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를 어떻게 믿어요? ”
“ KBS를 어떻게 믿어요? ”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4.05.0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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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를 어떻게 믿어요? ”

- 38기, 39기, 40기 기자 후배들의 한 맺힌 취재후기 -

세월호 참사를 취재한 후배기자 55명은 ‘특보 방송’ 내내 깊은 자괴감 속에서 희생자 가족들과 마주해야 했다. ‘KBS를 못 믿겠다’는 희생자 가족과 시청자들의 불신을 넘어선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대표로 글을 올린 10명의 취재·촬영기자의 글은 현재 KBS가 안고 있는 보도의 총체적 문제점들이 드러나 있다.

‘2층에서 바라보는 실종자 가족들.. 그게 딱 유가족들을 바라보는 KBS의 시선이었습니다.’

‘KBS를 어떻게 믿어요? 안산에서 취재한 13일 동안 매일같이 들은 말입니다.’

‘9시 뉴스 톱뉴스는 박근혜 대통령의 희생자 합동분향소 조문, 하지만 유가족 기자회견은 9시뉴스에 없어...’

‘인터뷰 해봤자 마음대로 편집할 건데 뭐하러... 취재 현장에서 실종자 가족들에게 숱하게 들었던 말입니다.’
‘광화문에서 지나가시던 많은 분들이 KBS욕을 하시더군요. 욕한 분 옆에 서있던 친구분이 제게 오셔서 죄송하다고 하네요. 죄송하긴요...제가 죄송합니다.’

‘팽목항에선 kbs로고가 박힌 잠바를 입는 것 조차 두렵다. 대체 우리는 무엇입니까?’

‘왜 우리 뉴스는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건가요?’

‘우리가 진짜 접근할 수 있는 '현장'이 있다면 그건 '사람'일 겁니다. 깊은 바다 밑에 자기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남겨두고 온 바로 그 사람들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현장'에 있었지만 '현장'을 취재하지 않았습니다.’

‘손에 쥔 카메라가 요즘처럼 무겁게 느껴졌던 적이 없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시민들로부터 후배들로부터 ‘편집권 독립’ 외치시지 말고, 부디 권력으로부터 편집권 독립을 이루세요.‘

그리고 후배들은 게시글 말미에 공통적으로 요구사항을 적었다.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제안합니다.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물을 우리 9시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잘못된 부분은 유족과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합니다. 침몰하는 KBS 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부끄럽고 한심한 일이지만 KBS의 현실이고 우리 후배들이 겪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후배들이 취재 현장에서 뺨맞고, KBS로고 감추고, 숨어서 취재할 때 회사는 사보를 통해 ‘국민의 아픔과 슬픔을 녹였다’는 낯뜨거운 자화자찬으로 사보를 발행하고 있었다.




[5월 2일자 KBS사보]

세월호 참사 보도를 통해 수신료 인상에 대한 대국민 반대여론이 공고히 되었고 지금 내고 있는 수신료조차 아깝다는 여론이 SNS를 통해 들끓는 시점에서 반성없는 KBS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공영방송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로 덮을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후배들의 가슴 아픈 절규를 뒤로하고 회사의 책임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 길환영 사장 ]

‘국가기간방송, 재난주관방송...KBS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세월호) 전사적으로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 현장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고...타 언론사의 오보나 선정적 보도경향과는 달리 사회 중심추 역할 해냈다!’

[ 임창건 보도본부장 ]

‘세월호 보도 잘못한 거 없고, 일부 문제 있으나 그건 어쩔 수 없었다. 후배들의 이런 글은 현장에서 문제제기 안하고 뒤통수 치듯이 글 쓰는 거 이해 못하겠다. 보도국장 발언 문제 삼은 것과 연계해 생각해 보건데 이번 일도 정파적으로 이용하는 거 아니냐?’

[ 김시곤 보도국장 ]

‘후배들의 이런 글은 대자보 정치이다. 부장이 후배들과 대화하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럼 KBS가 실종자 가족 이야기 다 들어줘야 하나?’

KBS뉴스를 대표하는 이 들에겐 도대체 무슨 기준이 있는 것인가? 더 이상 침몰하는 KBS를 지켜볼 수 없다. 입닫고 눈감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이미 지났다. 길환영 사장, 임창건 보도본부장, 김시곤 보도국장은 당장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자리에서 물어나라! 국민들의 아픔과 슬픔을 가중시킨 당신들을 더 이상 공영방송의 사장, 본부장, 국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

2014년 5월 7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첨부파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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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어제(7일) 38,39,40기 기자들이 발표했던 성명서 '반성합니다' 전문입니다.


