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악된 언론 현실, 이대로 살자는 말입니까?
장악된 언론 현실, 이대로 살자는 말입니까?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5.06.04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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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 서신] 언론인의 사명을 찾읍시다!

지난 5월 1일은 노동절 125주년이었습니다. 이날 오후 2시,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서울 세종대로 프레스센터 앞에서 ‘공영언론 사장 제대로 뽑자’는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3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민주노총이 주관하는 노동절 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화창하다 못해 한여름처럼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경향 각지에서 많은 지·본부장님들과 조합원 동지들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함께 하지 못하신 분들도 이 땅의 노동 현실, 이 땅의 언론 현실이 변혁돼야 한다는 마음은 같았을 것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기뻐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2012년 공정보도를 주장하며 170일 동안 파업을 벌였던 MBC 동지들, 그 와중에 6명이 해고되고 38명이 정직을 당했습니다. 4월 29일, 우리의 영웅들이 승리했습니다. 해고무효 확인소송 항소심 재판부가 언론노동자들의 손을 완벽하게 들어주었습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잇달아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MBC 파업은 정당했다”, “공정보도는 언론 노동자의 중요한 근로조건이다.” 역사적인 판결입니다. 언론사 노조가 숱한 투쟁을 하며 주장했던 ‘공정보도’가 ‘근로조건’으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MBC 동지들의 승리일 뿐만 아니라 1만 2천 언론 동지들의 승리입니다.

 

파업 50일을 앞두고 있는 제주방송지부에서도 곧 좋은 소식이 들려올 것 같습니다.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우려 속에 시작한 싸움이었습니다. 제주방송지부 동지들, 잘 싸웠습니다. 이 싸움에는 언론노조의 모든 지부, 본부가 연대해 주셨습니다. 이제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제주방송지부 동지들의 의지와 언론 동지들의 연대가 마침내 승리를 가져올 것입니다.

 

아직 가야할 길이 남아있습니다. 더 큰 승리를 위해, 더 완벽한 승리를 위해, 우리의 걸음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우울한 소식도 있었습니다. OBS의 이야기입니다. 사측은, 일방적으로 임금 10%를 삭감했고, 무려 마흔 명의 우리 동지들을 6월 1일자로 해고하겠다는 계획을 고용노동부 부천지청에 신고했습니다. 노동절 하루 전날인 4월 30일에 일어난 일입니다. 노동절에 선물은 못할망정, 이 무슨 망나니 칼춤입니까?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라고 합니다. 그것이 OBS 노동자 탓입니까? 무책임한 대주주와 무능한 경영진이 회사를 살리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모든 방송사가 받는 재송신료를 OBS는 한 푼도 못 받고 있으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습니다. 재송신료만 제대로 받아도 OBS의 어려움은 상당 부분 해결됩니다. 그런데도 대주주와 경영진은 그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덮어씌우려 하고 있습니다. OBS 뿐만 아닙니다. 아직 표면화되지는 않았지만 다른 언론사에서도 사측은 지속적으로 명분 없는 인력 감축을 해왔고, 지금도 또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은 정부가 강행하고 있는, ‘더 낮은 임금, 더 쉬운 해고’를 목표로 하는 노동시장 개악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정부는 일관되게 자본의 배를 불리기 위해 노동자와 서민의 주머니를 강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삶을 위협하는 이런 시도들에 단호하게 맞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언론은 어떻습니까? 대한민국 언론, 망가졌습니다. 언론 자유 지표는 계속 하락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위협 당하고 있습니다. 세월호의 비극이 일어난 지 1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언론은 사람의 목숨을 돈으로 계산합니다.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의 진실 규명 요구를 정치적 유불리의 문제로 바꿔버립니다. 진실을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인 물대포와 1년 치 캡사이신을 하루에 쏘아대는 경찰의 진압 방식, 경찰이 자행하는 불법적인 인권 유린과 위헌이라고 판정 난 차벽 설치에 주류 언론은 왜곡, 축소 보도하거나 애써 외면합니다. 언론이 눈 감으면 불법적인 권력이 판을 칩니다. 언론이 무너지면 민주주의가 무너집니다. 다시 언론을 바로 세우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합니다.

 

정치 권력, 자본 권력으로부터 독립은 언론노조 창립 목표입니다. 여전히 우리가 추구해야 할, 포기할 수 없는 과제입니다. 대한민국 언론의 고질병인 정파성, 친자본, 반서민, 반노동, 그 근원을 찾아 도려내야 합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KBS, MBC, EBS, YTN, 서울신문, 연합뉴스 등 공적 소유의 언론사부터 사장 뽑는 제도를 정상화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판단하여 제1단계 과제로 설정했습니다. 청와대가, 정부 여당이 뽑는 사장, 정권이 내리꽂는 사장으로는 공정보도를 담보할 수 없습니다. 정권의 눈치를 보며 자리에 연연하는 가련한 사장이 아니라,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키는 당당한 사장을 뽑아야 합니다. 한 사람의 영웅의 등장을 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존경할만한 언론사 사장이 없지 않았고, 언론이 그 책무를 성실히 수행했던 적이 없지 않았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영웅의 등장이 아니라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고, 저널리즘의 원칙이 당연한 일상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들 공적 소유의 언론사가 정치권력에 장악됨으로써 대한민국 전체 언론에 끼친 해악은 너무나 큽니다. 이들 언론사로부터 시작된 해악이 전체 언론을 뒤덮었습니다. 소속사가 어디든지, 우리 모두가 함께 연대해야 할 이유입니다. 연대의 힘으로 이 해악의 도미노를 언론민주화의 역(逆)도미노로 바꿔야 합니다. 권력의 손아귀에서 시민의 품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많은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들 이야기합니다. “권력이 언론을 그대로 두겠어?” “여당이, 정부가, 청와대가 내놓겠어?” 그러나 이렇게 반문해 봅시다. “그럼 이대로 살자는 말입니까? 언론인으로서 자존심, 자긍심 다 내팽개치고 쭈그러져 살아야 합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가치있고 소중합니다. 더 가치있고 더 중요한 것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노동자로서의 권리, 지켜냅시다. 빼앗겼거든 되찾읍시다. 언론인으로서의 사명, 다 합시다. 빼앗긴 우리의 자존심, 다시 빼앗아 옵시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1886년 5월 1일 미국 전역에서 노동자들이 시위에 나섰습니다. 5월 3일에는 시카고의 노동자 4명이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고 여러 명이 다쳤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하루 8시간만 일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잘 아는 노동절의 기원입니다. ‘하루 8시간의 노동’, 당시로서는 무모한 주장이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노동자의 권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외치는 소리는 작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일은 우렁찰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요구가 내일은 법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지·본부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연합뉴스지부, 사측의 단체협약 위반에 대해 임원들의 ‘직무정지 가처분’을 신청했습니다. 언론노조 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사측에서는 인사조치 등으로 보복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전일보지부, 사측은 노조에 겨우 사무실 하나 내주었습니다. 햇볕도 바람도 들지 않는 지하층에 사무집기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대전일보지부는 사측의 탄압과 부당노동행위에 맞서 힘겹게 싸우고 있습니다.

 

KBS본부, 성완종 사건과 관련한 논평 ‘이 총리 결단해야’가 ‘국정혼란 우려된다’로 바뀌고 해설자까지 교체된 것에 대해 책임자 문책과 재발방지를 요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세 지·본부의 동지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주십시오. 힘겨운 싸움에 연대해 주십시오.

그 연대의 힘으로, 오늘 우리의 요구가 내일은 법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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