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보 26호] 단협체결!새노조 1막2장, 이제 시작됩니다
[특보 26호] 단협체결!새노조 1막2장, 이제 시작됩니다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0.12.03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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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협약 체결!

KBS본부가 공정방송 향해 새롭게 출발합니다!

부끄럽지 않은 KBS

분열이라는 주변의 비아냥을 들으며 새 노조를 만들 때도, 7월의 폭염 속에서 29일간의 파업을 이어갈 때도 우리 조합원들의 희망은 하나였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KBS’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공영방송의 심장이 군홧발에 짓밟혀도, 정권이 관제사장에 이어 특보사장을 내려 보내도 노동조합은 무기력하기만 했습니다. 조합원들이 징계당하고 인사보복으로 쫓겨 갈 땐 외면하기까지 했습니다. 조합원들은 그런 노동조합이 부끄러웠습니다. 부끄러운 노동조합은 조합원을 부끄럽게 만들었고 KBS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노동조합이라는 견제장치가 제 역할을 못하는 우리의 일터는 피폐해졌고 권력과 자본에 대한 날 선 예봉은 무뎌졌습니다. 국민들로부터는 정권의 입이라는 손가락질까지 받고 있습니다.

이제 언론노조 KBS본부가 전면에 나섰습니다. KBS의 퇴행은 바닥을 칠 것입니다. 부끄러운 KBS를 자랑스런 KBS로 바꿔 나가겠습니다.

당당하고 행복한 조합원

우리 조합원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KBS본부의 독자적인 공정방송위원회(이하 공방위)가 설치되었습니다. 12월 중에 첫 공방위가 개최될 것입니다. 정례 공방위는 두 달에 한 번, 임시 공방위는 월 1회를 열 수 있습니다. 단협에 보장된 18번의 공방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개최하겠습니다. 각 본부별, 지역별 편성위원회도 활성화하겠습니다. 우리 조합원들이 관제 방송 제작에 끌려가 부역했다는 자괴감에 빠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조합원은 12월 31일 그 해의 마지막 날 영문도 모른 체 지역 발령을 받았습니다. 어떤 조합원은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르는 지역순환근무 원칙 때문에 지역에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단체협약이 없어 소중한 조합원들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제 부당한 인사와 고용불안을 야기하는 무원칙한 조직개악으로부터 조합원들을 지켜 낼 제도적 틀을 확보했습니다. 힘이 없어 조합원을 지키지 못하는 못난 조합이 되지 않겠습니다.

 

공정방송 위해 지독히 싸우겠습니다

KBS본부 전용 사무실이 생깁니다. 전임자도 둘 것입니다. 이제야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제대로 된 토대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단체협약이 없어서라는 옹색한 변명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가 진정한 싸움의 시작입니다. 공정방송을 위해 지독히 싸울 것입니다. 우리의 뒤에는 제대로 된 공영방송 KBS를 염원하는 수많은 시민들이 있습니다. 결코 그 기대 져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절대가치, 공정방송을 향해 KBS본부가 새롭게 출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상(感傷)에 젖습니다. 단체협약 체결은 노동조합의 기본이며 출발선에 불과하지만, 당장에 절박하고 화급한 일들이 다퉈 행동을 요구하고 있지만, 젖은 마음은 스스로 지난 세월을 헤아립니다. 12월 2일, 정확히 1년만입니다. 파업 찬반투표가 부결돼 KBS 노조의 파산선고가 내려진 지난해 그 날로부터 꼭 1년, 새노조가 헤쳐온 험한 시간과 새노조가 흘린 거친 땀방울을 생각합니다.

 

‘호랑이 등에 탔다’. 새노조 위원장을 시작했을 때 사측 간부가 저를 걱정하며 한 말이었지만, 사나운 ‘호랑이’는 동시에 현명했습니다. 그 ‘호랑이’가 조금씩 힘을 키워 지난 1년, 김인규 사장의 일방독주에 브레이크를 걸고, 팽팽한 견제의 밧줄을 비끌어 맸습니다. 뜨거웠던 7월, 29일간의 파업은 변화의 내압(內壓)을 최고조로 높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단단한 벽이 헐리고, 굳게 닫힌 문이 열렸습니다.