반성합니다.

세월호 침몰 속보를 접한 취재팀이 비행기에 내려 처음 향한 곳은 팽목항이 아닌 목포였습니다.

현장으로 가지 않은 기자들...어쩌면 저희는 이때부터 팽목항 가족들을 향한 귀를 반 쯤 접은 채 시작한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16일 해경에서 밤을 세운 후, 짧은 휴식을 갖고 13시 쯤 목포국으로 향했습니다. 목포국 방송부를 가득 메운 취재기자들, 하지만 촬영기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뉴스 제작의 중요한 두 부분을 맡고 있는 취재기자와 촬영기자의 헤드쿼터가 목포와 진도로 나눠지면서, 뉴스 제작의 두 축 사이에는 물리적 거리가 생겨 있었습니다.

목포에서 아이템을 발제한 취재기자는 진도에서 촬영기자와 만나 아이템을 만들었고, 현장의 촬영기자는 취재기자와 아이템 공유 없이 현장 그림을 만들기 바빴습니다.

현장에서 2시간 떨어진 목포국, 여기서 만들어 낸 아이템이 실종자 가족들과 국민에게 어떤 공감을 줄 수 있었을까요..

며칠간 같은 곳에서 촬영한 영상은 가족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현장의 모습이었을까요...

우리는 현장에서 울렸던 울음과 우리를 불렀던 목소리에 귀를 닫았습니다. 취재기자는 목포국에 있는 컴퓨터가 아닌 현장에서 귀를 열어야 했고, 촬영기자는 현장 이면을 전달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공유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멀어진 거리만큼이나 우리는 서로에게 소홀했습니다.

며칠 전, <이 시각 현장> 라이브 중계를 위해 광화문에서 2시간 정도 대기했습니다. 지나가시던 많은 분들이 욕을 하시더군요.

“KBS 개새끼들”

“이 새끼들, 보도 똑바로 해라.”

“KBS 정말 싫어....”

욕한 분 옆에 서있던 친구 분이 제게 오셔서 죄송하다고 하네요.

죄송하긴요.. 제가 죄송합니다. 저 또한 진도에서 침묵하고 있었던 한 명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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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새끼들아 찍지 마. 찍지 말라고. 카메라 치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실종자의 아버지가 가족대책본부 천막 앞에 진을 치고 있던 취재진들에게 욕을 하며 카메라를 모조리 부셔버릴 듯 달려들었습니다.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취재진과 경호원들 실종자 가족들이 천막 앞 좁은 통행로에서 뒤엉키었습니다.

이중삼중경호를 받으며 대통령이 천막에 들어서고 한동안 정적이 흐르다 천막 밖으로 거친 음성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나가라 내 아이를 살려내라' 등등

분노로 떨리는 어머니의 음성. 아버지의 고함소리. 흐느낌에서 통곡소리까지. 우리 뉴스에서 볼 수 없었던 기자로서 제가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들입니다.

5월4일 대통령은 사고 이후 두 번째로 진도를 방문했습니다. 팽목항에서의 혼란스러움과 분노들을 우리 뉴스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육성이 아닌 CG로 처리된 대통령의 위로와 당부의 말씀만 있었을 뿐입니다. 톱으로 대통령의 방문을 다룬 것도 모자라 두개의 꼭지로 대통령의 동선을 따라 장소별로 보도했습니다.

다행히 두 번째에는 바지선 위의 희생자 가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만 너무나 정제되었다는 느낌을 지우긴 어려웠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분노와 절규는 사라졌고 대통령께 부탁을 하고 대통령이 위로와 당부를 하는 모습은 너무나 잘 짜여진 연출된 모습 같아 보였습니다.

왜 우리뉴스는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건가요??

이 나라는 대통령은 없고 물병 맞고 쫓겨나는 총리. 부패하고 무능한 해경. 구원파만 있는 건가요?? 대통령은 찬사와 박수만 받아야 하고 아무 책임도 없는 건가요?? 정권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하는 언론은 어디로 간 겁니까? 왜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지 않는 건가요.

