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부역사장 길환영 퇴진 총파업 투쟁을 시작하며
청와대 부역사장 길환영 퇴진 총파업 투쟁을 시작하며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4.06.02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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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부역사장 길환영 퇴진 총파업 투쟁을 시작하며

KBS 길환영 사장 퇴진 투쟁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KBS 기자협회는 지난 5월 19일부터 제작거부에 돌입했고 KBS 내의 양대 노조인 언론노조 KBS본부와 KBS노동조합은 지난 5월 29일 새노조가 생긴지 5년 만에 처음으로 공동 총파업에 돌입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시작된 이번 사태는 짧게는 길환영 사장 체제 1년 반, 길게는 MB정권부터 6년 동안 지속돼온 KBS 장악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고, 그동안 억눌려왔던 내부의 울분이 한꺼번에 분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임 보도국장의 폭로로 밝혀진 길환영 사장의 보도개입은 경악스러웠고, 이에 대한 내부 구성원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가 없을 정도다. 기자, PD, 기술, 경영 등 거의 전 직종을 망라해 330여 명 부장, 팀장 간부들이 보직사퇴를 했다. 서울 본사의 경우 전체 팀장의 70%에 달한다. 보직사퇴를 하지 않은 간부들 역시 대부분 길환영 사장에게 이미 마음이 떠난 상태다. 지지세력이 두터웠고 조직 장악력이 뛰어났던 전임 김인규 사장과는 달리 길환영 사장은 이미 통제력과 리더십을 완전히 상실해버려 KBS를 더 이상 이끌어나갈 수 없을 것이라고 내부에서는 보고 있다.

KBS를 정권에 헌납했던 길환영, 마침내 사장이 되다

먼저, 길환영 사장이 어떤 사람인지 간략하게 살펴보자.

교양 PD인 그는 박권상, 정연주 사장 때 비서실장과 대전총국장 등을 역임했다. 2008년 MB정권 때 이병순 사장 등장 후 2009년 9월 기획제작국장이 됐고, 두 달 뒤 MB 대선캠프 특보 출신 김인규 씨가 사장이 되자 TV제작본부장에 올랐다. 어느 정권, 어느 사장 하에서건 승진을 거듭해온 그는 KBS 역사상 최고의 관운을 가진 사람으로 꼽힌다.

MB 특보 김인규 사장 체제하에서 KBS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관제방송화 돼 갔는데, 길환영 사장은 그 한 축을 담당했던 사람이다.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천안함 침몰 사건이 터지자 그가 본부장으로 있던 콘텐츠본부에서는 시신 인양이 마무리되지도 않았는데 모금방송을 강행했다. 얼마 전 세월호 참사 모금방송을 하려다가 내부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이 된 적이 있었는데, 이와 비슷한 양상이라 할 수 있다. 지방선거에서 여권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천안함 사건을 이용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후 G20, 자원외교 등 MB정부의 업적을 홍보하는 각종 관제특집이 쓰나미처럼 대량 생산됐다. 이러한 관제특집 프로그램은 무려 180여 편에 달했고, 그 중 G20 특집의 경우 방송분량이 총 3,300분에 달했다. 결국 그는 이듬해 2월 실시된 본부장 신임투표(노사 단협에 따라 재적인원 2/3 이상의 조합원들이 불신임을 하면 ‘해임’을 건의할 수 있게 돼 있다)에서 역대 최고로 88%의 불신임을 받았다.

 

88% 불신임 길환영 본부장 퇴진 긴급 조합원 총회(2011. 9. 11)

 

이후에도 제작자율성, 공정성 침해 사례는 끊임없이 벌어졌다. 전국민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승만과 백선엽 특집 다큐멘터리 방송을 강행해 KBS는 친일, 독재를 미화한다는 오명을 쓰게 됐다.

