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의특보 4호] 집중분석-김인규 사장의 '나홀로' 수신료 인상안
[쟁의특보 4호] 집중분석-김인규 사장의 '나홀로' 수신료 인상안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0.06.2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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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지난 6월 14일 수신료 인상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해 세 가지 인상안을 내 놓았다.제1안은 광고비중 19.7%, 수신료 4,600원, 제2안은 광고비중 12.3%, 수신료 5,200원, 제3안은 광고 0%, 수신료 6,500원으로 운영하는 안이다. 최근 열린 경영회의에서는 이 중 제1안과 제3안을 이사회에 상정(23일)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비록 경영회의가 복수의 안을 이사회에 상정하긴 했지만 전후맥락을 고려해 볼 때, 제3안6,500원 인상안에 방점이 찍혀 있다. 큰 부담과 반발을 부를 수 있는 6,500원 인상안을 내놓은 것 자체가 스스로 반증하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KBS는 광고재원 없는 공영방송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의문이 생긴다. KBS가 수신료라는 공적 재원만으로 운영될 때 진정한 공영방송이 될 수 있는가? 이론적으로 “그렇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이다. 이론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전제가 있다.

 

BBC를 보자. BBC는 수신료를 주재원으로 하면서 세계적으로 가장 훌륭한 공영방송사다. 일견 BBC같이 공적 재원만으로 운영된다면 KBS도 훌륭한 방송사가 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필수적인 전제가 충족된다면. BBC는 지난 80여 년 동안 영국을 빛낸 문화적 제도이며 기구이다. 영국 국민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방송사다. 수신료 문제에 대해서도 BBC는 문화부와 협의하여 결정하게 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BBC가 영국 사회 내에서 갖는 위상이 확고하고, 또한 문화부 역시 이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문화부가 BBC에 대해 수신료 인상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지만, BBC는 이를 막아낼 강력한 힘이 있다는 점이다. 영국 정부의 주요 정책에 대해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왔던 80년 BBC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BBC에는 BBC의 정치적 독립을 최우선 과제로 표방하는 BBC 트러스트가 있다. BBC 트러스트는 공직자 임명위원회에서 사회적 명망과 윤리의식, 그리고 방송과 회계에 관한 전문성을 고려하여 임명한 위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공적재원만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라는 이론을 BBC는 현실을 통해 스스로 정당화하면서 수신료를 인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BBC조차도 수신료 인상은 험난하다.

 

반면 KBS는 현실이 이론적 정당성을 훼손하고 있다. 여야의 정치적 고려를 통해 구성된 KBS 이사회부터 그 성격이 BBC 트러스트와 다르다. 대통령 특보 출신을 사장으로 선임하는 과정에서 KBS 이사회가 어떤 역할을 했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KBS의 수신료 인상과정에 어떤 정치적 고려를 할 것인지 명약관화하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2008년 이후 KBS 신뢰도는 계속 떨어지고 있고, 여기저기서 KBS의 공정성을 문제 삼고 있다. 거의 모든 조사에서 KBS 정치적 독립성이 현저하게 후퇴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시청률이라는 양적 평가만큼, 아니 더 중요한 것은 공영방송의 독립성이라는 질적 평가이다.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KBS가 수신료 인상을 통해 시장에 내놓을 광고 재원 5천억 원이 종편채널을 위한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종합편성 채널을 위해 광고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오해가 있는 가운데 광고를 없애고, 공적 책무를 강화하겠다며 무려 2.6배의 수신료를 올려 달라는 것을 우리 국민들이 흔쾌히 “그렇게 하라”라고 하겠느냐는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결론부터 짧게 정리하자. 이번 수신료 인상안이 KBS에 가져올 명확한 결과는 ‘회사가 몰락하는 길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당혹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든 결론이다. 수신료의 현실화는 우리들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역사적인 숙원 아니었던가?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 인상안에는 다음 물음들에 대한 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 ?수신료 인상 이후 KBS의 경영은 지속가능한가? ?수신료 인상 이후 방송시장에서 KBS의 영향력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수신료 인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충분한가? 또는 국민들은 이 같은 인상폭을 용인할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면 KBS는 망하는 길로 접어든다. 슬프지만 사실이다.