대통령의 첫 진도방문 리포트는 진도체육관에서 가족들의 목소리를 모두 없앴습니다. 거친 목소리의 채널투는 사라지고 오로지 대통령의 목소리. 박수 받는 모습들만 나갔습니다. 대통령의 안산분향소 조문은 연출된 드라마였습니다. 조문객을 실종자의 할머니인 것처럼 편집을 해서 시청자들이 객관적 사실을 왜곡되게 받아들이게 했습니다. → 2014.04.28. <뉴스9> #1. 박 대통령, 분향소 조문…“안전한 나라 만들 것”

타 매체가 그 실종자 할머니처럼 보인 그 분이 유족이 아니라고 보도했지만 우리뉴스에서 그 소식을 보긴 어려웠습니다.

희생자 가족에게 기레기다 보도 똑바로 해라

욕을 듣고 맞고 하는 것도 참을 수 있습니다. 다만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가 부끄럽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10kg가 넘는 무게를 어깨에 메고 견디는 이유는 우린 사실을 기록하고 전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제안합니다.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물을 우리 9시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잘못된 부분은 유족과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합니다. 침몰하는 KBS 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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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가 즐겨 쓰는 ‘세월호 취재 현장'이라는

말은 거짓말일지도 모릅니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저 먼 바다는

어떤 언론사도 접근할 수 없는 ‘현장'이니까요.

설사 가까이 간다 해도 정부와 해경, 언딘이

철저히 통제하고 있죠.

정부가 불러주는 구조인원, 선박 숫자를

언론이 그대로 받아 적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우리가 진짜 접근할 수 있는 ‘현장'이 있다면

그건 ‘사람'일 겁니다.

깊은 바다 밑에 자기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남겨두고 온 바로 그 사람들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현장'에 있었지만

‘현장'을 취재하지 않았습니다.

유가족들이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울부짖을 때 우리는 냉철한 저널리스트 흉내만 내며

외면했습니다.

‘현장'이 없는 정부와 해경의 숫자만 받아 적으면서요.

그 숫자가 제대로 된 숫자인지 그 자리에서 검증하고

뜯어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죠.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에 조금만 더 귀 기울였다면

이렇게 늦어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정부의 ‘숫자놀음'에 대한 우리의 비판은

사건 발생 12일 후에나 나왔습니다.

그것도 비중 없는 뉴스 후반부 단 한 꼭지.

취재기자의 발제에 떠밀려서 였습니다. → 2014.04.28. <뉴스9> #17. [앵커&리포트] ‘물량공세’ 발표, 혼란·불신 키웠다

중소 언론사라면 분명히 버거운 일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KBS잖아요. 공영방송.

가장 우수하고 풍부한 인력·장비.

정부 발표를 검증하고 비판하라고

그 풍요로운 자원을 받은 것 아닌가요.

다름 아닌 국민들로부터요.

그런데 왜 우리는 그 자원을

가장 적합한 목적에 쓰지 않나요?

설마 아무 내용도 없이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는 ‘중계차'나

‘조간 우라까이'가 KBS의 존재 목적에

더 부합한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우리가 유족들과 ‘동화'됐다고요?

그럴지도 모르죠. 기자는 약자의 목소리를

가장 먼저 대변하라고 배웠으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정권'이나 ‘정부'와 동화된

일부 기자들보다는 낫지 않나요?

많은 선배들이 입버릇처럼

‘모든 취재는 현장에 답이 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런데 왜 현장에 있는 답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시나요?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제안합니다.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물을 우리 9시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잘못된 부분은 유족과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합니다. 침몰하는 KBS 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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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팽목항 중계차 주자로 근무하던 지난달 25일 새벽 3시쯤,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타사에서는 사망자 수가 184명으로 나오고 있는데, 아직 우리는 181명으로 집계되고 있다며 빨리 확인해 달라는 전언이었습니다. 확인 결과 팽목항 가족대책본부의 상황판에는 181번째 사망자 발견이 마지막 소식이었습니다. 사고수습대책본부 등 다른 창구에서도 새로 들어온 소식이 없다는 답을 듣고, 사망자 수는 그대로라고 보고했습니다. 사망자 집계가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이뤄지는 곳이 팽목항 상황판이고, 상황판에 변화가 있을 때마다 실시간으로 보고를 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그때부터 오후 1시쯤까지 비슷한 전화가 다른 선배들에게 연이어 걸려왔습니다. 같은 요청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확인이 느리냐는 질책도 섞여 있었습니다. 여전히 상황판에는 변화가 없었고, 사망자가 더 나왔다는 소식도 전혀 없었습니다. 전화가 올 때마다 같은 보고를 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184번째 사망자가 발견된 것은 오후 3시 23분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타사는 12시간 이상 오보를 내보내고 있던 셈이었고, 저는 발견되지도 않은 사망자를 찾아 헤맨 꼴이었습니다.