무게중심의 이동을 느낍니다. 본관 6층 사장실로 몰린 힘의 편중이 깨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KBS에서는 불가능해보였던 ‘천안함 의문’ 방송이 <추적 60분>의 전파를 타고, 성역과 금기에 도전하는 몸짓들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새노조의 파업과 활동을 지켜보며 KBS에 희망을 거는 시선이 늘고 있습니다. 그 변화의 흐름은 ‘KBS 신뢰도 1위 회복’의 추세와 크게 빗나가지 않습니다.

 

조합원 동지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뽑힌 흉터가 아직 큼지막합니다. ‘쌈’, ‘미디어포커스’, ‘시사투나잇’이라는 고유명사로도 뽑혔고, 제작 자율성이라는 추상명사로도 제거됐습니다. 탐사보도팀 기자와 피디의 이름도 하나둘씩 사라졌습니다. 어쩌면 가장 가슴 아프게 삭제된 것은 ‘한국 사회의 진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뽑혀나간 벌판에 남겨지고 나서야 우린 언론 자유를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는 것, 너무 쉽게 얻은 것이라는 깨달음이 찾아왔지만, 항상 그렇듯 깨달음은 뒤늦고 댓가는 큽니다.

언론 노동자의 생존권과 저널리즘을 말하고 있지만 ‘새노조는 정치투쟁(政治鬪爭)을 하고 있다’는 말도 들립니다. 사측은 ‘단체협약 가처분 소송’에서 새노조를 정치세력으로 규정하고 있고, 아직도 대법원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백번 양보해 새노조가 정치세력이라면, 백배는 더 정치적인 사람과 세력이 KBS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언론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정치 프레임으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스스로 KBS를 찌르는 자해(自害) 행위입니다.

냉소와 체념을 걷어내고 뭔가 판을 벌였다는 자신감을 갖기까지, 따지고 보면 2년 넘는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겨우 단체협약 체결해놓고 새노조가 뭘 할 수 있을까 심각하게 질문을 던진다면, 그렇습니다, 변변한 역할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냉소와 체념은 그동안 차고 넘쳤고, 누구 좋은 일인지도 알게 됐습니다. 더 있습니다. 새노조의 길이야말로 우리의 밥그릇과 복지를 더 키우고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정당성이 될 것입니다. ‘뭐 한 게 있다고 더 달라고 하느냐’는 국민의 질책에 우리는 이제야 판을 벌여 답을 찾습니다. 이 길이 아니고는 달리 길도 없지 않습니까?

엄경철 올림

11월 17일 밤 10시 반, 추적 60분, ‘의문의 천안함, 논란은 끝났나?’편의 테입이 주조로 넘어갔다. 방송이 될까 안 될까 마음 졸이던 며칠 동안의 긴장이 한꺼번에 풀어졌다. 우리는 회사 앞 삼겹살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며 엄청난 양의 폭탄주를 마셨다. 방송이 나갔다는 안도감과 방송 내용이 훼손됐다는 분노가 뒤섞인 채로.

추적 60분 천안함편은 모두 5개의 VCR로 구성돼 있었다. 이 가운데 이화섭 시사제작국장과 김현 시사제작 1부장이 주로 문제 삼았던 것은 5번 VCR, ‘신뢰의 조건은?’이었다.

5번 VCR, '신뢰의 조건은?‘은 1) 정부와 군이 불신을 자초했으며, 2) 그러면서도 오히려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이념적으로 공격하고 있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이 가운데 1)을 뒷받침하는 사례는 최근에 있었던 가리비 논란과 휘어진 스크류 조사를 스웨덴팀이 분석했다는 합조단의 거짓말, 천안함 유실 무기를 공개하겠다고 해놓고도 피폭 처리해버린 말바꾸기였다. 간부들은 이 사례들을 모두 빼라고 요구했다. 이 가운데 가리비 논란이 삭제됐다. 2)를 뒷받침하는 사례는 이명박 대통령의 “천안함을 믿지 않는 세력은 김정일을 추종하는 것이다(라고 황장엽씨가 말했다)“라는 발언, 그리고 노종면, 이종인 씨를 상대로 벌어졌던 국회의 사상 검증 해프닝 등이었다. 간부들은 애초 기획 의도와 맞지 않는데다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다며 이 부분 역시 모두 삭제하라고 요구했고 실제로 삭제됐다.