하지만 김인규 사장은 그를 해임하기는커녕 2011년 9월 부사장으로 임명했다. 2012년 새해가 되자 사측은 인사위원회를 열어 새노조 조합원들을 대량 징계했다. 2010년 단협 쟁취파업이 불법이라는 게 이유였다(지난 5월 2일 징계무효판결 항소심에서 엄경철 전 위원장 등 4명의 집행부는 승소를 했다). 그 때 인사위원장이 바로 당시 길환영 부사장이었다. 결국 이 징계가 도화선이 돼 2012년 3월 6일부터 6월 8일까지 95일의 총파업이 벌어졌다.

파업이 끝난 후 이사회 선임을 거쳐 사장 선임 국면이 시작됐고, 그는 고대영 전 보도본부장(김인규 사장의 최측근으로, 김인규 사장 재임 때 보도본부장을 하며 보도를 망친 주범으로 꼽히며, 그 역시 본부장 신임투표 때 84.4%의 불신임을 얻어 회사를 떠났었다)을 제치고 사장에 임명됐다. 정치권 등에 인맥이 상대적으로 두터운 고대영 전 본부장을 그가 어떻게 누를 수 있었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3년 가까이 본부장, 부사장 자리에 있으면서 KBS를 정권 홍보 방송으로 전락시킨 전력이 크게 도움이 됐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가 사장이 된 직후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박근혜 후보가 당선이 됐다. 대선 직후 전 해에 계획됐다가 폐기가 된 드라마 <강철왕>이 다시 추진이 됐다. 박태준 전 포철 회장을 모델로 하는 드라마로 유신정권을 찬양하려는 의도가 너무 명백해 드라마국 내부에서도 반대를 했던 것을 다시 방송하겠다는 것. 우여곡절 끝에 이 드라마는 결국 방송되지 않았지만(현재 조선 종편에서 ‘불꽃속으로’라는 제목으로 방송 중이다) 이 헤프닝은 앞으로 일어날 일의 예고편이었다.

이어서 4월 봄개편. 이번에는 <다큐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이 문제가 됐다. 한국전쟁 이후의 역사를 다룬다는 명목으로 유신정권을 미화하겠다는 것. PD협회, 새노조 등이 거세게 반발했지만 결국 통제하기 쉬운 외주 제작으로 이 프로그램은 편성이 됐다. 6개월 동안 24편이 방송됐는데, 24편 중 무려 13편이 박정희 정권의 업적을 찬양하는 내용이었다.

<다큐극장>의 편성과 함께 KBS 1라디오에서는 <열린토론> 등 시사프로그램이 대거 폐지됐다. 이로서 1라디오는 ‘뉴스채널’에서 일반 채널로 바뀌어버렸다. 얼마 남지 않은 KBS의 저널리즘 기능을 완전히 없애겠다는 의도였다.

2013년 8월 31일에는 국정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추적60분>이 불방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방송 사흘 전 국정원이 통합진보당 당사를 압수수색했고, 다음 날 사장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 후 급작스럽게 불방이 결정된 것. 내외의 거센 반발로 일주일 후 방송이 되기는 했지만 국정원을 비호하기 위해 방송을 막은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추적60분> 불방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 후 이번에는 ‘TV조선 베끼기’ 사태가 있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TV조선이 채동욱 검찰총장에게 혼외 자식이 있다는 보도를 하자 TV조선 화면을 그대로 받아 9시 뉴스에서 방송한 것. 이 사태를 주도한 사람이 이번에 세월호 참사 사건으로 보직사퇴를 하고 길환영 사장의 퇴진을 요구한 김시곤 보도국장이다.

지금까지 길환영 사장이 본부장 시절이었을 때부터 일어난 일들을 그야말로 간략하게 정리했다. 이 외 사건을 모두 서술하자면 책 한 권도 모자랄 것이다.