상황이 종료되자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타사 속보에 대해 확인하는 건 현장 취재기자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타사 속보를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을 몇 차례나 알렸는데도 같은 질문이 잇따라 들어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건의 국면이 바뀌는 결정적인 사안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확인될 게 뻔한 사망자 수에 대해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뭘까. 어떤 소식이든 타사보다 늦어서는 안 된다는 관성이 작용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문짝만하게 실리는 속보 자막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학생 전원 구출’이라는, 사고 첫날의 대형 오보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사고 당일 오전에 나온 오보는, 팽목항과 진도실내체육관에서 만난 실종자 가족들이 취재진에게 분노하기 시작한 이유였습니다. 학생들이 모두 구조됐다는 소식만 믿고 아이를 보러 왔다가 비보를 들었다며 오열하는 학부모를 지켜봤습니다. 그러고 나니 그들의 분노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입사 전 최종면접에서 보도의 정확성과 신속성 가운데 뭐가 더 중요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공영방송은 당연히 정확성이 우선이라고 답했습니다. 특히 대형 사건사고의 경우 오보는 치명적일 수 있고, 재난주관방송사로서 KBS는 신뢰할 수 있는 방송을 해야 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불과 아홉 달 전의 일입니다. 저는 지금도 제 답변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막내 기자로서 갖고 있는 신념을 아직 저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제안합니다.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물을 우리 9시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잘못된 부분은 유족과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합니다. 침몰하는 KBS 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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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 동안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제가 들고 있던 KBS 카메라를 향해 쏟아내는 비판은 참담함 그 자체였습니다. 혹시 기레기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기자+쓰레기의 합성어로써 취재현장에서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는 기자들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나는 당신들이 욕하는 기레기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팽목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수 없이 다짐을 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을 취재하는 동안 어느새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의 눈물을 놓칠세라 촬영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기보다는 ‘뉴스’를 만들어야겠다는 일념 하에 카메라를 들이 댄 제 자신에 대한 반성이 큽니다. 그러나 현장기자의 삐뚤어진 욕심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한 현장상황을 모른 채 내려진 취재지시 역시 많은 기자들을 부추겼습니다.

진도 팽목항에서 ‘자원봉사자 24시 르포’ 아이템을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현장은 언론사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이 극에 치달아 있었고, 특히 취재 당일 오전에는 가족대책본부 인근에서 취재 중이던 영상특집부 선배가 실종자 가족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졌기에 더욱 신중한 접근을 필요로 했습니다. 가급적 실종자 가족들의 모습을 담지 않으려 노력했고, 녹취 역시 가족에게 직접적인 자극이 되지 않는 선에서 하려고 노력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취재를 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많은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해당 취재계획은 취재가 완료된 이틀 뒤에 발제됐습니다. 하지만 당일 오후에 황당하게도 네트워크부에서 비슷한 내용의 ‘자원봉사자 발길 이어져’ 취재계획이 올라왔습니다. 그 이틀 사이에 팽목항에는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이 방문하여 현장 분위기는 매우 험악했고 취재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비슷한 성격의 두 아이템은 기존에 취재됐던 하나의 원본을 공유하고, 7시와 9시로 쪼개지는 촌극이 벌어졌습니다. 현장상황과 현장기자들의 어려움은 외면한 채 부서간의 소통 부재, 무의미한 경쟁과 소모적인 인력 낭비로 리포트를 양산하는 것은 아닐까. KBS 뉴스가 과연 누굴 위해 만들어지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아이템이 나가기 전 방송됐던 ‘실종자 가족 24시’ 아이템이 호평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려운 현장 여건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취재해 준 기자들 덕분에 결국 실종자 가족을 섭외할 수 있었고 리포트는 완성됐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많은 어려움 있었다고 합니다. 단 1명의 실종자 가족으로 리포트 제작을 한다는 자체가 큰 도전이었고, 무엇을 얻고자 실종자 가족의 아픔을 꺼내어 공개해야 하는 것인지. 편집회의의 평가는 긍정적이었지만 이후 비슷한 아이템을 계속해서 생산해 내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원봉사자 사연’ 취재를 요구하는 주문이 계속됐습니다.