스튜디오 원고 역시 대폭 수정됐다. 스튜디오 원고는 보통 VCR에 나온 핵심 사실을 재확인 또는 강조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이 날 방송에서만큼은 VCR 내용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수정됐다. ‘의혹’이라는 낱말은 ‘궁금증’으로, ‘재조사’라는 낱말은 ‘추가 검증’ 또는 ‘상호 검증’으로 바꾸고, ‘정부가 진상규명을 위해 총력을 다했다’ 등의 표현을 추가하라는 게 국장과 부장의 요구였다. 다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스튜디오 원고는 톤이 낮아졌고 밋밋해졌다. 전체 흐름과도 잘 맞지 않게 되었다.

우여 곡절 끝에 방송은 나갔다. 의도하지 않은 노이즈 마케팅의 효과로 기대보다 큰 관심도 받았다. 불방 가능성이 트위터를 통해 알려지면서 추적 60분은 박태환의 금메달 소식과 더불어 트위터 실시간 이슈 1,2위를 다퉜다. 제작진을 팔로우하는 사람은 하룻밤 사이 3천명 가까이 늘었다. 조.중.동과 방송3사는 기사를 받지 않았지만 여러 매체에서 기사를 받았고 다음 아고라 등에서도 활발한 토론이 벌어졌다. 제작진에게는 여러 군데서 인터뷰 요청이 오기도 했다. 그러나 방송이 나가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국장은 조정 과정에서 이른바 ‘테두리권’을 앞세웠다. 국장에게는 방송 내용은 물론이고 방송 여부까지 모두 결정할 수 있는 업무 지시권이 있다는 것이다. 지시를 상당 부분 받아들여 VCR의 내용을 대폭 수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이 취재한 단독 팩트(스크루와 무기 피폭)까지 삭제하지 않으면 방송을 내보낼 수 없다고 윽박질렀다. 그리고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스스로를 포함한 제작진 모두를 인사위원회에 넘기겠다고 말했다. ‘테두리권’의 근거가 대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그 정도의 권한이라면 편성규약에 명시돼있는 제작진의 자율성은 설 자리가 없다.

두 권리 주장이 맞부딪히는 상황에서는 현실적인 힘이 빚어내는 지형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이번 방송에 앞서 시사제작국에서는 제작 자율성과 ‘테두리권’의 충돌이 여러 차례 있었다. G20 특집 방송과 미디어 비평을 둘러싼 기자들의 저항이 있었고 추적 60분에서는 조현오 동영상 사태가 있었다. 이번 방송에서는 특히 단협 체결에 성공한 언론 노조 KBS 본부의 역할도 상당했다. 이런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 한 뼘씩 한 뼘씩 제작 자율성의 공간이 넓어졌고 추적 60분 천안함 편은 그 공간 안에서 부분적이나마 방송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리고 꼭 그만큼 제작 자율성의 공간을 조금 더 넓혔을 것이다. 내 땅이 넓을수록 더 과감하게 멀리까지 진출해 영토를 넓힐 수 있는 땅 따먹기와 비슷하다. 다음 사람은 여기에서 시작해서 조금 더 멀리가면 된다.


참으로 길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조합의 기본권 중에서도 기본권인 단체협약의 체결을 터무니없는 이유로 미루고, 다른 목적을 위해 활용하려 하고, 조금이라도 늦춰 KBS본부를 약화시키려 안간힘을 쓰던 자들에게는 새삼 분노가 치밉니다. 그러나 눈을 돌려보면 이 땅의 노동자들이 조합을 결성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는데 걸리는 평균적인 시간, 꼭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을 뿐입니다. 때로 인내의 한계에 이르는 힘겨운 시간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언론노동자들보다 훨씬 더 열악한 상황의 노동자들이 겪었던 고통을 공감했으니, “나쁠 것 없다, 앞으로 ‘낮은 곳으로의 연대’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지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이릅니다.

