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호-8] 본부장 편지 | 언론개혁, ‘정책토론’과 ‘운동’ 사이
[237호-8] 본부장 편지 | 언론개혁, ‘정책토론’과 ‘운동’ 사이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20.09.2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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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부장 편지

언론개혁, ‘정책토론’과 ‘운동’ 사이

 

“KBS본부의 지속적인 자사 이기주의와 비합리적 행위는 
미디어넷 활동과 전체 언론 운동에 커다란 해악을 끼치고 있음”
(2020. 8. 미디어개혁시민네트워크 회의기록 중)

 

  언론노조 (오정훈 위원장, 송현준 수석부위원장)와 시민단체로 구성된 미디어시민네트워크(이하 시민넷)가 회의에서 인식을 함께 했다는 내용입니다. 공영방송을 정권의 품으로부터 시민에게 되돌리기 위해 142일 동안 희생하며 투쟁한 우리 KBS본부를 인신공격한 것이 유감스럽습니다. 

 

시민넷 보고서에 대해서 KBS본부가 제기한 문제 

 

  전말을 돌아봅니다. 발단은 한 부의 정책보고서였습니다. 시민넷은 언론개혁을 담당할 대통령 직속 기구, 미디어개혁위원회(가칭)을 주장하며 위원회 활동 방향을 정책보고서에 기술했습니다. 

 

  보고서의 문제는 분명했습니다. 7월 16일 공개된 보고서는 따르면 NHK가 수신료를 독점하고 예산상 높은 수준으로 의존했기에 정치적 편향성과 비판정신의 결여 등의 문제점을 보인다고 기술했습니다. 바로 뒤에 KBS 외 공영방송(MBC, EBS)이 실재하는 현실을 반영하여 현재 수신료 제도를 고쳐야하며, 수신료의 산정, 분배, 평가 등을 담당할 독립기구 설치를 주장합니다. 보고서에 따라 MBC에도 수신료를 지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기사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보고서는 NHK와 KBS를 둘러싼 현실의 차이를 외면한 채, 문제의 원인을 수신료에서만 찾았습니다. 공정방송을 위한 KBS인의 투쟁을, 수신료를 받는다는 이유로 폄훼한다는 인상이 짙었습니다. 시민넷의 일부 리더들은 보고서에 기술되지는 않았지만, MBC에도 수신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습니다.

 

  KBS본부는 KBS인의 명예를 지키고 보고서 내용과 작성 과정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2개월 동안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KBS인의 명예를 해칠 수 있는 문단은 수정, 삭제되었습니다. 수신료산정위원회의 설치 의의와 동시에 문제점도 균형 있게 추가되었습니다.

 

  그런데 시민넷 내부 움직임은 내용과 별개로 격화되고 있었습니다. 

 

* KBS본부 성명서 (7.20)  중 ‘시민넷 보고서는 철회되었다’는 등 사실과 다른 주장
* 보고서 작성 주체에 대한 인신공격
* 언론노조-KBS본부 질의응답 내용 왜곡

 

  이것이 시민넷이 KBS본부의 활동에 대해 문제 삼았던 부분입니다. 우선 ‘철회’ 부분입니다. 7.16 보고서가 언론노조 사이트를 통해 공개된 즉시, 언론노조 집행부는 우리 본부의 요청에 따라 공개 당일, 보고서를 사이트에서 내렸습니다. 오정훈 위원장 역시 NHK의 문제의 원인으로 수신료만을 문제의 원인으로 삼는 것 등은 문제가 있다고 동의했습니다. 보고서는 수정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이를 본부는 보고서의 철회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시민넷은 ‘철회’라는 표현이 보고서의 문제가 있어 수정해야 한다는 뜻으로 알려지는 것이 불만스러웠다고 합니다. 

 

  둘째, 우리는 성명서를 통해 보고서 주요 작성 주체가 특정사의 정책부서 직원인 것이 타당한지 비판하고 문제 제기했습니다. 보고서 작성 주체를 소개하는 부분에서 시민단체 구성원과 정책부서원임을 모두 명시되지 않았고 공정성 시비 여지가 아쉬웠습니다. 시민넷 관계자는 보고서 작성 돌입 시점에는 보고서 작성자가 특정사 직원이 아니었고 입사 후에 본인 스스로 신분이 적절한지 고민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오정훈 위원장은 KBS본부 조합원과의 질의 응답 시간을 통해 “시민네트워크에서도 나름의 제척사유라든가 고민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 고민을 반영해서 최대한 기술이나 집필에 있어서 주의를 기울여야 된다는 것은 여러 차례 이야기가 됐습니다.”(8월 26일 질의응답)라고 해명했습니다. 

