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윤의 고함소리] 탄압의 불꽃은 타오르고....
[현상윤의 고함소리] 탄압의 불꽃은 타오르고....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5.08.2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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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윤의 고함소리 6화

세상엔 정말 팔자라는 것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는 그런 운명. 현상윤PD에게는 KBS의 노동조합이 운명같은 무엇이었다. 이렇게 말하니까 너무 거창한데... 쉽게 말해서 현상윤PD는 노조할 팔자였다. 1988년 5월, 현상윤PD가 지역근무를 마치고 본사로 첫 출근한 날의 일이다.

 

6개월 만에 올라와서 첫 출근을 하는데, 기분이 묘하더라고. 입사하고 맨날 사고만 치고 그랬는데 내가 지역에서 일을 열심히 했거든. 일이 재밌다는 걸 알게 된 거지. 그래서 ‘정말 이제 정말 본사에서 프로그램 좀 열심히 잘 해보자’하고 나름 부푼 꿈을 갖고 있었던 거지. 아, 근데 출근하려고 회사에 딱 들어오는데 분위기가 이상해. 좀 시끌시끌한 거야. 그래서 뭔가 이렇게 보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선배가 나를 붙잡더니 ‘잘 됐다. 니가 이거 해라.’ 하는 거야. 그래서 뭔가 했더니 그 날이 노조 발기인 대회더라고. 올라오자마자 노조 발기인대회에 참석한 거지. 근데 참 웃긴 게, 그때 날 붙잡은 선배가 바로 차갑진 선배야, 차갑진.

 

이명박 후보에게 조언을 하고 있는 차갑진 당시 시청자센터장

차갑진. 2008년 이전에 입사한 직원이라면 그가 누군지 대충 아시리라 믿는다. 지면이 아깝지만 혹시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잠시 소개한다. 때는 2007년 대선 정국. 선거는 치르지 않았지만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이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던 때였다. KBS에서 대선후보 초청토론회가 열렸는데 한 직원이 나타나 이명박 후보 주위를 맴돌다 녹화 직전에 ‘자연스럽게 하세요’라는 조언을 한다. 그가 바로 차갑진이다. 당시 그의 신분은 시청자센터장. 코비스에는 그의 처신을 ‘줄대기’라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다. 그 후 그는 ‘KBS의 대선 보도가 편파적’이라 주장하며 보직을 사퇴한다. 그리고 이듬해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으나 탈락했다. 차갑진은 그런 사람이다.

 

근데 차갑진이가 원래 1대 노조 부위원장이야. 사실 KBS에 노조를 만들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원래 기자들이었다고. 기자들이 노조 설립을 쭉 주도했고 그래서 노조위원장도 황00 선배가 되는 분위기였어. 근데 갑자기 PD쪽에서 후보가 나온 거야. 그게 말하자면 긴데, 아무튼 그렇게 됐어. 근데 아무래도 PD가 기자보다는 제작하면서 만나는 사람이 더 많잖아, 기술 쪽이나 행정 쪽이나. 그러니까 경선에서 덜컥 PD 쪽 후보가 당선이 된 거야. 그게 고희일PD야. 그때 분위기가 좀 안 좋았어. 선거 결과가 나오니까 기자들이 박차고 나가버렸다고. 기자들 사이에서는 ‘당했다’는 정서가 많았어. 사실 기자들이 충분히 억울할만한 상황이었지. 아무튼 당시에는 각 직종별로 부위원장이 있었는데 PD쪽 부위원장이 차갑진이었지. 차갑진이도 당시에는 나름 아주 투쟁적인 인물이었어.

 

여기서 잠깐, 왜 갑자기 PD 쪽에서 후보가 나온 것일까? 현상윤은 당시 PD 사회를 좌지우지했던 안국정PD의 작업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아마도 친분이 있는 후배 PD가 노조위원장이 되어야 회사나 간부 입장에서 관리하기 쉽지 않았겠냐고... 다시 말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믿거나 말거나 식의 추측일 뿐이다. 아무튼 1988년 5월 KBS에도 드디어 노동조합이 탄생한다. 다른 언론사에 비하면 늦은 편이었다. MBC는 이미 87년 11월에 노조를 설립했고 1년 만에 사장을 두 명이나 내쫓았다. 언론사뿐만 아니라 노동계 전반적으로 노조 설립이 한창이었다. 87년 민주화 운동의 탄력을 받아 재야 단체와 학생운동권도 활발하게 움직였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에 봄이 온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봄은 짧은 계절이다.

