 우리가 잘 해서 조금이라도 공정방송을 지켜보자 그렇게 의견을 모았었고요. 그렇게할 수 있도록 10월 한 달 정도 미팅을 하면서 여러 계약조건을 내걸어서 11월부터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뉴스옴부즈맨 프로그램은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일요일 5시 10분부터 한 30분 안 되게 방송이 됐는데요. 저희가 예상했던 것처럼 아무리 문제를 지적해도 허공에다 얘기하는 것처럼 무성의하게 흘러갔습니다. 당연히 회의감이 커졌지요. 

그러다가 2012년 3월부터 KBS에서 사장퇴진 부당인사 철회를 내걸고 KBS새노조가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파업에 들어간 상황에서도 사실 급박한 상황으로 제게 와닿지는 않았고요. 권력의 통제에 맞서서 언론을 지켜야하는건 그들, 언론인의 몫이라고 저는 여겼습니다. 파업은 언론인의 일이고 저는 어쨌든 연구라는 창을 통해서 이 사태를 바라봐야한다 그런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었습니다. 

그렇게 파업이 계속됐고 구성원들이 파업을 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김인규가 깔아준 멍석에 앉아서 이렇게 하나마나한 일을 하는게 맞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강하게 던질 즈음에 마침 4월에 방송에서 일이 터졌습니다. 문제를 지적하는 옴부즈맨에게 답변을 하던 담당부장이 잘못을 인정하고 개선방안을 얘기하기는 커녕 우리 보도가 뭐가 잘못이냐는 식으로 격하게 항의를 한 것이었습니다. 

저희 뉴스옴부즈맨 6명은 고심끝에... 사실 고심하지도 않았습니다. 드디어 때가왔다고 생각했고요. 5월 19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전원 사퇴를 했습니다. KBS 파업에 힘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말입니다. 

오늘 저는 그때 저희가 발표했던 성명서를 다시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한 번 들어보세요 얼마나 지금 상황하고 같은지 다른지. 

 

<KBS 뉴스 옴부즈맨 위원직을 사퇴하며>

KBS 뉴스 옴부즈맨 위원 6명 전원은 2012년 5월 19일자로 위원직을 사퇴한다.

작년 10월 국내 언론 관련 3개 학회의 추천을 받아 임명된 뉴스 옴부즈맨 위원들은 미력하나마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KBS 뉴스의 질적 향상과 공정성 제고를 위하여 노력해왔다. 

 

출범 후 7개월이 지난 오늘, 위원들은 애초에 지향했던 목표에 단 한 발자국도 가까이 나아가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옴부즈맨으로서의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없게 만드는 KBS의 구조적 한계에 대해 참담함을 느낀다.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다면 개선을 위한 노력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느다란 희망조차 가질 수 없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라고 판단하여 전원 사퇴를 결심하게 되었다.

옴부즈맨 위원회가 발족하고 월 1회 방영되기 시작하면서, 이 프로그램이 KBS 보도국에 변명의 기회만 부여할지 모른다는 일각의 우려가 있었다. 짧은 기간 안에 KBS 뉴스가 획기적으로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현실적 진단도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 위원들은 전문적인 분석을 통해 KBS 뉴스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꾸준히 제기함으로써 KBS 뉴스가 비록 천천히라도, 그러나 저널리즘 원칙에 충실한 방향으로 변모해 나가기를 기대했다. 

이 기대가 충족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보도국의 적극적인, 그리고 열린 자세가 필수적이었다. 비판을 겸허하게 경청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그러나 지난 7개월간의 경험을 근거로 단언하자면, KBS 보도국은 옴부즈맨을 건설적 비평을 하는 전문가로 보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옴부즈맨들이 한 사람의 시청자 관점에서 KBS뉴스를 평가하여 제시한 의견도 제대로 수용하려 하지 않았다. 

현실 모르는 옴부즈맨이 말도 안 되는 비판만 한다는 피해의식에 젖어있었다. 옴부즈맨을 싸워 이겨야하는 대상으로 인식하여 프로그램의 제작과정도 원만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관행적 일상의 세계 안에 갇혀 KBS 울타리 밖과의 의미 있는 소통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지금 보도국의 기본적인 태도라고 우리는 판단한다.

