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윤의 고함소리] 상윤아, 요 앞에 엄마 와 계신다."
[현상윤의 고함소리] 상윤아, 요 앞에 엄마 와 계신다."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4.09.3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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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윤의 고함소리 3ghk

[편집자 주] 연재를 다시 시작하며 

단언컨대 그날 대한민국에서 제일 기뻐했던 사람은 현상윤 선배다. 길환영 사장의 해임안이 통과되던 날 밤 현상윤은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KBS 인근을 휘젓고 다녔다. 손에는 어느 술집에서 들고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맥주잔이 들려있었다. 그가 여기저기에서 술을 마시다, 교양/기제 피디들이 모여 있던 이차호프에 도착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현상윤! 현상윤!’을 외쳤다. 그는 으레 그렇듯 테이블 위에 올라 연설을 했다.

“내가 KBS를 30년 다니면서 속 시원한 꼴을 한 번도 못 봤는데, 정년퇴임한 지 두 달 만에 이런 경사를 맞으니 감개무량하고...”

분명히 울었다. 나이 60이 다 된 남자가 이미 정년퇴임까지 한 마당에 후배들이 파업에서 이겼다고 울었다. 현상윤은 그런 사람이다. 그냥 여전히 그런 사람이다. 

워낙 큰일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지는 바람에 연재 2회 만에 중단된 <고함소리>를 다시 시작한다. 4월 16일자 노보에 2회가 실리고 중단되었으니 거의 6개월 만이다.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 두 가지 다짐을 했다. 첫째는 ‘현상윤을 넘는 현상윤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상윤의 경험담이지만 개인적 차원을 넘어 KBS의 부끄러운 과거와 한국 현대사의 이야기로 확장해야 의미가 있다는 취지였다. 둘째는 최대한 음성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워낙 독특한 캐릭터와 말투이기 때문에 최대한 말맛을 살리고 싶었다. 이 두 가지 다짐을 잊지 않고 연재를 이어가겠다. 

훌륭한 조합원들이라 <고함소리> 1, 2회의 내용을 모두 기억하시리라 믿는다. 하지만 연재 중단 후 입사한 분들, 파업을 전후에 새노조에 가입하신 분들, 그리고 어렵게 회사로 다시 돌아오신 분(?)을 위해 간략히 1, 2회 내용을 정리한 후 3회를 시작하겠다.

1회 – 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분노한 3년차 PD 현상윤은 만취한 상태로 청와대로 향한다. 청와대 근처도 못가보고 경찰서로 끌려간 피 끓는 청년 현상윤, 그대로 형사의 머리를 받아버린다. 그런데 그 형사는 하는 말, ‘같은 식구끼리 왜 그래~’

2회 – 87년 6월 10일 대규모 시위에 참석한 현상윤 PD는 시위대에 휩쓸려 명동성당으로 들어간다. 그날 밤 명동성당 시위대는 전경들과 격렬한 투석전을 벌인다. 현상윤 PD도 열심히 돌을 던졌는데 이때 한 여학생이 다가와 한 말, ‘여기서 이러시면 안돼요. 앞쪽 학생들이 아저씨가 던진 돌에 맞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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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에 있는 시위대들은 밤에 돌아가면서 보초를 섰어. 나는 둘째 날 밤, 그러니깐 6월 11일에서 12일로 넘어가는 그 밤에 보초를 섰는데, 누가 쇠파이프 한 자루랑 화염병 두 개를 주더라고. 그걸 받는데 이게 꼭 군인이랑 똑같아. 소총 대신 쇠파이프 들고, 수류탄 대신 화염병 두 개를 허리에 딱 차는 거야. 아, 근데 화염병을 던져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깐 겁이 팍 나는 거야. 그래서 벌벌 떨고 있는데 다행히 그날 밤은 조용히 넘어갔어.

많은 사람들이 현상윤은 대학시절에 맨날 데모만 하고 화염병을 빈 병처럼 가지고 놀았을 거라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는 대학시절 시위 한번 안나가봤다고 한다. 본인 입으로는 대학시절 음주가무가 유달리 뛰어나 여자깨나 울렸다고 하는데 확인된 바는 없다. 남들보다 한 학기를 더 다니고도 49학점 밖에 이수하지 못했으니 공부를 열심히 안한 건 확실하다.

이제 밤새 보초를 서고 다음날 그러니까 성모마당, 명동성당 안에 성모마당이라고 있다고. 거기에 둥그렇게 앉아서 집회를 했지. 한창 신나게 집회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누가 툭툭 쳐. 이상하다 돌아보니까 우리 사촌누나더라고. 우리 사촌누나가 수녀님이었거든. 사촌누가가 날 툭툭 치더니 조용히 이렇게 말하는 거야 ‘상윤가 요 앞에 엄마 와 계신다. 나가자!’ 정말 나가기 싫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까 어쩔 수가 없더라고. 자석 끌려가듯 끌려 나갔지 뭐.

