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호] 직원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127호] 직원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3.12.3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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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12월도 끝자락입니다. 예년 같았으면 그나마 쥐꼬리만 한 소급분으로 회사 근처 주점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던 시간이었을 겁니다. 조금의 돈이 남는다면 짧은 휴가를 준비하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선물을 준비하던 그런 때…. 이미 망가질 만큼 망가진 회사라지만 그래도 동료들과의 눈 맞춤으로 위로를 얻거나 다가올 시간들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나누던 때가 분명 기억 속에 존재하긴 합니다.

한 장 남은 달력이 펄럭이면 선배들은 남은 직장 생활을 가늠하기도 하고 막바지 청춘들은 가는 세월을 하릴없이 탓하기도 했지만 2013년은 유독 차디찬 날씨만이 각자의 마음과 닮았습니다. 올겨울이 유난히 길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면 공기 반 탄식 반 한숨이 절로 새 나오기도 합니다. 과연 우리는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요?

2013년, 언론인도 노동자도 되지 말라.

2013년엔 슬픈 이별이 꽤나 많았습니다. 진짜 기자 일 하고 싶다며 KBS를 떠난 기자들, 이 조직에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떠난 PD들, 밤낮으로 몸까지 버려가며 일하다 세상을 등진 사우들, 후배들의 기대보다 너무 일찍 가신 선배님들까지. 지금도 여의도 어느 언저리에서 불쑥 나타날 것만 같은 이들의 그림자가 자꾸만 밟힙니다.

사람뿐 아니라 그나마 직장인으로서 자존심을 지켜주던 몇몇 것들도 우리를 떠나갑니다. 앞서 언급한 임금은 고사하고 어렵게 명맥을 유지해오던 학자금제도도 안녕을 고하는 중입니다. 모든 것이 대롱거리고 흔적마저 희미해지는 차가운 계절입니다. 금과옥조 같았던 ‘공정방송’의 의미는 철지난 장신구처럼 빛을 잃은 지 오래고 사내 복지의 근간을 지켜주던 제도들은 차례차례 사라지고 있습니다. 결국 언론인도 노동자도 되기 힘든 세상. 2013년 말 KBS의 시계는 딱 이 지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기간, 사장이라는 분은 ABU 회장이 되셨고, 국가가 준 훈장을 가슴에 다는 가문의 영광을 누리셨겠지만 정작 KBS직원들 손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경영진 스스로 헛발질 한 수신료 인상에 시도 때도 없이 동원 됐고, 오라 가라 의미도 모르는 지시에 그저 발걸음이 바빴지만 물질적인 최소한의 장치와 언론인의 양심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만 갔습니다. 그렇게 강요된 언론인도 노동자도 아닌 지금의 KBS인이 과연 안녕할 수 있을까요?

먼저 안녕하지 않겠습니다.

이달 10일에 졸업을 앞둔 한 대학생이 자신의 학교 담벼락에 대자보를 붙였습니다. “안녕들 하십니까?”

누구나 늘 궁금했지만 감히 하지 못한 질문이 세상 밖으로 툭 튀어나왔습니다. 길지 않은 물음에 저마다 머릿속 답들을 정리하고 있을 시간, 정권은 체포영장만으로 민주노총 사무실을 걸레로 만들었고 철도 노동자들을 범법자, 도주자로 만들었습니다. MB이후 정권이 생각하는 언론이란 그저 딸랑거리거나 가끔 짖는 것으로 구분된 지가 오래됐을 테지만 이 청년의 질문은 원래 언론인인 우리가 세상에게 던져야 할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묻습니다. 직원 여러분은 안녕들 하시냐고.

올해는 참 잔인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광란의 시간은 언젠가는 끝날 것입니다. 비록 현재가 안녕치 못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끝끝내 공정방송의 끈을 놓지 않고 노동자의 자존심을 잃지 않을 때 우리는 감히 안녕을 맞이할 자격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 늘 같이 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여전히 우리의 옆자리는 당신들이 채워 줄 것이라 믿습니다. 올해만큼 힘든 내년이 되더라도 더 단단해지는 한해가 되어야 함을 다시 새깁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지막 기도문은 조합원과 직원들보다 먼저 안녕해지지 않을 거라는 되뇜입니다. 그렇게 조합이 가장 마지막으로 안녕해지겠습니다.

KBS인 여러분. 내년에도 부디 건강하십시오.

지면안내

2,3면 : 위원장, 부위원장 인사

4,5면 : 2012, 2013년 화보

6면 : 어느 막내 조합원이 보낸 2013년

7면 : 길환영 체제 1년을 평가한다- 인사

8,9면 : 길환영 사장 시기 제작자율성 침해/불공정 방송 사례

10,11면 : 집행부, 중앙위원, 조합원 인사

12면 : 도도, 갈라파고스, 그리고 KBS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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