 

 

“대통령의 뜻이다”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폭로는 지금까지 왜 이런 일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는지를 대단히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수에 대한 김시곤 국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유가족들이 KBS에 몰려와 절규를 했으나 길환영 사장과 김시곤 보도국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유가족들이 다시 청와대로 가자 그때서야 길환영 사장이 달려와 마이크를 잡고 유가족들에게 사과를 했다. 김시곤 국장의 사표를 받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런데 김시곤 국장은 이 날 오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발언을 해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고 사장도 동의를 했는데, 사장이 갑자기 한 시간 만에 입장을 바꿔 자신에게 퇴사를 요구했다고 한다.

“기자회견 35분 남은 시각에 휴대전화로 사장 휴대전화가 왔다. 올라오라고 했다. 사장은 청와대로부터 연락이 왔다며 제게 회사를 그만 두라고 했다. 잠시 3개월만 쉬면 일자리를 찾아보겠다고 회유를 했다. 그러면서 이걸 거역하면 자기 자신도 살아남을 수 없고, 이건 대통령의 뜻이라고 까지 말하며 눈물까지 흘렸다”

물론 김시곤 국장의 폭로가 모두 사실이라고 입증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길환영 사장의 임기와 함께 1년 반 동안 보도를 진두지휘해 온 보도국장이 기자회견 자리에서 허위 발언을 했다고 볼 수 있을까? 더군다나 길환영 사장은 일부는 부인을 했지만 대체적으로 그러한 사건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을 하고 있다.

김시곤 국장의 발언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청와대가 KBS의 인사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된다. 이미 2012년 공개된 민간인 사찰 문건에서 청와대가 KBS, MBC, YTN 등 방송사의 인사에 깊숙이 개입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또 하나의 증거가 추가된 것이다.

KBS 직원들이 특히 충격을 받은 것은 “이걸 거역하면 자기 자신도 살아남을 수 없고, 이건 대통령의 뜻이라고까지 말하며 눈물까지 흘렸다”는 대목이다. 한 조직의 리더이고, 공영방송의 책임자인 사장이 청와대의 명을 받아 한 시간 만에 입장을 바꿔 국장에게 나가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을 했다는 것이다. KBS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한 대목으로 기록될 장면인데, 차마 사실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심정이다. (길환영 사장은 박준우 정무수석에게 전화를 받은 사실은 인정했지만 사퇴압력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눈물을 흘렸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정연주, 이병순 사장 때만 해도 뉴스 큐시트를 받아보지 않았는데 김인규, 길환영 사장은 큐시트를 받아왔고, 윤창중 사건을 톱으로 올리지 말라느니, 대통령 관련 기사는 20분 이내에 배치하라느니, 세월호 참사 관련해 해경 비판을 하지 말라느니 사사건건 보도개입이 이뤄졌다는 주장도 충격적이다. 사장이 뉴스 큐시트를 볼 수는 있겠지만 특정 세력에 불리한 점을 축소하고 유리한 점을 부각시킬 목적으로 직접 수정을 한다면 이는 명백한 간섭이고 조작행위다다. 길환영 사장은 자신이 PD출신이라 보도를 잘 몰라 그랬다느니, 간섭이 아니라 의견을 제시했을 뿐이라느니 하며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궤변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길환영 사장의 손에서 한껏 마사지되고 뒤틀려 왔던 뉴스를 보아 왔던 것이다.

임창건 전 보도본부장은 길환영 사장이 “뉴스가 멈추는 상황도 감수하겠다”고 말했다고 증언한 적이 있다. 길 사장은 자신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이라면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다.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만 있다면 뉴스가 멈춰도 상관없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KBS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KBS 사장을 할 수가 있어?”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슬프게도 MB정권 이래 지금까지 그런 사람들이 공영방송의 사장을 했던 것이, 아니 좀 심하게 말하면 그런 사람이어야지 사장이 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KBS의 이병순, 김인규, 길환영, MBC의 김재철, 김종국, 안광한, YTN의 배석규 사장은 모두 철저하게 공정방송을 망가뜨리고 온갖 야만적 수단을 동원해 탄압을 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권력이 뒤를 받쳐주고 있고, 권력의 눈 밖에만 나지 않으면 이러한 야만이 맘껏 용납되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 공영방송의 현실이다.