야, 드디어 탄압의 불꽃이 올랐구나! 사람들이 88올림픽 폐막식을 보면서 그러는 거야. 폐막식 때 아주 거창하게 불꽃놀이를 했었다고. 근데 사람들은 그 불꽃놀이가 탄압의 신호탄이라고 부른 거지. 사실 올림픽 한다고 노태우 정권이 이것저것 좀 풀어준 게 많았거든. 아무래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니까 정권에서도 눈치를 좀 볼 수 밖에 없거든. 근데 올림픽이 끝나는 순간 뭐 다시 자기 세상인 거지. 아니나 다를까 올림픽 끝나자마자 재야인사, 노동계 인사, 학생운동에 대한 탄압이 시작된 거야. 문익환, 문귀현, 임수경, 이재오, 이부영, 조성호... 아무튼 뭐 다 잡아들이는 거야. 그게 딱 1년 걸리더라고 1년. 공안몰이를 해서 1년 만에 정국을 확 틀어잡은 거지.

 

예견된 일이었다. 직선제고 뭐고 87년 대선에서 노태우가 당선되는 순간, 독재정권은 그 생명력을 연장한 것이다. 올림픽이란 짧은 축제는 유예기간에 불과했다. 그나마 언론계가 탄압의 후순위 대상이었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정권이 재야세력, 노동계, 학생운동권을 탈탈 터는 동안 언론사 노조는 방송에서도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방송은 언론이 아니었어. 신문이 언론이지 방송은 언론이 아니었다고. 방송뉴스는 그냥 기관지 정도,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고. 근데 이런 시선이 확 바뀌게 된 게 사실은 ‘광주항쟁 청문회’ 때문이야. 그때는 진짜 대단했거든. 정주영, 장세동 이런 사람들이 증인으로 나오고 야당 의원들이 그 사람들을 막 혼내고 다그치고 이런 모습이... 그런 건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었으니까. 근데 이게 막 생중계가 됐거든. 식당이고 어디고 뭐 할 거 없이 사람들이 다 그걸 틀어놓고 보는 거야. 그러면서 방송도 뭔가 언론의 기능이 있구나 하는 생각들을 한 거지. 아무튼 그런 분위기에서 광주항쟁의 진실을 밝히는 다큐멘터리들이 나온다고. 그때도 노조가 역할을 한 거야. 노조가 사측이랑 광주에 대한 방송을 하자고 합의를 했꺼든. 아무튼 그래서 제목이 아마 <광주는 말한다>였을 거야, <광주는 말한다>. 그런 다큐가 나갔고, MBC가 그것보다 조금 먼저 <어머니의 노래>라고 광주에 대한 다큐를 하지. 사실 준비는 KBS가 먼저 했는데... 참, 하나 더 있다. 그때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다룬 다큐도 있었다. 제목이 <인권보고>였는데, 그걸 만든 사람이 길환영이야, 길환영.

그러고 보니 생각났다. 지난 해, 길환영 사장 퇴진 투쟁이 한창일 때 ‘PD저널’의 기사 하나가 페북에서 돌아다녔다. 이건 정말이지 지면이 아까워 소개할 수가 없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구글에서 “24년 전 KBS 입사 9년 차 PD 길환영” 검색해보시라. 아무튼 이 시기는 KBS와 MBC가 역사상 처음으로 언론사의 역할을 조금이나마 수행했던 시간이다. 하지만 그 시간에도 언론 환경을 과거로 되돌리려는 시도가 착착 진행 중이었다. 시작은 3당 합당이었다.

 

그러니까 노태우하고 김영삼하고 김종필하고 TV에 나와서 3당 합당 발표한 게 1월 22일이야. 그리고 나서 바로 3일 뒤에 ‘가요PD 뇌물 사건’이 터지는 거야. 지금도 여당에 불리한 일 생기면 아주 뭐 딱딱 맞춰서 연예인 사건이 터지잖아. 비슷한 거야. 그때 ‘가요PD 뇌물 사건’에 쟁쟁한 가수들이 다 들어 있었거든. 3당 합당에 대한 비난 여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동시에 KBS, MBC에 대한 손보기가 시작된 거지. 그리고 바로 또 3일 후에 뭐가 터지냐면 ‘KBS 시간외수당 변태 지출 사건’이야. 미다시도 잘 뽑은 게 변태지출이야, 변태. 이 두 사건이 연달아 터지는데 딱 감이 오더라고. 아, 뭔가 대대적인 공격이 있겠구나.

 

공격은 각본을 짜 놓은 것처럼 착착 진행되었다. 이른바 ‘변태 지출’ 건을 빌미로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하고 20여일 만에 감사 결과를 발표(2월 27일)한다. 부사장 등 간부 3명에 대한 해임과 서영훈 사장에 대한 인사조치 건의였다. 3월 2일 이사회는 사장에 대한 면직을 제청하고 3월 8일 대통령이 면직을 수리한다. 왠지 이 과정이 익숙하지 않은가? 2008년 정연주 사장을 교체할 때와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KBS 2대 노조(위원장 안동수)는 박승규 노조와 달랐다. 일찌감치 비대위를 구성하고 두 달 넘게 농성 중이었다. 그리고 4월 3일 이사회는 서기원을 사장으로 제청한다. 그는 청와대 대변인 출신이었다. 4월 17일 그는 출근 저지 투쟁을 교모히 뚫고 첫 출근에 성공한다. 역사적인 90년 4월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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