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프로그램 살린 '보이지 않는 손'은 누구?
죽은 프로그램 살린 '보이지 않는 손'은 누구?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5.10.29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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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사 협찬 못 구해오자, 6700만원 제작비 이례적 투입

‘유령 프로그램’이 나타났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있는데, 다시보기를 하려니 KBS 홈페이지에서는 VOD 서비스를 찾을 수가 없다. KBS 홍보실이 방송 전날 출입기자들에게 보도자료까지 보낸 주요 프로그램이 인터넷 상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에는 이인호 이사장이 출연했다고 한다. KBS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위쪽 사진은 KBS 홍보실이 100여 명의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보도자료의 일부분이다. KBS1TV <다큐공감> 8월 1일(토) 저녁 7시 10분이라고 적혀있다. 제목은 ‘정전 60년 특집, 6.25 전쟁 끝나지 않은 역사’로 정전 시점에 대한 혼선이 있었는지, 정전 62년이 아닌 60년으로 잘못 표기돼 있긴 하다.

 

오른쪽 사진은 8월 1일 오후 보도자료에 나왔던 <다큐공감>의 한 장면을 캡쳐한 것이다. 하단에 흐르는 자막에는 ‘[편성변경안내] 오늘 특집프로그램 방송 관계로, <다큐 공감>은 방송되지 않습니다.’라는 안내가 흐르고 있다.

 

<다큐공감> 시간에 <특집 다큐공감>이 방송되고 있는데, <다큐공감>이 방송되지 않는다는 자막이라니... 심지어 이 프로그램은 <다큐공감>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사실, 이 프로그램은 <다큐공감>이 아닌 <특집-KBS 특선 다큐>였다.

 

 

새노조는 이 이상한 프로그램의 제작 과정을 살펴봤다. 그리고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했다. <노보 2면>기사에서 문제 제기한 ‘미국 출장’ 이인호 이사장이 등장한 KBS 프로그램은 뉴스 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8월 1일 방송된 <정전 62주년 특집-6.25 전쟁, 끝나지 않은 역사>에도 이인호 이사장의 행사 기조 연설과 미국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 내용이 이 프로그램 전반부에 배치돼 있다. 이인호 이사장의 미국 활동이 뉴스와 다큐 프로그램에서 모두 홍보된 셈이다.

 

@ 1,2편 시리즈 기획물이 별도 특집으로 둔갑, 왜?

 

협력제작국이 제작하는 <다큐공감>은 외주 제작으로 이뤄진다. 한국전쟁 유업재단이 미국 현지에서 추진하고 있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에 대한 기록 작업과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한국전쟁의 실상을 다루는 <다큐공감>프로그램은 당초 1,2편 시리즈로 기획됐다.

 

지난 6월 23일 한국전쟁 유업재단 측 보도자료를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 뉴욕발 통신사 기사에서는 ‘KBS-TV는 6.25 전쟁 65주년 특집 프로로 한국전쟁 유업재단의 프로젝트를 조명하는 2부작을 6월 27일과 8월 1일 각각 방영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날짜까지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예정된 6월 27일에는 1편이 <다큐공감>을 통해서 방송됐지만, 2편은 8월 1일 기획과는 다르게 별도의 <특집>으로 방송됐다. 2편에는 이인호 이사장이 등장한다.

 

프로그램 제작에 관여한 한 PD는 “처음에는 다큐공감에서 한 편 하는 걸로 기획됐는데, 뒤에 <KBS 특선 다큐>에서 비슷한 걸 한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KBS 특선 다큐>는 일요일 밤 12시 25분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으로, 대부분 구매 또는 협찬을 통해 제작되는 프로그램이 방송된다. 이인호 이사장이 등장하는 <다큐공감 2편>이 <특집-KBS 특선 다큐>라는 별도의 프로그램으로 둔갑했고, 방송 시간도 일요일 자정에서 프라임 시간대인 수요일 저녁 7시대로 옮겨진 것이다.

 

@ 특집 프로그램 한 편에 6700만 원 투입?

 

<다큐공감>의 경우, 한 편 제작비는 기본 3100만 원 선이다. 방송 이후 시청률이 매우 높을 경우, 인센티브 형식으로 최대 5천만 원까지 지급할 수 있지만 그런 사례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 이인호 이사장의 미국 출장 내용이 담긴 <특집>프로그램의 제작비는 무려 6,790만 원이 지급됐다. 더군다나 외주제작사도 <다큐공감 1편>을 제작한 동일한 제작사였고, 시청률도 둘 다 5%대로 비슷하게 기록했다. 하지만 1편에 비해 이 <특집> 제작비는 두 배가 넘게 지급된 것이다. 특히, <KBS 특선 다큐>는 통상 협찬을 통해서 제작되는 프로그램임에도, 협력제작국은 별도의 프로그램 기획안을 편제회의에 상정해, 막대한 제작비를 지원했다.

 

새노조는 시리즈 1,2편으로 기획된 <다큐공감> 중 이인호 이사장이 등장하는 2편이 왜<KBS 특선 다큐>로 바뀌고, 협찬으로 제작하는 프로그램에 왜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했는지를 확인해 봤다.

 

행사를 기획한 한종우 한국전쟁 유업재단 이사장은 당초 제작비 협찬 문제로 인해 방송 여부가 불투명했다고 털어놨다. 한 이사장은 “저도 시간을 많이 할애했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방송)돼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강하게 밀어 붙이고 싶었는데, 그때 협찬 문제가 걸렸다”고 설명했다. 제작을 담당한 외주 PD도 “사실은 협찬을 받아오라고 KBS에서 요구를 했지만, 협찬을 못 받았고, 유업재단에서도 협찬이 안 돼, 완전히 취소됐었다”며 “협력 제작국도 포기했던 프로그램”이라고 밝혔다.

 

결국, <KBS 특선 다큐> 프로그램의 특성상 협찬을 구하지 못해 외주제작사도, 한국전쟁 유업재단도, 협력제작국까지 포기했던 프로그램에 6,790만원이 투입돼 방송이 된 것이다. 막대한 예산까지 이례적으로 투입하면서 프로그램을 살려낸 편성본부의 ‘보이지 않는 손’은 누구인가? 또 ‘역사학자’로서 프로그램에 주요하게 등장한 이인호 이사장이 프로그램 편성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스스로 명확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편성본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죽엇던 프로그램을 살리고, 이를 위해 거액의 제작비까지 쓰도록 용인했다면, 응분의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또 만에 하나, 프로그램 편성에 이인호 이사장의 영향력이 미쳤다면 이는 분명한 방송법 위반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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