길환영 대 KBS, 길환영 대 국민의 싸움

길환영 사장은 지난 5월 19일 기자회견에서 사퇴를 거부하며 “좌파 노조에 의해 방송이 장악되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겠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기자협회의 제작거부를 두고 PD출신인 자기에 대한 ‘직종 이기주의’라는 말까지 했다. ‘좌파노조’니 ‘직종 이기주의’니 하는 말은 이병순, 김인규 사장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현재 자신에 대한 퇴진 요구를 사내의 특정 정치세력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획책한 준동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지금의 싸움이 그 어느 때보다 다른 것은 직종, 지역, 연령을 불구하고 길환영 사장 퇴진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330여 명의 보직간부가 사퇴를 했고 기술, PD, 기자, 경영, 아나운서, 촬영 등 사내 전 직원을 대표하는 16개 협회가 길환영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입장을 밝혔다. 자신은 ‘직종 이기주의’의 피해자라고 주장을 했지만 그가 속하고 있는 PD협회에서는 그를 제명했고 기자협회와 함께 제작거부에 동참했다. 지난 27일 실시된 경영협회의 길환영 사장 퇴진 찬반투표에서는 84.8%가 찬성을 했다. 같은 날 아나운서협회의 제작거부 찬반투표에서는 아나운서들의 71.5%가 찬성표를 던져 제작거부가 가결됐다.

사실상 전 직원이 길환영 사장에게 완전히 등을 돌린 상태고 그는 고립무원의 상태다. 이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내부적으로는 징계, 고발의 칼을 휘두르는 한편 외부적으로는 자신의 우호세력에게 충성도를 과시하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8,800만원의 회사 예산을 들여 조중동 등 보수지에 신문광고를 낸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광고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홍보부장마저 반발해 보직을 사퇴해버렸다. 그 정도로 길환영 사장은 내부적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다. 그는 MBC의 김재철 사장처럼 KBS를 완전히 난도질해 충성심을 입증하고 자리를 보전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그는 김재철 사장만큼의 장악력도, 지지기반도 없는 상태다.

이제 청와대는 공영방송을 놓아줘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촉발된 이번 사태로 우리는 정권이 어떻게 공영방송을 조종하고 있는지, 그 매개자인 사장과 고위간부들이 어떻게 방송을 농단하고 있는지를 빙산의 일각이나마 알게 됐다. 이번 사태는 2008년 이병순 사장 등장 이후 곪고 곪았던, 요즘 유행하는 용어인 KBS의 ‘적폐’가 한꺼번에 터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세월호 참사로 한국 사회의 온갖 추악한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것처럼. 이제 청와대는 공영방송에서 손을 떼야 한다. 길환영 사장을 비롯해 공영방송을 망치고 있는 사람들을 그들이 있어야 할 곳에 돌려놓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때 공약했던 것처럼 공영방송 이사, 사장 선임 구조도 바꿔야 한다. 이제 국민들은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지난 5월 20일 노조창립 기념일을 맞아 새노조 조합원들은 안산의 세월호 희생자 합동 분양소를 찾아가 유족들을 만나 뵀다. 죄인 된 심정에 그저 눈물만 삼키는 조합원들도 있었다. 면담 말미에 어느 유가족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앞으로 이 일이 조금씩 잊혀질 텐데 잊히지 않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렇다. 권력과 그의 대리인 역할을 했던 자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잊어라, 침묵해라, 가만히 있으라고 강요해 왔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거짓을 말해야 했던 그 고통의 시간은 너무나도 길었다. 그 고통의 시간을 이제는 끝낼 때가 왔다. 우리가 2012년에 이어 다시 한 번 기나긴 싸움에 떨쳐 나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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