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PD] 대체인력 투입? 버라이어티 정신은 결코 대체될 수 없다!
[예능PD] 대체인력 투입? 버라이어티 정신은 결코 대체될 수 없다!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0.07.1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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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인력 투입? 버라이어티 정신은 결코 대체될 수 없다!

‘하던 일을 중지함.’ 국어사전은 파업을 이렇게 정의한다.

그러나 국어를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책무를 지닌 KBS에서 애석하게도 이 ‘정의’를 지켜낸 적은 많지 않았다. 특히나 예능 프로그램에 있어서는 단 한번도 ‘하던 방송이 중지’된 적이 없었다. 전설이라 불리는 90년 방송 민주화 투쟁에서도, 그 뜨거웠던 99년 통합방송법 파업에서도 예능 프로그램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매만져지고 다듬어져 ‘정상 방송’되었더랬다.

그리하여 명실상부 ‘최초의 일’이다. 80년이 넘어가는 KBS 한국방송의 역사에서 예능국이라는 공장이 멈춰 선 것은 이번 파업이 최초였다. 그만큼이나 2년간 죽어있던 KBS를 살리려는 결의는 절박했고 의지는 뜨거웠다. 지난 2년간의 KBS는 국민의 방송은 커녕 정권의 방송이었다. 국민을 웃겨야 할 예능PD로서 국민을 우습게 아는 방송은 참을 수 없었다. 부끄러웠다. 그리하여 KBS 역사상 최초로 예능 PD들은 ‘하던 일을 중지’했다.

그러나 2주만에 다시 ‘정상 방송’이란다. 신기한 노릇이다. 업무로 복귀한 예능 PD 조합원이 단 한명도 없는데 이번 주말을 기해 모든 예능 프로그램이 정상화 된다는 기사가 뿌려지고 있다. 남아있는 몇몇의 책임 프로듀서들만으로 그 복잡다단한 버라이어티를 정상화시킨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고 결국 그들의 카드는 대체인력 투입이었다. 본인들 스스로가 외부의 편집인력을 동원하고 있다고 자인하고 있다. 합법적 파업에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사측의 행위는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이며 저들은 스스로 불법을 저지르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는 꼴이다.

문제는 방송의 질이다. 촬영현장을 본 적도 없는 외부 PD가 투입되면 방송의 질이 현저히 떨어질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방송의 질은 전혀 개의치 않은 채 단지 파업이 숨겨지기만을 원하고 있다. 조합원들의 열망과 국민의 요구를 모른 척 묵살하겠다는 자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방송은 자동차가 아니다. 정해진 공정에 따라 뚝딱뚝딱 조립만 하면 만들어지는 공산품이 아니다. PD의 고유한 창작물이며, 작가들을 괴롭혀 밤새 회의하고, 수많은 스탭과 연기자들을 고생시켜 촬영한 ‘노고의 결정체’이다. 단 한 장면도 허투루 편집될 수 없는 이 소중한 창작물을, 최초의 기획의도와 구성의 방향성조차 알지 못하는 대체 인력이 편집한다는 건 프로그램의 제작과정 전체를 단지 ‘생산 공정’으로 환치시키는 행위이며 창작자인 PD들을 그저 조직의 부속품으로 만들어버리는 무지한 폭력이다. 이는 명백히 예능PD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이며 시청자들의 눈을 가리는 행위이다. 내 새끼같은 프로그램이 남의 손에 이리저리 재단된다는 상상만으로도 우리 예능조합원들은 울분과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우리에겐 ‘버라이어티 정신’이 있다. 편안함과 아늑함을 거부하고 불편함과 고단함을 지향한다. 좋은 게 좋은 적당함을 배제하고 지칠 줄 모르는 독기와 끈기를 표방한다. 현재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KBS의 공익적 예능은 지난 수 십년간 숱한 예능PD들이 숱한 밤을 지새우며 ‘버라이어티 정신’ 하나로 구축해 온 성과이다. 우리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의 예능조합원들은, 이번 대체인력 투입이 그 수 십년간의 ‘버라이어티 정신’을 백안시한 채, 합법적 파업을 어떤 식으로든 저지시키려는 사측의 몸부림이라 규정하고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밝히는 바이다. 아울러 사측이 하루속히 비타협적인 자세를 거두고 국민과 조합원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우리의 독하고 끈질긴 ‘버라이어티 정신’이 투쟁 현장이 아닌 방송 현장에서 발현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KBS 경영진은 지금의 불법적인 대체인력 투입을 중지하라. 크리에이티브란 그리고 버라이어티 정신이란 결코 대체될 수 없다.

2010년 7월 12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예능국 조합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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