그 결과 ‘사연’ 찾아다니는 KBS 기자를 양산했고, 현장에서 제한적으로 운용될 수밖에 없는 인력이 비슷한 아이템 두 개를 위해 비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취재 덕에 더욱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생생한 영상을 통해 사실을 전달하는 현장감, 한 컷의 영상으로 불러올 수 있는 파급력은 촬영기자로서 항상 긴장되는 요소였습니다. 현장을 영상에 그대로 반영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에,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파급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에 늘 고민하고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소위 얘기 안 되는 내용도 얘기되는 영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법과 윤리의 경계를 넘나들며 얻어낸 결과물을 가지고 자책한 것도 여러 번, 누구보다 이 직업에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손에 쥔 카메라가 요즘처럼 무겁게 느껴졌던 적이 없습니다. 세월호 사고를 취재하는 내내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 그리고 시민들이 쏟아내는 비판의 무게가 더해져 마음 편히 카메라를 손에 쥘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이런 비판의 메시지는 KBS 뉴스에 온전히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내부적으로 이번 특보체제에 대한 성공적인 평가가 있어 더더욱 혼란스럽습니다.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제안합니다.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물을 우리 9시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잘못된 부분은 유족과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합니다. 침몰하는 KBS 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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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만 해도 수십 번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이왕 가는 거 뭐라도 의미 있는 보도를 해오고 싶다고. ‘의미 있는 보도'라는 게 뭔지 구체적으로 그려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정부 발표에 대한 받아쓰기식 보도는 하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남들 다 하는 보도를 내가 구태여 반복하다가 돌아오고 싶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다짐은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더니 결국엔 스스로 하루살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하루도 뭐 하나 말 거 없나'만 생각하는 하루살이. 시야는 좁아지고 고민은 얄팍해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또,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요.

현장에서 일주일 동안 머물렀지만 취재에는 전혀 ‘연속성'이 없었습니다. 하루하루 어제와는 또 다른 영역을 취재해야했습니다. 이를 테면 하루는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을 취재하고 다음날은 선체 인양 작업을, 또 다음날에는 시신 유실 방지 대책을 취재하는 식이었습니다. 당연히 취재원도 매일 바꼈고 관련 지식은 쌓이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뉴 팩트'가 쏟아지는데 매일 다른 영역을 취재하려니 기존에 나온 기사들을 검색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냥 따라가는 데 급급했던 겁니다. 한정된 시간에 이렇게 얄팍한 취재만 하다 보니 기존 취재를 바탕으로 ‘한 발 더 나아가는' 기획 보도를 하는 건 어불성설이었습니다. 악순환이었습니다.

물론, 제대로 된 기획보도를 못한 건 일차적으로 취재기자인 제 책임입니다. 뼈저린 자기반성이 우선입니다. 하지만 취재기자 운용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자들에게 두서없이 총을 쏘기 보다는, 취재영역에 따라 1~2, 3진을 두고 한 분야만 파게 했다면 연속성 있는 취재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은 겁니다. 생각해 보면, 많은 기자들이 일주일 넘게 진도에 머물렀지만 그 누구도 팽목항에 있는 실종자 가족들과 제대로 된 신뢰관계를 구축하지 못 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뭔가를 물어보려고 해도 핫라인이 없었고, 당연히 제보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팽목항에서 둥둥 떠다녔을 뿐 취재기자로서 뿌리를 내리지 못 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이 숨진 학생의 휴대폰에서 복원한 영상을 타사에 넘긴 건 우연이 아닙니다. 뼈아픈 일입니다.

또, 현장 취재기자가 주로 경험이 부족한 38~40기로 짜여진 것도 문제였습니다. 선배들은 ‘기사가 생물'이라고 합니다. 취재과정에선 야마가 180도 바뀔 수 있는 게 기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취재과정에서 언제든 상의할 수 있는 선배들이 있을 때 얘기입니다. 1~2, 3진 체계가 없다보니, 혼란스러운 취재현장에서 막내급 기자들은 혼자 고민하며 끙끙대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 데스크에게 전화를 거는 게 전부였습니다. 물론 데스크는 바빴습니다. 이렇다 보니 주로 총을 맞고 아이템을 취재했던 40기들의 마음고생이 특히 컸습니다. 물론, 현장에는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중견급 선배들이 있었지만, 각개 약진해야 하는 시스템에선 선배들도 이래라 저래라 한 마디 하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인력은 많았지만 따로 뛰는 선수들이었습니다.