 

KBS본부가 갈등의 실마리를 풀다 

 

  9월 11일 밤, 저는 시민넷 대표 두분과 정책위원장을 만났습니다. 서로 입장을 경청한 후, 저는 유감 표명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KBS본부와 시민단체 모두 언론개혁의 주요한 주체이기 때문에 소모적인 갈등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하여 결단했습니다. ‘철회’라는 주장을 상대가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보고서 주요 작성자의 신분과 관련하여 시민넷과 언론노조가 나름의 해명을 했다고 봅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 본부의 문제제기 자체가 ‘보고서 작성자가 특정사의 직원이기 때문에 특정사에 유리하게 기술했다’고 단정짓는 측면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KBS본부 차원의 문제제기가 해당 작성자 1인의 심적압박으로 작용되는 것은 본부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위로와 유감을 표했습니다.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지만, 시민넷과 본부 사이의 갈등 뒤에 있던 큰 오해를 감안했습니다. 시민넷은 KBS의 문제제기를 향후 활동을 가로막는 큰 장애로 인식했습니다. 반대로 우리 본부는 KBS인의 자긍심과 절실한 이해를 담아 의견서를 거듭 내봐야 수용 여부 결정 권한을 시민넷이 독점하는 상황에서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시민넷은 현업종사자들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것조차 소극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양측의 이런 오해와 피해의식을 뛰어넘어, 마지막 내용수정까지 무난하게 협의했습니다. 

 

언론개혁 운동의 영역인가, 정책토론의 영역인가 

 

  위험한 부분은 있었습니다. ‘운동’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시민넷 정책위원장은 여러 차례 KBS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며 ‘운동’을 이해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운동’은 그 정당성을 의심할 수 없는, 목표나 신념을 이루기 위해 결속력을 다지며 추진하는 변화를 의미합니다. 민주화 운동,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 등 ‘운동’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이에 반하는 이견 제시는 힘듭니다. 운동의 과정이든 내용이든 불합리한 점에 대해 제기하다가 반동의 움직임, 대오의 이탈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운동이라는 말은 신중하게 써야합니다.

 

  시민넷은 언론 환경의 새 판을 짜려는 활동을 운동이라고 여기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보고서는 각사의 이해가 상충되는 정책적 이슈를 적지 않게 담고 있습니다. 이는 정책토론과 협의의 영역이지 운동의 영역이 아닙니다. 보고서가 담고 있는 이슈들이 운동의 영역에 들어오려면 매우 큰 규모의 여론의 공감대가 필요합니다.

 

  운동은 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시작하고 목표를 향해 맹렬하게 움직입니다. 시민넷 역시 국회 등 정치 일정에 맞추기 위해 서둘렀습니다. 보고서 최초 공개 전, 논쟁적인 부분을 모두 가려진 초안이 회람되었습니다. 시민단체가 주체이고 연구자의 자율성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명목 하에 현업종사자들의 이견과 토론 요구는 상대적으로 존중받지 못했다고 판단합니다. 미디어개혁위원회를 설치와 그 활동을 언론개혁운동이라고 믿는다면,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문제 제기가 무척 불편했을 것입니다. 

 

  KBS본부의 문제제기가 마뜩잖을지라도 시민넷이 ‘자사 이기주의’, ‘비합리적 행위’, ‘커다란 해악’ 등 극단적 비판을 반복한 것은 유감스럽습니다. 시민넷과 의견이 다른 의견 때문에 ‘운동’이 늦어진다고 해서 연대에 어긋나는 이런 비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내용과 과정에서 공정해야 함을 주장했을 뿐입니다. 충분한 토론과 설득이 생략될 수 없습니다. 공감대가 없으면 운동이 아니라 독선이 되기 쉽습니다. 

 

언론노조가 조정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다

 

  시민넷과 현업종사자들 사이에 갈등을 격화시킨 다른 요소가 있습니다. 시민넷 공동 대표이기도 한 오정훈 위원장과 언론노조 집행부의 조정이 아쉽습니다. 시민넷은 보고서를 통해 언론개혁운동 시동을 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반면, 현업종사자들은 보고서 내용을 협의토론과 이해 조정의 대상으로 봤습니다. 언론노조는 양측의 본질적 시각차를 직시하지 못한 것입니다.

 

  언론노조는 현업 언론종사자들을 참여단체로 표기하여 보고서의 정당성을 높이려 했지만 ‘시민넷 연구학자는 연구용역이 아니다’라는 반발을 넘어 현업종사자들의 의견을 실효성있게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시민넷 회의에 참석한 분들의 평에 따르면, 언론노조 집행부는 보고서의 주체가 시민단체인지, 현업종사자인지 이분법적인 논리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언론노조 스스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채, 시민넷 내부 논의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으로 판단합니다. 언론노조는 시민넷 보고서의 논의의 시작일 뿐이고 앞으로 현업종사자의 의견 차를 밝히겠다는데, 그 약속에 신뢰가 가지 않는 이유입니다. 