조합에 가입하는 것이 곧 신변의 변화와 불이익을 초래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세상은, 적어도 KBS는 ’87년 민주화 대투쟁이전으로 퇴행하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서 조합을 세운 힘은 ‘부끄러움과 분노’였습니다. ‘쪽 팔려서 파업한다.’는 구호는 비(非)방송용 표현이었지만 그 어떤 말보다 우리의 심정을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었습니다. 이제 그 ‘부끄러움과 분노’에서 비롯된 KBS본부 조합원들의 치열한 투쟁으로 조합을 세우고 단체협약을 쟁취했습니다. ‘공정의 다리’를 건너 ‘공영’에 이를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격렬한 전투가 이 다리 위에서 펼쳐지겠지만, 교두보를 우리가 확보한 만큼 승리는 시간의 문제일 뿐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앞으로 단체협약을 기반으로 한 KBS본부의 치열한 보도투쟁을 요청드립니다. 우리 언론노동자들이 노동자 의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감내하면서도, 우리의 권익보다 언론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언제나 앞자리에 세운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이라 생각합니다. 언론을 우매한 백성들을 길들이는 도구로, 부정한 자본의 이익을 창출하는 수단으로 밖에 알지 못하는 자들을 우리가 단죄하는 유일한, 최선의 길은 공정보도를 다시 세우는 일이라 믿습니다. 언론은 결코 힘으로 장악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민주주의의 회복을 염원하는 시민들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라 믿습니다.

이제 그 투쟁의 선두에 언론노조 KBS 본부가 섰습니다. 새롭게 태동한 힘으로 공정방송과 언론독립을 향한 투쟁의 장을 힘차게 열어주십시오. 지난 3년간 언론장악을 꿈꾸는 자들에 맞서 싸우며 언론노동자들이 얻은 경험과 지혜는 KBS본부의 든든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오랜 싸움에 기력을 소진했지만 KBS본부의 힘찬 출정에 MBC본부를 비롯한 언론노조 지본부들이 기꺼이 함께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대표 공영방송의 자존과 자부로 KBS 본부가 승리의 깃발을 힘차게 세울 것을 염원하고 확신합니다.

11월 1일 미디어비평 제작진은 G20 관련 보도를 분석하겠다는 아이템을 발제했다. 시의적절하고 의미 있는 아이템이라는 데 제작진 모두가 동의했다. 최근 G20과 관련한 기사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요한 국가적 행사에 대해 언론이 어떤 내용을 보도하고 있는지, 내외신 언론의 시각 차이는 무엇인지,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 검증보도를 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면밀히 분석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국장은 바로 이 아이템은 ‘안 된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또 이화섭이었다. KBS가 G20 주관방송사이며, 야당과 새노조에서 G20 보도를 문제삼았다는 게 반대의 논리였다. 국장은 “해당 아이템을 방영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눈을 찌르는 자승자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제작진은 국장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G20 주관방송사면 G20 관련보도를 다룰 수 없습니까? 야당과 국감에서 G20 관련보도를 문제 삼으면 우리 프로그램에서는 할 수 없습니까?”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의 자존심을 걸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제작진의 뜻이었다.

국장은 대체 아이템 취재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제작진은 G20 보도 분석을 못한다는 국장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준비한 G20 아이템이 방송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취재를 계속하기로 했다. 제작진은 성명서를 쓰고 보도위원회에 정식으로 안건을 상정했다. 제작진은 성명서를 통해 제작진의 결정이 무리한 것이 아님을, G20 주관방송사이기 때문에 또는 야당의 지적이 있었다고 해서 못하는 아이템이 아님을 상식에 호소했다.

시사제작국 총회가 열렸다. 총회에서 제작진은 이 아이템이 왜 나가야하는지 충분히 알렸다. 그리고 제작진은 공식적인 문제해결 창구인 보도위원회에 마지막 기대를 걸었다. 보도위원회는 제작진의 손을 들어줬다. 우여곡절 끝에 예정대로 방송은 나갔고, 다행히 그 뒤 방송사 유일의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으로서 문제를 잘 다뤘다는 호평도 따랐다.