사실 이 모든 문제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꼭 세월호 취재 현장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문젭니다. 취재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신문 조간이나 석간에서 제목을 따와 제작하는 ‘앉은뱅이' 발제는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 지금 시스템에선 어찌 보면 불가피합니다. 과연 뭐가 옳은 것일까요. 지금처럼 아이템을 최대한 늘려서 그 수만큼 취재를 할당하는 게 옳을까요, 아니면 아이템 수를 줄이더라도 취재기자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현장에 머물게 하고 거기서 의미 있는 아이템을 건져 올리게 하는 게 옳을까요. 뭐가 장기적으로 우리 뉴스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될까요. 그 답은 이미 이번 세월호 보도에서 다 나온 거 같습니다.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제안합니다.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물을 우리 9시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잘못된 부분은 유족과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합니다. 침몰하는 KBS 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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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가족들의 임시 거처가 진도 실내 체육관으로 정해진 뒤, 기자들은 모두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산사람 죽은 사람 할 것 없이 저마다 이야기 되는 사연을 찾는데 혈안이 돼있었습니다. 우리는 실종자 가족들의 녹취를 따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우리 아들 살아 있으니 제발 ‘구조'를 해달라고 할 때, 기자들은 사연 만들기에 바빴습니다. 결국, 1층에서 쫓겨난 기자들이 향한 곳은 체육관 2층이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이 생활하는 곳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어떤 기자는 중계를 탔고, 사진을 찍었고, 촬영을 했습니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실종자 가족들의 24시간은 그대로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방송됐습니다. 나중에는 가족들이 2층 구석진 곳으로 잠자리를 옮기더군요.

2층에서 바라보는 실종자 가족들.. 그게 딱 유가족들을 바라보는 KBS의 시선이었습니다.

“인터뷰 해봤자 마음대로 편집할 건데 뭐하러...”

취재 현장에서 실종자 가족들에게 숱하게 들었던 말입니다. 다른 기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종자 가족의 목소리는 정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보내지 않았고, 그들이 진짜 언론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에는 관심 있는 척만 하다가 정해진 야마에 맞는 녹취만 잘라 그렇게 10초를 맞췄습니다.

매 맞는 것이 두려워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지 않고 기사를 썼습니다. 매일 보도정보시스템에 업데이트 되는 세월호 관련 연락처 어디에도 유가족이나 실종자 가족과 관련된 연락처는 없었습니다.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리포트에서도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사라져갔습니다. 그런데도 위에서는 “아이템들이 너무 실종자 입장으로 치우쳤다”며 전화를 하더군요. 한참을 고민해 봐도 저는 아직까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후배들 기사에 달리는 KBS를 향한 악플과 SNS 글들은 보이지 않는지 묻고 싶습니다.

지난 4일 이런 아이템이 발제된 적이 있습니다. <검증 안 된 무책임한 보도… 수색 작업 혼선과 가족 혼란 자초>.

JTBC와 이상호 기자가 실종자 가족들을 선동하고, 검증되지 않은 다이버를 인터뷰해 실종자 가족들의 환심을 사면서 오히려 수색 작업에 혼선을 불렀다는 겁니다. JTBC와 고발뉴스가 추측성 보도로 수색 작업에 혼선을 부르고 실종자 가족들에게 실망감만 안겨줬다는 지적도 함께요. 그것도 40기 후배에게 던져준 아이템입니다. 저는 정말 후배에게 부끄러웠습니다. 가족들이 왜 누군지도 모르는 잠수사 한 명과 다른 언론사의 기자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는지를 먼저 생각했더라면, 그리고 그동안 재난재해 주간 방송사라던 우리가 했던 것들을 생각했더라면, 이런 아이템 발제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의아할 따름입니다.

‘현장에 기사가 있다'고들 하죠. 우리가 공영방송의 기자로서 시청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바로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일 겁니다.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제안합니다.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물을 우리 9시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잘못된 부분은 유족과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합니다. 침몰하는 KBS 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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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난 방송 주관사로서 보도에 어떠한 준칙도 없었다. 오히려 종편에 끌려 다니는 상황이었다.

