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해킹 보도, 언론이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가?
국정원 해킹 보도, 언론이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가?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5.11.05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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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1/8에 불과한 보도량, 기획.탐사보도는 전무

지난 7월 5일 세계 각국 정부기관에 해킹 프로그램을 판매해 온 이탈리아 해킹팀의 관리자 서버가 통째로 해킹됐다. 프로그램을 구입한 기관 가운데는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 ‘5163부대’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 사실은 주류 언론 가운데는 처음으로 지난 9일 ‘한국일보’를 통해 보도됐고, 그 다음날 방송 가운데는 처음으로 JTBC가 관련 사실을 보도했다. 국정원 고위관계자가 야당 인사에게 이 프로그램의 구매 사실을 시인했다는 보도가 나온 당일(13일, 한겨레)까지 공영방송 KBS 메인뉴스인 [뉴스9]에서 관련 뉴스는 단 한 건도 보도되지 않았다. 같은 기간 종편인 JTBC의 메인뉴스인 [뉴스룸]에서는 관련 리포트가 10꼭지나 나가고 있었다.

 

국정원 해명으로 일관한 뒤늦은 1보

 

KBS <뉴스9>가 관련 사실을 처음으로 보도한 것은 한국일보가 첫 보도를 한 지 5일이 지난 14일이었다. 국회 정보위가 열려 국정원이 이탈리아 업체로부터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사실을 공식 시인한 날이었다. 이날 <뉴스9>에서는 뉴스 중반인 11,12번째 꼭지로 [국정원 “북한 해킹 대비 프로그램 구입, 사철 없었다”], [국정원 구매 ‘RSC 해킹’...PC.스마트폰 정보 ‘줄줄’]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보도했다. 관련 사안을 보도한 첫 리포트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철저하게 국정원의 해명 위주로 보도됐다. 모두 7개의 보도 문장과 2개의 녹취로 구성된 리포트 내용 가운데 6개의 문장과 1개의 녹취가 이병호 국정원장이 밝힌 내용이었으며, 국정원이 해명한 내용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나 검증 시도는 전혀 없었다. 국정원이 구입한 해킹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한 2번째 리포트 또한 프로그램의 작동 원리와 국정원이 해킹업체에 문의한 내용에 대해 팩트 위주로 보도했을 뿐,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 인사에 대한 사찰을 했을 가능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국정원 해명’ 전한 황당한 단독...문제제기는 전무

 

국정원 해명으로 일관했던 1보 이후 다음 날 KBS의 보도는 더욱 황당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라는 익명의 취재원을 인용해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을 적용한 IP는 모두 87개였으며, 이는 모두 외국인 소유로 상당수는 북한 공작원과 연계된 인사라는 단독 보도였다. 그런데 이 같은 주장의 근거는 관계자의 주장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주장의 신빙성에 대한 최소한의 의심이나 문제제기 또한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문제가 된 해킹 프로그램이 적용된 케이스와 IP 주소를 알 수 있는 곳은 국정원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 보도는 ‘정부 고위 관계자’라는 실체가 불분명한 취재원을 통해 결국 국정원의 일방적 주장을 그대로 시청자들에게 전해준 것이었다. 같은 날 SBS <뉴스8>이 [北 해킹 대비 구입?...“목표는 변호사”]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보도한 것과 비교하면 우리 보도의 문제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SBS는 위키리크스를 인용해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을 이용해 한 변호사를 감시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혀, 전날 국정원의 해명과 달리 민간인을 상대로 해킹 프로그램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이밖에도 국정원이 우리 국민들이 사용하는 안드로이드 OS와 카카오톡 앱에 대해 집중 문의했던 사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감청장비를 집중 구입했던 점, 해킹업체에 원격 감염과 미끼 URL 생성 등을 요구한 사실 등 다른 언론에 보도된 사실을 볼 때 북한 해킹에 대비한 연구용이라는 국정원의 해명에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지만, 우리 보도는 국정원의 해명에 어떠한 문제제기도 없었으며 오히려 해명을 적극적으로 전하는데 앞장섰다.

 

KBS 8 vs SBS 10 vs JTBC 64 ... 기획 탐사 보도는 전무

 

KBS는 국정원의 해명을 전하는 데는 적극적이었지만 관련 사안을 보도하는 데는 지극히 소극적이었다. 이번 사안이 언론에 첫 보도된 지난 9일부터 22일까지 14일간 KBS <뉴스9>를 통해 보도된 리포트는 8건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10건을 보도한 SBS에 비해서도 적었고, 64건을 보도한 JTBC에 비해서는 불과 1/8밖에 되지 않는 보도량이었다.

 

국정원 해킹 관련 보도 건수(7.9-7.22)

KBS

SBS

JTBC

6

8

64

더 큰 문제는 보도 내용이었다. 보도된 8건의 리포트 제목은 아래와 같았다.

 

7/14 국정원 “북한 해킹 대비 프로그램 구입, 사찰 없었다”

7/14 국정원 구매 ‘RCS 해킹’…PC·스마트폰 정보 ‘줄줄’

7/15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 87개 외국 IP에 사용”…대상은?