제작진 중 한 조합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싸움에서 상식을 따르는 방식이 가장 쉬우면서도 강력한 것임을 확인했다. ‘상식에 반하는 지시’에 대항하는 것이 때로 외롭고 힘든 싸움인 것 같아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상식적인’ 국민들이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 이것이 본질이다.”


최00 사건 관련 임원 최초로 입장 밝혀

지난 달 9일 오전 신관 국제회의실에서 안전관리실 청경을 대상으로 한 매우 특별한 직무 교육이 실시됐다. 지연옥 시청자본부장이 직접 강사로 나섰다. 당시 근무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청경들이 교육에 참가했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야 하는 근무자도 참가했고, 비번 근무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교육에 참가했던 대부분의 청경들은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있어 경계 강화를 위한 정신 교육인 줄 알았다고 한다. 당시 교육에 참가했던 청경 A씨는 “G20을 앞두고 증가 초소를 운영하는 등 경계 강화에 만전을 기하고 있던 때라서 당연히 관련 교육인 줄 알았는데 시청자본부장의 믿기지 않는 강의 내용에 황당했다.”고 했다.

이날 교육에서 지연옥 시청자본부장은 “(최00 사건이) 회사 내에서 잘 해결됐는데 외부에서 일이 터졌다.”고 운을 떼면서 “역사를 보면 진실이 승리하는 경우가 드물다. 역사는 힘센 자의 기록이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시민단체에 의해 비리 혐의로 고발되기도 했고 국회에 출석에 공영방송 KBS의 위상을 끝없이 추락시켰던 최00 사건과 관련해 KBS 임원이 처음으로 직접 언급한 것이다. 지 본부장이 ‘회사 내에서 잘 해결됐고 진실은 승리하지 못한다’라고 발언 한 것은 ‘최00이 잘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힘이 세므로 덮고 잘 넘어갈 수 있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공영방송 KBS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도 무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최00의 그 대단한 힘 때문임을 확인한 것이다. 또 지본부장은 “혹시라도 시민단체와 연계된 사람이 있으면 빨리 소를 취하해라. 내 얼굴에 침 뱉기다. 밖에다 대고 떠들지 마라. 지난 일은 문제 삼지 않겠다.”는 협박성 발언까지 했다.

교육을 끝마치고 나온 청경 B씨는 “인간적인 모멸감이 들었다. 아무리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는 청경이라고 해도 우리를 얼마나 약자로 알면 그렇게 대놓고 말 했겠는가”라고 했다. 또 다른 청경 C씨는 “집에도 못 들어가고 직무 교육이랍시고 불러 놓고 조폭처럼 까불면 죽는다는 식의 협박에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1월 개편을 앞두고 ‘TV-라디오 간 PD 교류'를 위한 공문이 시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정작 대상이 되는 TV와 라디오 PD들은 목적도 불분명하고 현실성도 없는 교류안에 모두 반대하고 있지만 콘텐츠본부장과 사측은 기어코 이를 강행하려는 듯하다. TV-라디오 교류안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왜 PD 조합원들은 이를 반대하고 있을까.

첫째, 라디오와 TV 각 매체에 대한 고민과 비전 제시 없이 일단 인력교류부터 하고보자는 발상은 일의 순서가 뒤바뀐 것이며 무책임의 소산이다. 매체 경쟁력을 높이고 다매체 시대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비전과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수립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인력운영의 변화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그 때 할 일이다.

덧붙여서 콘텐츠본부장이 TV, 라디오 양 매체를 아우르는 수장으로 인사를 하고자 한다면 그 첫 번째는 '신입사원 확충과 보복인사의 원상복귀' 같은 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들이어야 한다. 2년이 다 되도록 신입사원 충원은 없고 그나마 뽑은 방송 저널리스트는 지방으로 내려가면 언제 현업으로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지난 3월에는 5명의 라디오PD가 보복인사로 지방으로 쫓겨났고, 바른 말을 하던 PD들은 비제작부서로 발령난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을 원상 복귀시키고 제작현장의 인력 효율화를 먼저 꾀한 후에 다음 단계를 밟는 것이 순리다.

