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각하 헌정방송으로 돌아가려 하는가?
다시, 각하 헌정방송으로 돌아가려 하는가?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4.09.04 16:3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창극 검증 보도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표적 심의와 대표적인 뉴라이트 학자인 이인호 씨의 KBS 이사장 임명 등 공영방송 KBS를 길들이기 위한 정권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KBS 보도와 프로그램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분명히 감지되고 있다. KBS를 정권의 방송으로 전락시켰던 길환영 사장 퇴진 이후 문창극 검증 보도 특종으로 상징되는 ‘KBS의 봄’이 이제는 막을 내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사내외에서 점점 커지고 있는 가운데 그 몇 가지 징후를 살펴본다.

“왜 대통령이 한 컷도 안 나옵니까?”

온 국민에게 진한 감동을 남기고 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달 18일. 교황은 마지막 일정으로 서울 명동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했고, 그 모습은 교황 한국방문 주관방송사인 KBS의 중계를 통해 전세계로 방송됐다.

그런데 행사가 끝난 지 10일 뒤 당시 현장에 있던 한 신부는 페이스북을 통해 “미사가 시작되기 직전 (KBS 중계팀) 팀장님이라는 분이 들어오셨습니다. 방송이 시작되자 뒤에 서계시던 그분(팀장)은 매우 열심히 그분(대통령)을 잡기 위해 노력하셨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초반부에는 화면에 나가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인지 팀장님께 전화를 오더군요. 다행히 전화받기 바로 직전에 화면에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퇴장하시기 직전에 몇 번 나갔는지 확인전화 하셨는데, 다행히 6번 나갔다가 대답하실 수 있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신부의 글은 SNS와 인터넷을 통해 화제가 되면서 타 언론을 통해 기사화까지 됐고, 정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KBS의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와 관련해 KBS본부가 확인한 결과 중계팀장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권순우 편성본부장으로 확인됐다. 미사가 시작된 지 20여 분간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중계 화면에 잡히지 않자 현장에서 디렉팅 중인 PD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대통령이 한 컷도 안 나오는데 왜 안 잡냐,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어봤다는 것이다. 엄연히 미사 행사는 대통령 공식 행사가 아니라 교황 방한의 공식 행사로서 대통령은 단순히 초대를 받은 참석자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한데, 대통령의 모습이 나오든 말든 그게 편성본부장이란 사람이 미사 중계를 디렉팅하느라 정신없는 PD에게 전화까지 해서 확인할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편성본부장의 이 같은 압력은 분명히 효과가 있었다. 전체 120분간의 중계 시간 가운데 20여 분간 잡히지 않았던 대통령의 모습은 전화가 걸려온 뒤 미사가 끝날 때까지 모두 8번, 73초에 걸쳐 중계 화면에 잡힌 것이다. 이에 대해 KBS의 한 관계자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참석 행사에 일반적으로 촬영하는 범위 안에서 영상을 잡은 것이다. 의례적인 것으로 대통령 개인을 부각시키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럴 의도도 전혀 없었다”라고 밝혔는데, 차라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길 바란다.

또 다시 KTV로 전락한 KBS

9월 2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2차 규제개혁 장관회의 겸 민관 합동 규제개혁 점검회’가 오후 2시부터 70분간 KBS 1TV를 통해 생중계됐다. 지난 3월 열린 1차 회의 당시 190분간 생중계했던 것에 비해 시간은 짧아졌지만 청와대 앞에서만 서면 작아지는 공영방송 KBS의 모습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생중계를 담당한 제작팀에 따르면 “청와대는 KTV를 통해 회의를 생중계 할 것이며, 영상을 받아서 생중계 할지 여부는 방송사들이 알아서 하라”고 밝혔다고 한다. 청와대가 기획하고 연출한 자체 회의를 정부방송인 KTV가 방송하는 영상을 그대로 받아 중계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제작 실무진들이 전달했지만, 이러한 의견은 묵살됐고 지난 1차 회의 때와 마찬가지로 회의를 불과 하루 앞두고 생중계가 결정됐다.

강선규 보도본부장은 ”2차 회의는 1차 회의 때 제기됐던 규제들에 대한 실제 사례들을 점검하는 자리고, 전례와 타사들의 사례를 볼 때 방송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회의 전날 오후까지도 생중계 여부가 최종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통화과 끝난 뒤 불과 12분 뒤 조합은 편성본부로부터 편성 확정 통보를 받았다. 회의 중계가 떳떳하다면 5일 전부터 예고된 행사를 무엇 때문에 회의 전날 오후가 돼서야 편성을 확정하고, 그 사실조차 감추려 한단 말인가? 전례 때문에 2차 회의를 생중계 한다면 앞으로 3차, 4차로 같은 회의가 열린다면 계속해서 중계를 할 것인가?

KBS본부는 이번 생중계는 국민의 소중한 재산인 전파 낭비이자 정권에 대한 충성 서약으로 공영방송 KBS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훼손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 둔다. “1차 회의 때 쏠렸던 국민과 언론의 큰 관심을 감안할 때 이번 회의도 방송사들의 생중계가 예상되고 있다”고 밝힌 지난달 17일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 또한 이런 우리의 우려를 뒷받침 해주고 있다.

대통령 리포트 9건에서 15건으로

언젠가부터 KBS 메인뉴스인 [뉴스9]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다시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정권에 맹목적으로 충성했던 길환영 사장 퇴진 이후인 사장 공백기에 어느 정도 제자리로 돌아오는가 했던 우리 뉴스가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한 달간(8.3-9.2) [뉴스9]에서 박근혜 대통령 관련 리포트가 얼마나 나갔는지를 확인한 결과 모두 15건이 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 한 달간(7.2-8.3) 나간 리포트는 9건이었던 데 비해 67%나 늘어난 것이다. 올 초 KBS본부가 조사했을 당시 44일간(1.1-2.3) 43건의 리포트가 나갔던데 비하면 크게 줄어든 수치인 것처럼 보이지만, 세월호 이슈가 발생한 이후 대통령이 외부 활동을 줄이고 뉴스의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수치다. 더구나 문제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 대통령 보도의 경향성이다.

 

내용적으로 보더라도 9시 리포트 감으로는 함량 미달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윤 일병 사건과 관련해 “전인적 인간 교육이 군 가혹행위 해법”(8월 6일)이라고 밝힌 리포트나 노사정 대표를 초청해 “노사 상생으로 위기 극복해야”(9월 1일)라고 밝힌 리포트 등은 아무런 알맹이도 없는 내용을 앵무새처럼 그대로 전달하기에 급급한 보도들이었다.

이런 가운데 세월호특별법과 관련해 지난 5월 유족들과 면담한 자리에서 ‘유족들이 마음이 잘 반영되도록 지원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 파기에 대한 지적은 우리 뉴스에서 찾아볼 수 없었고, 세월호 특별법 논란에는 침묵을 지킨 채 “민생법안 처리해야”(8월 25일) 한다는 대통령의 단호한 목소리만 방송됐다. 대통령의 발언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메인뉴스를 통해 비중 있게 다루는 관행이 바뀌지 않는다면 KBS가 정권의 방송이라는 오명을 벗는 길은 요원할 것이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7대 집행부 본부장 강성원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13 KBS누리동 2층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