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본부 대선보도 모니터]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위기 상황, 보도 관행 점검 기회로(12/19)
[KBS본부 대선보도 모니터]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위기 상황, 보도 관행 점검 기회로(12/19)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21.12.22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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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2월 19일(일)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고들 한다. 도무지 찍고 싶은 후보가 없다고 말하는 시민들이 많다. 최악의 네거티브 선거라는 말도 나온다. 자고 나면 후보 본인이나 가족 관련 새로운 의혹이 폭로되고 날마다 선대위에서 거친 말들이 오간다. 정말 최악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어느 때보다 후보나 가족의 도덕적 흠결이 선거의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뒤집어 말하면 선거 정국을 담론적으로 이끌어가는 정책적 의제가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문재인 후보가 맞붙은 2012년 대선 당시의 ‘경제민주화’나 탄핵 직후에 치러진 2017년 대선 당시의 ‘정상국가 회복’ 등 ‘시대정신’을 반영한 의제를 놓고 다투는 선거와 거리가 멀어졌다는 얘기다.

 

   이러한 대선 구도가 만들어진 1차적 책임은 당연히 후보와 정당에 있을 터이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양대 정당의 후보와 그 주변 인물들이 모두 인간적·도덕적 차원에서 자기관리에 문제가 많은 게 사실이다. 함량 미달의 후보를 국민 앞에 내놓았으니 네거티브 캠페인의 소재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언론의 책임도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대다수 언론이 후보나 가족, 주변 인물의 도덕성 검증에 매몰되고, 정치권의 네거티브 선거전을 무비판적으로 중계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점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오늘의 시대를 규정하거나 해결이 시급한 의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산·소득 불평등, 기후 위기, 젠더 불평등, 지역 불균형...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선거판의 화두로 등장하지 못한 채 철저히 잊히고 있다. 언론이 중요한 시대적·사회적 의제들을 선거 보도와 철저히 단절시킨 채 오로지 정쟁 중계에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에 있어 선거는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를 해결하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과정이 아니다. 고도의 정치공학적 수싸움 끝에 정파간 승패를 가리는 한판승부에 불과하다. 그러니 차기 지도자가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한 의제 제기나 정책에 대한 분석·검증은 간데없고 후보의 행적을 쫓아다니거나 캠프간 입씨름을 단순 중계하는 보도만 넘쳐날 뿐이다. 언론이 의제 설정(agenda-setting) 기능을 담당한다는 언론학 교과서의 설명이 무색해진다.

 

  KBS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사 메인뉴스의 대선 보도인데 다른 방송사의 보도와 별다른 차별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포털 뉴스에서 하루종일 봤던 그 소식을 그대로 전하고 있을 뿐이다. KBS 9시 뉴스는 매일 대선 관련 소식을 전하지만, 오늘 후보가 어디에 가서 어떤 말을 했는지를 단순 전달하는 리포트가 압도적 비중을 차지한다. 예컨대 12월 19일자 <“자식 둔 죄인”... “의혹 가짜도 많아”>에서와 같은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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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아들 관련 의혹을 거듭 사과했습니다.

[이재명/민주당 대선후보 : "자식을 둔 죄인이니까 필요한 검증은 충분히 하시고 또 문제가 있는 점들에 대해서는 상응하는 책임을..."]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선거는 국민 검증 과정이라면서도, 배우자에 대한 이어진 의혹 제기에는 세세한 입장을 내지 않았습니다.

[윤석열/국민의힘 대선후보 : "사과를 올렸습니다마는 또 민주당 주장이 사실과 다른 그런 가짜도 많지 않습니까? 그런 부분들은 좀 여러분들께서 잘 판단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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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 당과 후보에 대한 비방의 코멘트를 전하는 순서도 빠지지 않는다. 12월 18일자 <가족 논란 입 다문 후보들... 정책 이슈 부각> 리포트에서 “양당 선대위는 상대측에 대한 공세를 이어 갔습니다. 민주당은 윤석열 후보 사과가 마지못한 것이라고 비판했고, 국민의힘은 이 후보 아들 문제를 민주당이 사소한 문제로 축소하고 있다고 공세를 폈습니다.”고 전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물론 이런 보도를 아예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언론이 기존에 선거 때마다 이런 보도만 해왔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궁금해하고 흥미를 갖는 것이 사실이다. 국민이 알 필요 있는 정보라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문제는 이런 보도에만 그쳤을 때 생기는 정책 보도의 공백과 선거 의제의 실종이다. 모든 언론이 후보와 캠프가 치고받는 모습만 계속 보여줄 때 유권자들은 투표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주요 의제를 설정하거나 후보들의 공약을 구체적으로 점검하지 못하고 정치에 대한 환멸과 냉소만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가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평가다.

 

   후보들이 내놓은 정책이 빈약하다면 언론이 선도해야 한다. 수동적으로 후보의 뒤를 쫓아다니지만 말고 능동적으로 의제를 제기한 뒤 질문하고 응답을 이끌어내야 한다. 가령 청년세대 이슈를 중심에 놓았던 11월 30일자 <KBS 뉴스 9>의 대선 보도를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이날 뉴스에서 <MZ세대... “잘 배웠지만, 불평등 인식 커”> 리포트에서는 청년세대 문제를 제기했고, 뒤이은 <2030 청년 표심 주목?> 꼭지에서는 취재기자가 스튜디오에 나와 앵커와 대담하며 거대양당 후보들의 관련 공약을 소개하고 평가했다. 기자는 공약의 빈약함을 짚기도 했고 현금 지원 중심인 기존 공약에 대해 청년층의 자산대비 부채 비율을 보여주며 한계를 언급하기도 했다. 생산적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선거 보도라 생각한다. 이런 보도들이 더 많아진다면 저널리즘의 질적 수준도 제고되고 선거 과정 역시 사회적 현안에 대한 해결책 논의 중심으로 바뀔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높아질 것이다.

 

   오랫동안 KBS 뉴스는 노동자들이 일하다 죽는 산업재해 문제에 비상한 관심을 보여왔다.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는 끈기 있고 뚝심 있는 보도였다. 이러한 관심이 왜 대선 보도와 연결되지 못하는지 묻고 싶다. 또한 그간 KBS 뉴스는 기후 위기에 대해, 여성과 성 소수자 차별에 대해, 지방 소멸에 대해 대다수 언론사들보다 더 높은 비중을 두고 좋은 보도를 한 사례가 있다. 왜 대선 보도에 들어가면 이러한 의제들은 실종되는 걸까. 이러한 이슈들을 중심에 놓고 후보들이 관련 대책을 내놓도록 견인하는 보도를 왜 할 수 없는 걸까.

 

   KBS의 대선 보도를 볼 때마다 ‘대선 뉴스는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는 기존의 전형적 사고틀에 사로잡혀 새로운 시도가 제약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후보를 중심에 두는 낡은 대선 보도에서 벗어나 의제를 중심에 놓는 새로운 보도 양식에 도전할 필요가 있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의 위기를 선거 보도 관행을 바꾸는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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