둘째, 본부장은 부인하고 있지만 인력교류를 통해 라디오의 젊은 PD를 데려가서 TV 인력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라디오가 좋아서 라디오를 지원했고 자신의 영역에서 전문성과 열정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 PD를 다른 매체로 발령 낸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콘텐츠본부장은 TV만을 위한 본부장이 아니다. 라디오의 미래와 경쟁력까지 고민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라디오, TV 구분할 것 없이 대부분의 PD들이 교류안에 반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콘텐츠본부장이 공문 시행을 강행하려하기 때문에 소문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셋째, 굳이 ‘공문시행’을 제도화해서 인력교류를 하려는 의도에 불순함이 보인다. 이전에도 라디오PD로 일하다 TV로 진로를 바꾼 사례가 종종 있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인사고충 같은 이미 존재하는 경로를 통해 자신의 진로 문제를 해결했다. 콘텐츠본부장은 공문을 시행하는 목적 중의 하나가 양쪽의 수요와 정서를 파악해보는 설문조사에 있다고 한다. 설문조사는 일선 PD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리서치 등 다른 방법을 통해 하면 그만이다. 일단 시행하고 보자는 발상의 이면에는 PD들의 건전한 비판기능을 두려워한 나머지 분리와 이식을 통해 PD 사회를 분열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1. '9시뉴스는 KTV'?

지난 11월1일부터 G20 정상회의 다음날인 13일까지 'KBS 뉴스9'에서는 G20과 관련해 무려 75건의 리포트와 1건의 단신을 다뤘다. 특히 G20 개막 하루 전인 10일부터 폐막일인 12일까지 사흘 동안은 각각 16건, 18건, 18건을 다뤄 사실상 메인 뉴스를 도배하다시피 했다.

단적인 예로 개막 하루 전의 경우간 ‘MBC 뉴스데스크’는 단 5건의 G20 관련 보도에 그쳤지만, 우리는 무려 전체 뉴스 시간의 60% 이상을 G20으로 채웠다.

(11월11일 민언련 논평)

양적으로 오버한 것뿐이라면 ‘주관방송사’여서 그랬다는 핑계라도 댈 것이다. 하지만 보도 내용을 분석해 본 결과 철저하게 행사 홍보에만 매달렸음이 드러났다. 적극적이고 노골적인 G20과 정권 홍보 꼭지가 무려 전체 76건 중 29건(38%)에 달했다. 이 가운데 ‘MB, 회의장 직접 점검(6일)’, ‘MB, 개발도상국 성장 동력 지원’, ‘다섯 차례 정상회의…숨가쁜 하루 마무리’, ‘ 갈등 중재자 리더십 발휘’ (이상 12일) 등은 노골적인 대통령 띄우기에 다름없었다. 또 소중한 메인 뉴스 시간을 할애해 참가국 정상들의 시시콜콜한 의전이나 자리배치 등을 전하는 것이 과연 시청자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 지도 자문해 봐야 한다.

이에 반하여 G20에 비판적인 보도 태도를 보인 것은 ‘2부제 실시에 따른 혼란’을 지적한 꼭지(10일)와 ‘개막일 열린 G20 규탄대회’ 꼭지(11일) 단 2건 뿐이었다. 나머지 45건은 무비판적인 단순 전달에 그쳤다. G20 정상회의의 안전을 위한다며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G20 반대 인사와 단체들은 프레스센터에조차 출입할 수 없게 해 철저하게 기자들부터 격리시킨 것과 같은 부정적인 면들은 그 현상조차 보도하지 않았다.

또한 뉴스 중간 중간 나온 “의장국 코리아, 높아진 국격”, “쾌적한국 일류로 가는길”과 같은 중간 로고는 보는 이들을 민망하게 할 만큼 낯 뜨거운 홍보성 구호여서 마치 'KTV 뉴스'를 보는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2. 홍보 전위부대 시사제작국

‘G20 서울 정상회의’와 관련해 보도본부 시사제작국도 홍보의 전위부대이긴 마찬가지였다. G20과 관련한 각종 생방송과 토론 프로그램을 주도해온 시사제작국은 지난 14일 60분짜리 G20 결산 프로그램인 ‘새로운 경제질서의 재편 G20서울회의’를 제작, 방송했다.