위원들은 옴부즈맨 회의를 통해 여러 차례 문제의 개선을 촉구해 왔지만 동일한 문제점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다. KBS가 자사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보도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 언론계에서 빚어지고 있는 여러 현안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것,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갈등의 소리들에 귀를 더 기울이는 것이 공영방송의 의무이고 나아가 저널리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점을 호소해 왔다. 

그러나 KBS는 옴부즈맨 위원들의 거듭된 호소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현재 KBS 뉴스의 질적 수준과 공정성이 과연 만족할만한 정도인가? 그렇지 않다. 개선의 가능성이 있는가? 지금의 KBS 구조로는 그 가능성이 높지 않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과 열의를 가지고 좋은 뉴스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다수의 KBS 기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KBS 기자들의 능력과 열정이 공정하고 신뢰받는 뉴스로 열매 맺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의 KBS가 가진 구조적, 관행적, 문화적 한계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주어진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사퇴하는 마음이 편할 리 없다. 프로그램을 사랑하고 성원해준 시청자들께도 송구스럽다. 

하지만 우리 옴부즈맨 위원들의 이 결정이 뉴스를 바라보는 KBS 보도국의 안일함을 깨우는 작은 자극이 되어 KBS 뉴스가 모든 시청자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그런데 저희 기대, 예상과는 달리 1기 옴부즈맨 전원사퇴라는 사건은 아무 영향력이 없었습니다. 김인규 사장이 자기 손으로 임명한 뉴스옴부즈맨 전원이 사퇴를 했어도 별 파장없이 지나갔고 얼마 되지 않아 6월 초에 노조는 파업을 접게 되었습니다. 

뉴스 옴부즈맨들도 바로 충원이됐고요. 2016년 6월 막을 내리기까지 방송을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게 2012년 5월이니까 그 후로도 5년하고 6개월이 지났습니다. 그 후로 KBS뉴스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KBS뉴스는 점차 공정성, 신뢰도, 영향력, 시청률 등 여러 지표에서 추락해왔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고군분투하신 언론인들이 많이 계신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언론을 감시하고 통제하면서 KBS의 권력 감시는 약해지거나 유명무실해졌고 탐사프로그램은 폐지되거나 주변화됐습니다. 

다시 제 연구 얘기로 돌아갈까합니다. 2012년 비슷한 시기에 파업을 벌였던 MBC에서 6명의 해고자가 나왔죠. YTN은 대법원 판결에 의해서 3명만 복직하고 3명의 해고자가 남았습니다.

 

주변에서 해직언론인들이 또 나왔는데 당신이 연구해야지 라고 농반진반으로 얘기를 했어요. 근데 저는 연구를 미뤘습니다. 꼭 복직이 될거라는 생각도 있었고 또 다른 이유는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는 일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2012년 가을까지 언론학회 연구이사로서 저는 세미나를 조직하는 일을 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KBS와 MBC 양대 공영방송의 파업이 실패로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9월에 많은 언론인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을때 제가 기획했던 언론학회 세미나는 ‘민주주의와 갈등’ 부제가 ‘저널리즘의 새 지평을 모색한다’ 라는 주제였고요. 언론 현실을 다루기보다는 이론적인 논의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렇게 주문을 했어요. 그것이 연구자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을 했던겁니다.

저는 저의 그런 인식이 무지와 안일 그리고 외면에서 비롯된 것임을 고백합니다. 

