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십니까!!
행복하십니까!!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5.03.17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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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제작국 인사에 부쳐

막상 초유의 인사 발령을 접하고 보니 지역국 지키겠다고 떠든 구호가 막내들 바짓가랑이 잡기에나 쓰인 것 같아 못내 가슴이 아픕니다. 선배들이 책임져야 할 짐을 어린 후배들에게 떠맡긴 꼬락서니가 된 탓에 잘 가라는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습니다. 이제와 본심이 아니었다고 얘기한들 조용히 짐을 싸던 후배들의 기억 속 지역국은 자신들 앞길이나 막던 나쁜 선배들이 있는 곳으로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는 자, 오는 자 그리고 남는 자 모두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나누기 힘든 풍경이 이젠 지역국의 연례행사가 돼 버렸습니다.

 

참 나쁜 선배가 돼 버렸습니다.

본사-지역 간 인사에 있어 불문율처럼 지켜오던 1:1 원칙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고충처리 인사와 같이 지역국에서 인원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누군가 간다면 누군가는 와야 했습니다. 그 어느 사장도 이렇게 일방의 희생을 강요하는 인사를 하진 않았습니다. 적어도 대화와 협의를 거치고 안을 만들고 나서야 집행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이었습니다.

이제 길은 열렸고 어느 직종도 이런 일방통행 발령은 가능하게 됐습니다. 어떤 지역국 수장이 서울의 요구에 ‘NO’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선례라는 것은 이토록 무섭습니다.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촌놈이 돼 버렸습니다.

회사는 촌놈 불러다 이래저래 구색 맞추느라 즐거웠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토론을 바라며 내밀었던 우리의 거친 손은 이제 돌아올 곳을 잃고 말았습니다. 협의를 하는 와중에 발령을 내는 방식은 우리들 예상에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예의란 것이 있을 텐데 얼굴을 맞이하고서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럴 줄도 모르고 서울-지역 오르내려가며 부산떨었던 동료들을 생각하면 얼굴이 더 화끈거립니다. 해서 악수를 위해 내민 손은 이제 주먹으로 쥐어져 떨리고 있습니다.

항상 그랬듯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역을 그저 비용과 낭비의 요소로 규정하는 시각. 그저 떼쓰기만 일삼는 이들이 모인 곳. 그래서 지역의 것은 아무렇게나 해도 좋다는 식민지 점령군 같은 행동. 그 외눈박이의 시선이 이렇게 우리를 무기력하고 몹쓸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과연 지역에서 KBS인의 삶을 사는 것이 당신들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야 할 만큼의 죄입니까?

 

그냥 고통 몰아주기

이번 인사를 주도한 영상제작국장은 ‘고통분담’이란 말로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켰다고 합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100명이 거뜬히 넘는 카메라 감독들이 우리와 함께 지역을 지켰습니다. 이제 겨우 남은 순수 지역국 인원은 70여명 남짓. 과연 30명 가까운 현원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서울 인원만 차곡차곡 뽑아 지역 TO를 채우는 악순환은 과연 누가 만들었습니까? 이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고 더 내줄 것도 없는 지역국 주머니를 터는 게 서울식 고통분담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냥 고통몰아주기라고 하셨으면 알아듣기가 편했을 텐데요. 이렇게 전국을 난도질을 하고도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 없는 당신들은 행복하십니까?

 

그리고 허수아비 인력관리실

인사라는 명패를 달고 있는 부서도 결코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번 인사는 단순히 십여 명의 인원을 서울로 가져 간 것이 아닙니다. 모질게 잡고 있던 지역 방송인이라는 꿈과 자존심을 송두리째 앗아간 발령입니다. 그것도 협의가 끝나기도 전에 기어이 발령을 내는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그냥 있을법한 잡음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입니다. 어떻게 회사의 휴먼 리소스를 통합 관리하는 부서가 하나의 직종이 이토록 망가질 때까지 가만히 있을 수 있는지가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회사 차원의 지역, 직종의 다운사이징 계획이라도 있는 것일까요?

그래서 다시 찾아 온 추위처럼 지역 카메라 감독들의 축 처진 어깨가 곧 우리 전체의 미래가 될 것을 예감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이것만은 알아두시길 바랍니다.

한 직종의 인사발령을 보면서 우리는 지역국 붕괴현상의 가속을 목도하는 중입니다. 어떻게 우리를 지켜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그래서 끝으로 말씀드립니다.

이제부터 ‘하나 되는 KBS’ 따위는 없는 겁니다. 인력풀제는 물론이거니와 네트워크란 의미자체도 기꺼이 쓰레기통에 양보하겠습니다. 이렇게 영혼을 베어가고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처사입니다. 지역국 사람들이 무슨 죄 사함을 받으러 KBS에 출근하는 게 아닙니다.

서울에서 떠드는 지역국을 위한 N스크린, K플레이어, 전국 미래 생존단 등등 사장이 바뀐 후 짧은 시간 가졌던 착각은 이제 접겠습니다. 어차피 사탕발림이 되고 말 것을 너무 허기진 탓에 감히 바라보고 말았습니다. 이제 다 알았으니 마음대로 떠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인사의 후유증이 이대로 봉합될 것이라는 기대는 접기 바랍니다. 이미 너무 큰 상처가 생겼고 지역국 곳곳이 앓고 있습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멈추시기 바랍니다. 언젠가부터 우리 것이 아닌 ‘애사심’을 굳이 다시 찾으려 하지도 않겠습니다. 다만 지역을 지키는 방송인이라는 자존심만큼은 당신들이 건드릴 수 없는 곳에 꼭꼭 숨겨 두겠습니다.

 

지역국을 활성화 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방법은 이미 수없이 논의돼 왔습니다. 지역권 채용, 리소스 배치, 그리고 로컬리즘의 재정립. 무엇을 이야기해도 이 3가지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합니다. 이런 면에서 회사는 철저하게 직무유기를 한 셈입니다. 아니면 이대로 죽어나가기를 방임한 것이거나. 이제 다시 지역국에게 양보를 요구한다면 이제 반발자국 남은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지역협의회는 이번 영상제작국 인사에 대해 다시 한 번 회사의 무책임함을 엄중하게 지적합니다.

차갑게 식어버린 지역국의 심장을 움직이기 위해 책임지는 자세와 진정한 관심과 행동만이 난맥상을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상처받은 지역 카메라 감독과 함께 KBS 지역국을 지키겠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경고가 되지 않도록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시간이 정말 없습니다.

 

2015년 3월 11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지역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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