사고 원인과 구조 상황에 대한 신속하고 정확한 보도가 주가 되어야 했다. 구조과정에서 잘못 진행 되고 있는 부분들에 과감한 지적이 필요했다.

그러나 시청률에 급급해 - 유가족들의 감정과 사생활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것에만 공력을 쏟았다. 관련한 비판 여론이 들끓는데도 연일 눈물 짜내기식 인터뷰와 취재를 지시 받았다. 예를 들면 눈물을 훔치며 나오는 분향객을 잡아 안타까움을 호소하는 멘트를 따오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세월호 사건을 보도하며 보여 줄 수 있었던 최선은 아니지 않은가.

분향소에서 이 과정에 대부분의 일과 시간을 투여 당해야 했던 입사 일 년 미만의 기수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2. 현장 연결을 줄이고 3분 4분 혹은 그 이상의 리포트 편성이 필요했다. 취재기자 비추기식 현장 연결이 지나치게 많았다. 사건 현장과 1키로 이상 떨어져 있음에도 ‘우리 취재진이 사고 해역 어딘가 떠있다'는 이유로 의미 없는 중계를 연이어 내보냈다. 해상에 있던 기자들은 인터넷 연결이 원활하지 않다보니 동어반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반면 시청자들이 정작 보고 싶고 듣고 싶어 하는 내용의 리포트에 집중이 부족했다. 관에서 나오는 정보를 유가족들에게 전달하는 식의 보도가 아니라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키워주고 어깨를 다독여 주는 역할을 KBS가 했더라면 어땠을까. 타사에 비해 압도적인 인력과 기술력을 갖고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얼마나 한 것일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현장에 있다. 팽목항에선 KBS로고가 박힌 잠바를 입는 것 조차 두렵다. 어떻게 하면 취재를 잘해나갈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시민들의 따가운 눈총과 질타를 피해갈지 부터 고민하게 된다. 대체 우리는 무엇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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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다음날 진도 체육관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

“누구보다도 가족 분들이 (구조 상황을) 들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짝짝짝짝”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였습니다. 박 대통령의 지당한(?) 지시에 실종자 가족들은 체육관이 떠나갈 듯 큰 박수로 화답하더군요. 오해마세요. 오직 KBS <뉴스9>에서만 그랬습니다.

“경사 났어? 박수를 치고 그래!”

편집되지 않은 실종자 가족의 반응입니다. 우리 뉴스에선 철저히 외면당한 목소리이기도 하죠. 자식을 바다 속에 홀로 둔 부모가 무능한 대처로 일관하는 정부에 할 수 있는 당연한 분노인대도요.

박수·갈채요? 아예 없었던 건 아닙니다. 다만 수많은 공무원과 경호원, 연단 위의 박 대통령과 땅바닥의 실종자 가족들을 벽처럼 갈라놓은 그들의 것이었습니다. 기묘한 편집술 덕에 이들 공무원의 호응이 마치 가족 반응인 것처럼 둔갑한 게 문제죠. ‘날조’입니다.

저는 KBS 뉴스에서 사고 수습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 수반’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선장과 일부 승무원의 행위는 살인과도 같은 행위”라던 박 대통령의 경솔한 언행을 지적하는 것도 본 적이 없네요. 박 대통령이 일반 조문객을 마치 유가족인 척 위로하는 청와대발 촌극은 언급조차 없었고요. 아! 박 대통령의 무성의한 사과를 비판한 유가족 기자회견은 일선 기자들의 항의로 겨우 방송에 나갔죠. 그마저도 메인 뉴스에는 못 나갔습니다.

