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상주시 인구 12만 정도의 작은 농촌도시가 요즘 수상하다. 내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누구누구가 출마를 준비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상주시 함창읍 출신 아무개가 유력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다른 지역보다 조금 일찍 달아오른 총선 분위기라면 굳이 뭐라 할 것이 없다. 하지만 등장하는 인물이 KBS미디어 박영문 사장이다. 정치인도 아닌 공영방송 계열사 현직 사장이 내년 총선 출마 예상자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이유는 뭘까.
지난달 19일 상주시, 제1회 상주삼백가요제가 성황리에 열렸다. 행사의 주최는 상주시와 상주삼백문화재단이었고, KBS미디어가 주관했다. KBS 계열사가 주관을 맡은 덕분(?)인지 행사는 제법 규모가 컸다. 초대가수로 설운도 주현미 등이 출연했고 KBS 아나운서가 MC를 맡았다.
당시 가요제에 대해 상주시민들은 KBS가 지역주민을 위해 가요제를 개최해 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다. 행사 당일 주최 측인 상주시 시장과 삼백문화재단 이사장은 물론, 주관사인 KBS미디어 박영문 사장도 주요 귀빈으로 3천여 명의 상주시민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KBS미디어 박 사장이 이전에도 KBS의 각종 행사를 상주시에 유치하고 소개했던 인물로 알려졌던 터라 이날 행사도 자연스럽게 박 사장의 공으로 보는 분위기가 상주시에 널리 퍼진 것이 사실이다. 행사 나흘 뒤 경북일보에 실린 기사를 보면 이런 상주시민들의 인식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KBS미디어의 한 고위 관계자도 당시 행사는 상주시의 요청에 의해 KBS미디어가 주관한 것이 아니라, 박 사장이 먼저 기획해서 상주시에 요청해 성사된 것이라고 밝혔다. 박 사장은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자생활 35년의 경험과 인맥을 동원해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지금 공영방송 KBS를 이용해 지역 내 인지도와 명성을 높이면서, 내년 총선 출마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상주 주민들은 이번 삼백가요제뿐만이 아니라, 상무축구단 상주시 유치, KBS 전국 육상대회 상주개최, 민속 장사 씨름대회 상주개최 등도 모두 박 사장의 공으로 알고 있다.
상주 출마설의 배경에는 박 사장이 지난해 10월 구입한 SUV 차량도 한 몫하고 있다. 박 사장은 KBS미디어 사장으로 부임한 직후, 관용차량 이외의 별도의 SUV 차량을 구입했다. KBS미디어 관계자에 따르면 박 사장은 부임 후 대부분 주말마다 상주시에 내려가고, 이 때문에 월요일 아침에는 관용차량이 아닌 SUV 차량으로 출근한다고 한다.
박 사장은 주소지도 상주시로 옮겼고, 특히 삼백가요제가 열리는 기간에는 아예 휴가를 내고 상주에 내려갔다. KBS미디어가 주관하는 행사고, 직접 무대에도 올라갔으면서 왜 박 사장은 공식적인 출장이 아닌 휴가를 낸 것일까?
상주를 향한 박영문의 광폭 사랑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지난 2007년부터 종종 승마, 사이클, 씨름 등 비인기 종목의 단순 개막소식이나 유치소식 등이 KBS스포츠 뉴스를 통해 방송됐는데 모두 상주와 관련이 있었다. 당시는 박영문 사장이 스포츠국에서 취재와 제작부분의 요직간부를 맡아 승승장구 하던 시절이다.
이처럼 논란이 커지는데도 불구하고 계열사 임원의 관리감독을 책임지고 있는 조대현 사장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KBS 계열사 사장이 특정정당의 공천을 받기 위해 뛰고 있는 정황이 드러나도 수수방관일 뿐이다. KBS를 어디로 끌고 가는 것인가?
조사장의 퇴임을 알리는 ‘조퇴시계’는 이제 D-95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