7/17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 사용 기록 공개”…여야 공방

7/19 국정원 직원 유서 공개…“내국인 사찰 없었다”

7/19 여 “무분별한 정쟁 자제” vs 야 “사찰 추가 의혹”

7/20 여 “금주 내 기록 복구”…야 “유서로 의혹 더 짙어져”

7/20 경찰, 국정원 임 씨 직원 ‘자살 결론’…유서 추가 공개

 

리포트 주제별 분류 (건)

국정원/정부 해명

3

여야 공방

2

국정원 직원 자살

2

RSC 프로그램 소개

1

8건의 리포트를 리포트 내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주제별로 분류해 보면 국정원/정부의 해명이 3건, 여야 공방이 2건, 국정원 직원 자살 관련 발생이 2건, RSC에 대한 소개가 1건이었다. 이 가운데 KBS만 단독으로 보도한 리포트는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 87개 외국 IP에 사용”…대상은?] 단 1건이었지만, 이는 앞서 언급한 대로 국정원의 일방적 해명을 전한 내용에 불과했다. 결국 이번 사안과 관련해 KBS가 단독으로 기획 취재해 발굴한 보도는 단 한 건도 없었던 것이다. 이는 KBS와 별 차이 없는 10건의 리포트를 한 SBS가 [北 해킹 대비해 구입?…"목표는 변호사"](7월 15일)와 [메르스 사이트 위장돼 해킹…국정원 "테스트용"](7월 22일) 등 독자적인 기획 취재를 통해 국정원의 해명과 관련해 의문점을 제기한 2건의 리포트를 단독 보도한 것과도 비교된다.

 

보도 문장 내용 분석 (총 79문장)

정부여당 입장 및 해명

30.5문장 (38.6%)

야당 입장

11.5문장 (14.5%)

분석 및 의문 제기

0문장 (0%)

구체적 보도 내용을 분석해 보면 더욱 심각했다. 8건의 리포트에 사용된 문장은 일반 문장 66개와 녹취 13개 등 모두 79개였다. 이 가운데 국정원과 새누리당을 포함한 정부여당의 입장이나 해명을 담은 문장은 모두 30.5문장으로 전체 보도 내용의 38.6%를 차지했다. 이는 국정원의 해명에 의문을 제기하는 야당의 입장을 담은 11.5문장에 비해 3배 가까이나 많은 분량이었다. 더구나 야당의 입을 빌리지 않고 국정원의 해명에 대해 분석을 하거나 의문을 제기한 문장은 단 한 문장도 없었다. 결국 우리 보도는 사건 발생에 대한 팩트 전달과 이에 대한 국정원의 해명, 이를 둘러싼 여야 공방으로 100% 채워졌을 뿐, 언론으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검증보도는 전무했던 것이다.

 

KBS 보도, 왜 이렇게 망가졌나?

 

국가 정보기관이 통신비밀보호법과 정보통신망이용법 등 현행법을 어겨가며 민간인에 대한 사찰을 벌인 게 아니냐는 관련 증거들이 제시되고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공영방송 KBS는 사건 발생 2주가 넘게 지나도록 아무런 검증보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한때 국내 언론 가운데 가장 뛰어난 탐사보도를 했던 KBS였건만, 이제는 언론으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 사안과 관련해 가장 핵심적인 취재 대상은 최초에 유출된 400기가바이트 분량의 해킹팀의 관리자 서버 자료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 KBS 보도본부 내에서 이에 대해 키를 잡고 취재를 하는 부서는 없다. 이 정도 사안이라면 TF를 구성할 만도 하지만 그런 움직임 또한 찾아볼 수 없다. KBS는 지난해 문창극 총리 후보자 검증 보도와 올해 이완구 총리 후보자 검증 보도에서 잇딴 특정 보도를 통해 언론으로의 위상을 드높였지만, 보도본부 수뇌부들은 오히려 이로 인해 검증 보도에 대해서는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 이미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히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정권에 불리한 사안에 대한 TF 구성은 더 이상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고, 과거 번뜩이는 검증의 칼날을 보여줬던 탐사팀은 데일리뉴스로부터 자연스럽게 배제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KBS 기자들의 펜 끝은 자연스럽게 무뎌져 가고 있고, 이 때문에 인터넷뉴스 홈페이지에는 타사와 차별되는 킬러 콘테츠를 부각시키려 해도 올릴 아이템이 없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조대현, 강선규 1년...공정방송 훼손 책임 물을 것

 

조대현 사장이 취임하고 강선규 보도본부장이 임명된 지 1년이 지났다. 조 사장 취임 직전 문창극 총리 후보자 검증 보도로 반짝했던 KBS 보도는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부당한 보도 개입으로 인해 직원들로부터 쫓겨났던 길환영 사장 시절로 정확히 되돌아갔다.

다음 달 초면 취임 1년을 맞는 강선규 보도본부장은 양대 노동조합원들로부터의 신임투표를 통해 보도본부 구성원들로부터의 엄정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강선규 보도본부장은 이미 이완구 총리 관련 해설 교체와 ‘이승만 정부 망명설’ 관련 굴욕적 반론보도로 인해 공영방송의 보도를 책임지는 수장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낸 바 있다. 이승만 보도 관련 외부의 부당한 인사 개입과 길환영 사장 퇴진 과정에 앞장섰던 후배 기자들에 대한 무더기 징계 과정에서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했던 사실 또한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우리는 공정방송을 되찾겠다는 직원들의 열망을 무참히 짓밟은 조 사장과 강 본부장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내릴 것이다. 또한 그들이 저질렀던 공정방송 훼손의 사례들을 공영방송 역사에 하나하나 분명히 기록할 것이다.

 

 

2015년 7월 23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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