덕분에 요즘 취재 현장에서 KBS 기자는 ‘기레기 중 기레기’입니다. 얼마 전 한 후배가 세월호 관련해 시민 인터뷰를 시도하다 대여섯 명의 시민에게 “제대로 보도하세요. 왜 그따위로 방송해서 개병신(KBS) 소리를 들어요”라는 말을 들었답니다. 이 수모, 절대 후배가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닙니다. 편파 보도를 지휘하는 보도본부장, 보도국장에 화가 났다가도 금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왜 나는 “시민단체의 통계는 신뢰할 수 없어 방송에 쓸 수 없다”는 데스크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나. 왜 나는 공기업 사장이 여당 대표에게 인사 청탁을 한 사건을 기사화 하지 않았을 때, 옆에서 벙어리처럼 있었나. 순간 순간 비겁함이 모여 지금의 ‘개병신’ 같은 상황을 만든 것 아닌가. 반성합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말씀드립니다. 부디 권력으로부터 ‘편집권 독립’을 이루세요. 시민들로부터 후배들로부터 ‘편집권 독립’ 외치시지 말고요. 청와대만 대변하려거든, 능력껏 청와대 대변인 자리 얻어서 나가서 하세요. 그 편이 오히려 솔직한 겁니다. 더 이상 개병신 소리 듣기 싫습니다.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제안합니다.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물을 우리 9시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잘못된 부분은 유족과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합니다. 침몰하는 KBS 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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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를 어떻게 믿어요?”

안산에서 취재한 13일 동안 매일같이 들은 말입니다. 장례식장에서,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안산 동네 곳곳에서, ‘KBS’라는 이유로 유가족과 시민들은 인터뷰를 거부했고 질책을 넘어 크게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장례식장 조문도 거절당했다는 선배 기자들의 이야기가 적지 않게 들려왔습니다. 사고 초기 혼선에 대한 분노라 생각했습니다. 답답했지만, 조심스럽게 취재를 이어나가고 현장을 그대로 보도한다면 조금씩 신뢰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습니다. 취재 초기에 몇몇 유가족들은 희생된 아이들의 사연을 이야기해 주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그조차 거부하는 유가족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언론과 대응하기 싫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소통할 언론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KBS뉴스에는 자신들의 ‘호소’만 있고 ‘이야기’는 없다며 거부한 겁니다. 실제로 슬픔에 잠겨 울부짖는 유가족들의 모습은 뉴스마다 넘쳤지만, 유가족들이 현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정부에 대책을 촉구하던 모습은 제대로 담기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공식합동분향소가 문을 연 지난달 29일도 그랬습니다. 그날 새벽, 희생된 아들이 찍은 마지막 영상을 타사에 제보한 고 박수현 군의 아버지와 만나 뒤늦게나마 영상제공과 인터뷰를 약속받았지만 두 시간도 되지 않아 번복됐습니다. 하루 종일 설득이 이어졌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습니다. 어차피 보도되는 것이라면 공영방송이자 가장 큰 방송사인 KBS에 보도되길 원했지만, 유족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될 것이라는 확신이 끝내 들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9시 뉴스 톱뉴스는 박근혜 대통령의 희생자 합동분향소 조문, 하지만 정부 대책을 요구하던 유가족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은 9시 뉴스에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취재를 하는 동안 ‘KBS’라는 얘기에 고개를 돌리고 손을 젓고 말문을 닫았던 유가족들은 먼저 타사에 나서서 제보를 하고, 떠난 아이의 사연을 얘기하고, 현장의 문제점을 이야기했습니다. 왜 KBS가 아니라 다른 언론일까. 우리 보도가 유가족들이 ‘말하는 것’보다, 유가족들에게서 ‘듣고 싶은 것’만 집중했던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됩니다. 슬픔에 몸부림치는 유가족들의 모습도, 떠나간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들도 물론 필요한 보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유가족들이 전하고자 했던 다른 수많은 이야기들에는 미처 귀 기울이지 못했고, 오히려 과한 취재가 유가족들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있거나 이제 막 마친 유족들에게 아이들의 생전 모습을 취재해야 했고 마치 관객석처럼 보이는 임시 합동분향소 2층에서 오열하는 유족들을 뒤로 하고 며칠씩 중계를 이어갔습니다. 결국 분노한 어느 유족에 의해 취재진들은 분향소 바깥으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취재기자인 제가 더 열심히 발로 뛰었더라면,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고민하고 취재해 보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크고 자책도 많이 하게 됩니다. 지금이라도 이런 아쉬움과 반성을 토대로 유가족에게서 ‘듣고 싶은 것’이 아닌 그들이 ‘말하는 것’에 귀 기울여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편에 서서 약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이들을 배려하는 것. 그것이 제가 아는 공영방송의 역할입니다. 그 역할을 충실히 했을 때 “KBS를 어떻게 믿어요?”라는 의문에 당당히 답할 수 있지 않을까요.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제안합니다.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물을 우리 9시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잘못된 부분은 유족과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합니다. 침몰하는 KBS 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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