 

능력보다 심각한 것은 언론노조가 본부를 존중하는 자세 부족 

 

  8월 26일 오정훈 위원장은 시민넷 활동과 관련해 본부조합원과 실시간으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시민단체, 연구학자 그 누구든 수신료 제도의 변화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 위원장은 시민넷의 공동대표이자 언론노조위원장입니다. 그는 시민넷 정책 보고서에 실린 KBS의 명예와 수신료 쟁점에 대해 당연히 설명을 할 책임이 있습니다. 

 

  질의응답 이후에 언론노조는 시민넷에 보낸, 이상한 해명문을 알려왔습니다. 우리 본부가 질의응답 활동보고를 왜곡했다며 언론노조가 시민넷에 해명의 글을 보낸 것입니다. 우선 언론노조 위원장과 본부 조합원 사이의 질의응답이 해명의 대상이라는 게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오 위원장이 MBC가 수신료의 지급대상인지에 대해 발언한 부분도 시민넷에게 해명한 대상이었습니다. “문화방송이든 아니면 제가 소속되어있는 연합뉴스든 간에 상법상 주식회사예요. 그러니까 법 제도가 개선되지 않고서는 이런 논의가 있을 수도 없어요.” 상식적 발언이었고 본부는 이 요지를 그대로 축약해 활동보고에 담았습니다. 언론노조는 이를 왜곡 또는 전체 취지를 담지 않았다며 문제 삼았는데 우리 본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질의응답 동영상과 본부의 활동보고는 언제든 코비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민넷의 운동 신념과 오 위원장의 발언이 배치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론노조 위원장은 당당하게 소신을 시민넷에 밝히는 대신 소속 본부 활동을 왜곡이라고 매도하며 입장문에 ‘송구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시민단체를 마땅히 존중해야 하나 언론인으로서 당당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스스로 인터뷰해놓고 파장이 생기면 언론이 왜곡했다며 곤궁한 처지를 벗어나려는 구태(舊態)를 언론종사자의 대표가 선택하는 것이 서글픕니다.  우리 본부가 질의응답을 왜곡했다면 지금이라도 당당하게 다시 본인의 생각을 우리 조합원 앞에 밝힐 수 있는지 묻습니다. 

 

KBS의 시민넷 보고서 관련 활동에 낙인찍기 

 

  2020년 9월 17일 언론노조 중앙집행위원회가 있었습니다. 언론노조 집행부는 KBS의 명예를 훼손하는 표현이 다수 들어간, 상당 분량의 시민넷 회의기록을 언론노조중앙집행위원회 활동보고용으로 온오프라인으로 모든 언론노조 지본부에 공개했습니다.  

 

  시민넷 회의록에는 KBS본부에 대한 발언이 균형과 절제없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맥락을 모르는 타 지본부는 KBS본부에 대해 왜곡된 평가를 할 위험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시민넷과 현업종사자 사이의 소모적 갈등을 2개월 이상 끌고 있는 언론노조의 미흡함은 감추어졌습니다. 마치 KBS본부의 활동이 유일하게 부정적 원인인 것처럼 알려졌습니다. “KBS본부의 지속적인 자사 이기주의와 비합리적 행위는 미디어넷 활동과 전체 언론 운동에 커다란 해악을 끼치고 있음”이라는 시민넷 평가에 대해 오정훈 위원장에게 물으니 본인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오 위원장은 시민넷 공동대표로서 소속 본부가 부당하게 규정지어지는 회의 현장에서 흐름을 바로잡지 못했습니다. 문제의 회의자료를 각 지본부에게 공개하면서, KBS본부가 이를 해명하면 된다는 오 위원장의 처신을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KBS본부의 항의와 지본부장의 의견에 따라 문제의 표현들은 언론노조 중앙집행위원회 자료에서 삭제되었습니다. 이미 언론노조는 KBS본부 조합원을 존중하기는커녕, 명예를 불필요하게, 반복적으로 해쳤습니다. 언론노조는 절차상 중앙집행위원회에 초안을 공개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설명하지만 언론노조가 뒤늦게 바로잡은 자료 등 후속조치를 볼 때 얼마든지 KBS본부 조합원을 존중하며 보고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싸움과 화해의 기술 

 

  시민넷 정책보고서를 보며 싸움과 화해의 기술을 생각합니다. 이기고 싶을 때는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동원합니다. 반면 화해하려면, 할 수 있는 것을 절제해야 합니다. 우리 본부는 더 문제 제기를 더 할 수 있었지만 시민넷에 대승적으로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언론노조의 부족한 의사소통, 조정을 인내하고 언론노조의 질의응답 왜곡에 대해서도 대외적 입장을 절제했습니다. 언론노조도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하지 않도록 절제하는 자세가 필요했습니다.

 

  이제 언론노조가 본부 조합원을 존중하겠다는 다짐이 관건입니다. 우리 KBS본부는 싸움과 화해의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본부의 싸움과 화해는 그 대상이 누구이든 공감받는 언론개혁에 이바지할 것입니다.

 

 

본부장 유 재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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