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되돌리려는 시도에 선 긋는 것이
진짜 통합의 출발점
KBS의 차기 리더십 논의 절차가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다. 23일 시민참여단 평가, 27일 이사회의 평가를 거치면 KBS의 운명을 견인할 차기 사장이 결정된다.
모두가 위기를 말하는 시기인 만큼, 차기 사장의 어깨는 무겁다. 리더십의 빠른 정착을 위해 구성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활짝 여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벌써부터 안팎에서는 차기 리더십을 향해 다양한 요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방송독립, 저널리즘과 콘텐츠 경쟁력 강화, 조직 통합, 경영 혁신, 비정규직 문제 해결... 저마다의 절박함과 당위성을 가진 요구들이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이에 대해 후보자들에게 구체적인 대안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 응답에 근거하여 <차기 사장 적합도 설문평가>를 진행 중이다. 차기 사장은 구성원이 내놓은 항목별 평가를 경청하고, 정책으로 과제를 실천해야 할 책임이 있다.
향후 주요 정책, ‘공영미디어의 가치’ 고민 아래 준비돼야
차기 사장 후보자들에게 엄중하게 묻는다. 이렇게 다양한 요구를 녹여내는 과정에서 지켜내야 할 핵심 원칙은 무엇인가. 정책의 선후 관계와 중요성은 어떤 잣대를 기준으로 가려낼 것인가. 깊은 고민 없이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마구잡이로 시행한다면, 안 하는 것만 못한 효과를 낳을 것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차기 사장이 무엇보다 우선시 해야 할 것은 ‘공영미디어의 가치’이다. 우리는 KBS 암흑의 시기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카메라에서 KBS로고를 뗀 채 숨어서 취재 현장에 나서야 했던 처참한 날들이 불과 몇 년 전이다. 당시 KBS 수뇌부는 구성원 탄압에는 탁월한 반면, 청와대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에는 벌벌 떨었다. 당시 KBS 경영진이 공영방송의 역할을 포기하면서, 1위를 고수하던 KBS의 신뢰도와 영향력은 몇 년 새 계속 떨어지며 공영미디어의 추락을 증명했다.
KBS 암흑기 앞장서 만들더니, 이제와 ‘통합’ 외치는 몰염치
그렇게 과거 KBS의 암흑기를 선두에서 견인하거나 방관했던 이들이 최근 난데없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차기 리더십에게 타협과 통합 정신을 실천하라고 요구한다. 그 가운데 몇몇은 사장 후보들을 직접 만나 향후 인사에서의 탕평을 압박했다는 소문까지 돈다. 이들은 <진실과미래위원회>가 드러낸, 공영방송을 망친 이들을 피해자로 둔갑시켜왔다. 반복된 호도의 신공(神功)으로 보수정당에 공영방송 개입의 빌미를 끊임없이 제공하기도 했다. 과거를 반성하기는커녕, 뻔뻔하게 목소리 높이며 탕평을 압박하는 이들의 몰염치를 어디까지 이해해줘야 하는가.
통합은 목적이 아닌 결과여야 한다. 공정하고 적재적소의 원칙을 기반으로 인사를 하다 보면, 조직 통합은 자연스럽게 이뤄질 일이다. 인사 판단의 핵심 기준은 구성원 개개인의 열정과, 업무에 대한 능력 뿐이어야 한다. 어설픈 통합의 미명 아래, KBS를 망친 주역들을 탕평의 이름으로 무마하려고 한다면 또 다른 불공정 시비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KBS 구성원들이 어렵게 지켜왔던 ‘언론의 독립’이라는 가치는 순식간에 흔들릴 것이다.
통합 미명 아래 역사 되돌리는 오류 범해선 안돼
공영방송의 위기는 언제 찾아왔는가. 조직이 통합되지 않았을 때가 아니라, 저널리즘의 본령, 공영방송의 가치가 훼손됐을 때였다.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공영방송의 가치를 지키려는 구성원의 꾸준한 노력 덕분에 KBS는 분명 몇 년 전의 KBS보다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리더십 전환기를 틈타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몰염치한들의 시도에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 이것이 차기 리더의 최우선 덕목이다. KBS 구성원들의 진정한 통합은, 제대로 된 원칙과 기준 아래 공영방송의 제 길을 뚜벅뚜벅 걷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2021년 10월 20일
언론노조 KBS본부 비상쟁의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