언론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나의 일이라고 여기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고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언론통제가 실제로 그 정도인 줄은 미처 몰랐던 알고 싶어하지 않았던 또는 알고도 모르는체 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나 하나가 뭐라고. 나 하나가 뭐를 한들 뭐가 달라지랴. 이미 경험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KBS 뉴스 옴부즈맨의 경험은 제 인식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고 공영방송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2013년 가을에 방송학회에 방송저널리즘 연구회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방송학회는 20개 정도 되는 적지않은 연구회가 있었지만 저널리즘 관련 연구회는 없었습니다. 연구회를 만들고 관련 활동을 하면서 공정성과 자율성이 점차 심각하게 훼손돼 가는 방송저널리즘의 문제에 더 깊이 천착하게 되었고 방송기자연합회에서 방송기자상을 심사하게 되면서 YTN과 MBC의 해직 언론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들을 보면서 그 분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나와 대단히 가까운 구체적인 일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에 좀 더 개입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동아투위때는 제가 아무 일도 하지 못했지만 이번 해직사태에는 뭔가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연구회 세미나에서 관련 이슈를 지속적으로 다뤘고요.해직 언론인을 만나서 얘기를 듣고 논문도 썼습니다. 

YTN과 MBC에서 해직된 언론인 관련 논문을 쓰면서 KBS와 관련한 자료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해직자만 나오지 않았다뿐이지 KBS에서도 정직과 부당징계 등 보도통제에 저항하는 언론인에 대한 탄압이 무척이나 심각한 수준으로 다각적으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해고되지 않았어도 스스로 그만두고 나와서 뉴스타파와 합류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아있는 자들의 고통이 어떨지 짐작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 올해 2016년 MBC 경영 평가 보고서에 보도 시사 분야를 맡아서 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MBC가 그동안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졌는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수년동안 안에서 벌어졌는지를 자세하게 들여다보면서 저는 언론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가만히 있는 것이 나쁜 일을 방조하는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KBS, MBC, EBS, 연합뉴스 이렇게 여러 공영언론사에서는 방송법에 의해서 매년 경영평가보고서를 펴내게 되어있습니다. 지금까지 매년 경영평가가 있어왔는데요. 

2008년 MB정권이 들어선 이후 언론통제와 언론조작이 방송에 그대로 흔적을 남기고 있지만 여러 방송사의 수 년의 경영평가보고서에서 그에대한 강력한 문제제기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경영평가를 담당했던 학자들이 좀 더 철저하게 역할을 충실했더라면 과연 공영방송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게됐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건 제가 다른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언론학회의 연구자들의 정서 그리고 그 안에 안주했던 저를 반성하는 것으로 생각해주시면 되겠습니다. 

경영평가 외에도 지난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학계가 언론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적 현실에 현실에 적절한 관심이나 지원을 했는가?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공영방송의 위기에 대해서는 몇 편의 연구가 있었지만 겨우 손가락에 꼽을 정도입니다. 언론학회와 언론학자의 역할 부족에 대해서는 2014년 동신대학교 남궁협 선생님이 언론부재의 한국사회는 전체주의로 흐르고 있는가라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확하게 짚은바 있습니다. 제가 몇 구절 읽어드리겠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언론이 있는가. 지금의 언론은 있더라도 없는 것만 못 할 정도로 사회적 흉기로 변모했다. 언론은 민주주의의 탄생을 함께 이끌어 온 수레바퀴다. 그런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경우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것은 민주주의 체제다. 언론 현상을 고유 연구로 삼고 있다는 언론학회는 우리 언론이 이 지경에 이를때까지 과연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이 문제를 접근해왔던가. 언론학의 존재의의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외향만 화려할 뿐 사회과학의 학문으로서 언론과 사회에 대해 번득이는 혜안과 날카로운 지성은 찾아볼 수 없다.”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그런 자괴감과 반성을 바탕으로 잘못된 언론을 바로 세우고자 애쓰시는 KBS 언론인들에게 적극적인 연대와 지지를 표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어제 복직한 MBC 이용마 기자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복직의 날이 올 것을 단 하루도 의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정당한 싸움을 했고 정의를 위한 싸움을 했기 때문이다. 

KBS 여러분 힘내십시오. 여러분의 이 싸움도 정당한 것이고, 정의를 위한 것입니다. 

곧 좋은 결실을 맺어서 다시 국민의 방송으로 돌아와주실 것은 믿어 의심치않습니다. 

그리고 다시 투쟁을 시작하는 YTN, 지지부진한 연합뉴스에도 응원의 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제 말씀을 듣는 시민여러분이 계시다면 공영언론에 대한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을 부디 거두지마시고 꼭 함께 지켜봐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이상으로 미진하나마 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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