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구역‧시사교양1구역 공동성명]
시사 프로그램은 누군가의 전유물일 수 없다
다시금 시작됐다. 이번 주 수요일, 박민 사장과 경영진이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알박기’ 이사회에 조직개편안을 긴급 상정해 의결하려 한다고 알려졌다. KBS의 축적된 유산과 역사에 대한 조금의 이해도 없는 신문사 출신 박민 사장이 한 번 더 무지한 칼춤을 추려 하는 것이다.
사측이 추진하는 조직개편안에 따르면, 보도본부 산하 시사제작국 직제규정에는 ‘TV,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기획, 제작’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바꾸어 말하면, 보도본부 시사제작국 외에는 어느 곳도 시사 프로그램 제작이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그동안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라디오‧시사교양1구역 조합원들은 사측의 계획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해왔다. 라디오구역은 지난 1월 보도본부로 이관된 1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의 복원을 요구해왔고, 시사교양1구역은 <추적 60분>‧<세계는 지금>의 보도본부 이관 시도에 저항해왔다. 이는 KBS의 공적 역할 수행을 위한 구성원들의 합리적인 호소였으며, 공영방송에 무지한 박민 사장을 배려한 노력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측은 구성원의 목소리에 무응답으로 일관해왔을 뿐 아니라, KBS의 모든 시사 제작 기능을 보도본부 아래 두는 것을 공식적인 직제규정으로 명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우리가 설명해온 이유를 무색하게 하는, 그야말로 끔찍한 이해력이다.
다시 한 번 묻는다.
‘시사’ 콘텐츠는 왜 보도본부 산하에서만 제작돼야 하는가?
TV‧라디오 PD의 콘텐츠에서 ‘시사’ 기능을 배제하는 것은 무슨 의도인가?
어째서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하고 실패를 반복하려 하는가?
수차례 지적했듯 사측은 ‘시사’라는 장르를 명확히 규정하지도 못했고, PD와 기자가 만드는 시사 프로그램이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지도 못했다. PD가 시사제작국에서 기자의 데스킹을 받는 것은, 마치 다른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이들을 한곳에 욱여넣고 시너지를 꿈꾸는 꼴이다. 십여 년 전 보도본부로 이관됐던 <추적 60분>이 왜 지금 제작본부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겠는가?
혹여라도 이번 조직개편안이 신뢰도의 문제라는 말은 꺼내지도 말라. 박민 사장 취임과 동시에 행해진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폐지와 이후 몇 달 사이에 이뤄진 보도본부 이관을 잊은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고성국 씨로 상징되는 정치적 편향성은 물론이거니와 1/5토막, 1/9토막 난 아침‧저녁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청취율, 1/3토막 난 1라디오 채널점유율은 도대체 어떻게 해명할 생각인가?
무엇보다도 이토록 중대한 일을 구성원의 의견 수렴 없이 밀실에서 졸속 처리한 것에 대해서도 참담함을 표한다. 지난 이사회에서 실패한 개편안을 뻔뻔하게 다시금 내미는 행태에 대해서는 분노까지 차오른다.
도대체 박민 사장은 KBS의 경쟁력을 어디까지 끌어내리고 싶은 것인가. TV‧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제작 기능을 보도본부 산하로 모두 이관시키는 것이 어떻게 KBS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인가. 높아지는 것은 TV‧라디오 PD에 대한 박민 사장의 부당한 압력과 통제뿐일 것이다.
수신료, 시청률과 공신력, 경영 실적까지 무엇 하나 성과로 내놓을 것 없는 박민 사장의 초조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연임을 위해 권력에 알량하게 가져다 바치기에 KBS의 시사 프로그램은 너무도 가치 있다. 박민 사장은 자신이 살기 위해 KBS를 죽이는 조직개편안을 당장 폐기하라.
2024년 9월 10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라디오구역·시사교양1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