 

KBS, 재원 경직성의 함정에 빠지다

광고를 전면 폐지하든 20%이하로 제한하든, 어떤 경우라도 KBS의 재원은 매년 고정된 상수로 경직화된다. 100% 공적 재원에 의존하거나, 항상 포화된 상태의 20%에 불과한 - 그래서 더 이상 늘릴 수 없는 - 광고 재원을 운용한다면 수신료를 재인상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재원을 조달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물가는 매년 상승하고 KBS 예산 또한 매년 증가하게 된다.

 

답은 간단하다. 수신료를 또 올리면 된다. 하지만 말이 쉽지 그게 우리 맘대로 되는 일인가? 이미 종합편성채널의 시장진입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정치권은 부담을 무릅쓰고 KBS의 수신료를 재차 올려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종합편성채널이라는 마차를 타고 방송시장에 입성한 보수 신문들은 거대한 경쟁자인 KBS의 재원을 키워주는 수신료 재인상에 결사 반대할 것이다. 사실 종합편성채널 사업자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KBS와 경쟁관계에 있는 모든 이해 당사자는 수신료 재인상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 KBS가 시장에 풀어줄 광고 보따리도 더 이상 없는데 KBS의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될 수신료 인상에 찬성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원래 시장은 냉정하다. 게다가 방송 시장은 서로 잡아먹어야 살아남는 시장 아니던가.

 

지속 불가능한 KBS의 경쟁력

수신료 인상으로 시장에 풀리는 수천억원의 광고 매출은 종합편성채널 사업자에게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가장 먼저 수혜를 받는 사업자들은 이미 시장에서 KBS와 대등한 경쟁력을 확보한 지상파방송 사업자들이다. 이들은 매출이 증가하면 이를 생산에 재투자해서 시장에서의 경쟁력과 영향력을 확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진리를 잘 알고 있다. 수신료 인상 이후 KBS와 다른 지상파 방송사들의 경쟁력 격차는 빠른 속도로 벌어지게 된다.

 

KBS가 재원 경직성의 함정에 빠져서 실탄부족으로 허덕일 동안 다른 지상파 방송사들은 증가한 수입을 재투자해서 연이어 대박을 터뜨릴 것이고, 오락 프로그램의 편성조차 축소한 KBS의 경쟁력은 순식간에 추락하게 된다.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신문 시장의 점유율을 등에 업은 종합편성채널 사업자의 여론 시장에 대한 영향력도 틈새를 타고 차츰 상승하게 된다. 결국 KBS는 시청률 경쟁에서 뒤처지면서 그에 따라 여론 시장에서의 영향력도 동시에 추락한다.

 

국민들, “수신료, 왜 올리는거야?”

국민들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수신료는 2배 가까이, 혹은 2배 넘게 올랐지만 KBS의 방송이 좋아지기는 커녕 다른 지상파 방송과 비교해서 재미도 없고, 종합편성채널의 뉴스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시사 및 보도 프로그램들만 방송되고 있어서 “이럴 거면 도대체 수신료는 왜 올린 거야?”라는 분노에 찬목소리들이 터져 나올 것이다.

 

애초에 수신료 인상에 대한 사회적 동의를 확실히 구하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패착이 될 것이다. 최초에 수신료를 인상할 때 국민들에게 ‘어떤 점들이 좋아질 것인지’ 충분히 설명하고 국민이 용인할 수 있는 인상폭의 접점을 조심스럽게 찾아야 했지만, ‘정치적 동기’에 의한 무모한 인상안의 추진은 이후 국민들의 반발을 사게 될 것이다.

 

이제 ‘아무도 찾지 않는 방송’인 KBS가 궁여지책으로 또다시 수신료를 올려달라고 국민과 정치권에 손을 벌릴 것이고, 돌아오는 반응은 거센 반대여론 뿐이다. 해결책은 지난 2000년에 쓰러져가던 케이블TV 시장에 써먹었던 ‘대기업 자본의 구원투수론’이었다. 아무도 KBS 2TV의 매각을 통한 민영화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정리해고’라는 검은 그림자가 KBS를 서서히 덮쳐오는 최악의 상황이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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