이 시점에 그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한참 전의 일인데도 여전히 그날 그렇게 밖으로 나온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당시 회사는‘현상윤을 빨리 명동성당에서 빼 내와라, 안 그러면 아드님 짤린다.’며 노모를 압박했다. 대학도 졸업 못한 아들이 나이 서른이 다되어서 취직한 회사에서 짤린다고 하니 노모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는가.

명동성당에서 나가는 길목은 다 전경이 막고 있었어. 아주 삼엄하더라고. 그런데 사촌누나가 날 명동성당 바로 옆 카톨릭회관으로 끌고 가는 거야. 거기 쪽문에 차가 하나 서 있어. 앞에 운전기사, 신부님이 타고 뒷자리에 나랑 사촌누나가 탄 거야. 그리고 나가는데 거기서도 경찰들이 잡는 거야. 차를 딱 세우고 안을 쭉 살펴 봐. 근데 그때 내가 엄청 꾀죄죄했다고. 이틀 동안 성당에서 자고 옷도 못 갈아입고 그랬으니까. 딱 봐도 시위대인 거지. 근데 앞에 신부님 타고 뒤에 수녀님 타니까 경찰이 그러더라고, ‘야 그냥 보내줘, 보내줘!’ 그래서 나온 거지.

그야말로 영화 같은 이야기다. 살면서 이런 긴장되는 탈출(?)을 경험해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탈출에 성공했지만 요 앞에 있다던 엄마는 만나지 못했다. 엄마는 그곳에 계시지도 않았다. 명동성당을 나선 차는 엉뚱하게도 회사로 왔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그는 사장실로 불려갔다.

사장이 궁금했던 모양이야. 도대체 현상윤이란 놈이 어떤 놈인지. 정구호 사장이 불러서 얼굴 한번 딱 보더니 비서한테 이러는 거야. ‘내보네!’ 뭐 물어보지도 않아. 그냥 얼굴 한번 쓰윽 보고 말어. 그래서 그냥 나왔지 뭐.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사장이 내가 나가자마자 인사부장을 불러서 짜르라고 했다는 거야. 그래서 회사에서 해고 수순을 밟고 있었대. 근데 이게 또 기가 막힌 게 해고를 하기 전에 6.29 선언이 나온 거야. 6.29가 터지니까 회사 입장에서도 날 짜르기가 부담스러워진 거지. 괜히 신문에 ‘KBS 직원 명동성당에 있었다는 이유로 해고’ 이렇게 기사라도 한 줄 나봐. 회사도 부담스럽거든. 그러니깐 내가 누울 자리는 기가 막히게 알아본다니까, 하하하.

현상윤 PD가 짤리지 않게 막아준 것은 피디 동료나 회사 동료가 아니었다. 노조는 물론이고 협회도 없던 시절이다. KBS 내에서는 정치적 이야기가 금기시 되던 시절이었다. 시민들은 독재정권에 맞서 최루탄을 맞는데 KBS 직원들은 그들을 비난하는 뉴스를 만들었다. 당대의 부끄럽지만 명백한, 우리의 과거다. 아무튼 그는 순전히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으로 계속 회사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이쯤 되면 정말 하늘이 돕는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없다. 아니면 진짜 그가 누울 자리를 알아보는 능력을 타고 났거나...

아 근데 진짜 이상한 건 6.29 선언까지 나왔는데도 KBS는 안 변하는 거야. 밖에 나가면 그래도 사람들이 엄청 신나 있었다고. 뭐 어떤 술집은 술값을 안 받네, 어떤 식당은 오늘 하루 공짜 식사네 이러고 있었다고. 물론 그때도 ‘6.29는 속임수다.’는 식의 평가도 많았지.

하지만 그래도 많은 시민들이 절반의 승리를 쟁취했다고 신나 있었는데 KBS는 똑같아. 여전히 정치적 이야기는 안 꺼내, 참나... 뉴스에서는 6.29를 ‘전두환 대통령이 구국의 결단을 내렸다’는 식으로 포장하기 바빠. 말이 안 되는 거지. 그래서 참 갑갑하게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데 7월 중순 쯤인가 보도국에 팩스를 보내러 갔어. 그때는 사무실마다 팩스가 있는 게 아니어서 팩스 한번 보내려면 보도국에 가야 했단 말이야. 그래서 팩스를 보내러 갔는데 ‘찌이잉, 찌이이’ 팩스 한 장이 들어오네. 뭔가 하고 이렇게 봤어. 내용을 보는 순간 손이 덜덜 떨리더라고. 진짜 손이 덜덜덜 떨려.

간신히 해고 위기에서 벗어난 현상윤 PD, 조용히 찌그러져(?) 회사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받게 된 팩스 한 장이 그를 다시 한국현대사의 한 가운데로 몰아넣는다. 도대체 어떤 내용의 팩스였을까? 자세한 이야기는 <고함소리> 4회에서 확인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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