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기슭에서 경계의 나를 찾다
히말라야 기슭에서 경계의 나를 찾다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4.12.1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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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새노조 시사회 9탄 '학교가는 길' 이인건 조합원
 

학교와 집 사이에는 무수한 ‘점’들이 존재했다. ‘점’들은 돈(money) 색깔을 띠고 바다냄새 그득한 바다색깔 도시를 물들여갔다. 수염이 거뭇거뭇 나기 시작한 그 시절의 나는 ‘점’들이 괴물같이 느껴졌다. 어떤 ‘점’은 공부방이란 이름을 달았고 어떤 ’점‘은 학원이란 간판을 걸었다. 도시에 돈이 많아지자 학생들은 바빠졌다. ’점‘들은 마구 부풀어 친구들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나는 학교와 집 사이에 ’점‘이 아닌 길이 보였으면 했다. 그래서 지리산 자락 밑의 ’점‘ 없는 학교에 진학했다. 일종의 소심한 반항이었다.

가는 횟수가 늘어도 도통 나아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연신 헛기침만 되풀이 했고 어머니는 입술을 꽉 깨물다가 들키지 말아야 할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6개월에 한 번씩 집에 돌아오면 시간은 화살같이 흘렀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날, 나는 애써 담담한 척, 아버지는 괜히 바쁜 척, 어머니는 하릴없이 초조한 기색이다. 마침내 집을 나서야 할 시간, 왜 이런 생이별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야속한 자식에 대한 서운함과 이번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부질없는 다짐이 교차한다.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눈물을 본 건 이때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길이 무척 차다. 위험하고 굽이지고 가파르다. 히말라야 얼음담요 ‘차다’(chaddar)를 걷는 아버지와 아들은 이 길을 흘러가듯 걷는다. 짐을 메고 아들을 지고 시간을 견디며 아버지는 20일의 무거운 ‘공간’을 참아낸다. 고희(古稀)의 할아버지는 얼음길에서 미끄러지고 손자는 그 짐을 끌며 앞으로 나간다. 앞선 이와 뒤따르던 이가 바뀌었고 길은 묵묵히 그들을 관조한다. 무척 서럽지만 결코 멈추지 않을 할아버지와 손자의 뒷모습이다.

<학교 가는길>은 우리들의 이야기다. 인생의 시작과 끝이 아닌 매 순간을 견뎌내는 우리들의 냉혹한 이야기다. 히말라야 어느 기슭을 더듬으며 내가 느낀 것은 우습게도 ‘경계’였다. 아이라기엔 늙어버린 그러나 아버지가 되기엔 아직 어린 나는 스크린 속 아비와 아들 사이에서 흘러가는 감정을 온몸으로 받았다. 그리고 내 옆자리의 할아버지는 30여 년 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고 아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는 지금의 자신이, 그리고 그 옆의 어린 아들은 ‘점’이 싫어서 투정부리던 자신의 민낯이 보였을 것이다. 후회로 가득하지만 영원히 멈추지 않을 자식과 부모의 이야기, 그렇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바로 평범한 우리들의 흔하디흔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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