그러나 방송 직후 해당 프로그램 제작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참여한 보도국 경제부의 이영섭 기자는 사내 보도정보게시판에 자신이 작성한 원고와 편집본이 실제 방송에서는 마구잡이로 수정돼 방송됐다며 이의를 제기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이 기자는 당초 이 프로그램을 주도한 탐사제작부의 요청에 따라 12분짜리 꼭지를 제작, 편집해 넘겼는데 8분 30초 정도로 줄어들면서 주요 인터뷰가 다른 사람의 인터뷰로 대체됐고 또 다른 주요 내용에 대한 인터뷰는 드러내 없어졌다는 것이다. 또 제작자의 구성 흐름을 따라 G20 정상회의의 전개 과정을 설명한 원고 내용도 애초 제작 의도와는 다르게 수정됐다는 것이다. 이영섭 기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수정이 이뤄지는 방향은 매우 일관적이다. ‘G20 서울정상회의’의 성과를 조금이라도 흠집내는 부분은 과감하게 삭제되고 바뀌었다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같은 수정이 제작자도 모르는 사이 일방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원고 역시 제작자가 속한 경제부 데스크로부터 이미 최종 승인을 받은 것이었다.

이에 대해 해당 프로그램을 총괄한 탐사제작부의 000팀장은 “1시간 37분이나 되는 편집본을 줄이는 과정에서 원고와 인터뷰 삭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전체적인 큰 흐름속에 불가피하게 벌어진 일로써, 균형을 맞춰 줄였다”고 해명했다.

이번 결산 프로그램은 시작부터 문제였다. 초 단위까지 상세하게 표시된 정체불명의 G20 결산프로그램 제작구성안을 시사제작국 간부들이 이 곳 저 곳의 기자들에게 제작하라고 내밀었다가 반발을 크게 산 바 있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탐사제작부가 키를 잡고 G20을 취재한 보도국 취재기자들에게 각 섹션별로 의뢰해 편집본을 받아 종합 제작한 것이다. 애초부터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던 무리한 프로그램이었다.

언론노조 KBS본부 공정방송추진위원회는 제작자의 의도와 달리 왜곡 수정돼 방송된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다.

G20에 유린당한 정규 프로그램들

지난해 말 김인규 사장이 취임한 후 나타난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가 일반 정규 프로그램이 정부 업적 홍보에 자주 동원된다는 사실이다. 이번에는 <열린음악회>같은 프로그램은 물론 <아침마당>,<다큐멘터리 3일>,<도전 골든벨>처럼 아무리 봐도 G20과는 관련이 없을 것 같은 프로그램들이 이를 주제로 방송을 했다.

<아침마당>에서는 8월 3일 ‘G20 서울 정상회의 D-100 특집’이란 제목으로 G20정상회의 손지애 공동대변인과 이원복 덕성여대교수가 나와 G20의 의미와 중요성을 설파했다. 10월 31일 <서울G-20정상회의 특집 도전 골든벨>에서는 G20행사 자원봉사자들이 출연했다. 왜 <아침마당>같은 프로그램에서까지 G20 개최의 위대함에 대한 사상학습을 해야 하는지, <도전 골든벨>에 출연하고 싶은 고교생들이 줄을 서 있는데 왜 자원봉사자들을 출연시켜야 하는지 일선 제작진들은 대부분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11월 14일 <다큐멘터리 3일>이 방송된 과정은 더욱 황당하다. 애초에 <다큐멘터리 3일>에서 G20을 다루라는 ‘오더’가 내려와 논란이 됐었다. 하지만 주최측에서 경호상의 이유로 난색을 표해 이 기획은 무산됐다. 그런데 행사를 사흘 앞둔 8일, 청와대 측에서 방송을 해달라고 다시 요청을 했다. 다음날인 9일 사측은 기존에 예정돼 있던 아이템을 미루고 무조건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청와대의 한마디에 이미 무산된 홍보성 프로그램을, 그것도 방송을 불과 5일 앞두고 제작할 수는 없다고 제작진들은 항의했으나 담당 데스크는 이미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며 추후 공방위에서 잘잘못을 따져보자며 방송을 강행했다.

관급성 부실 프로그램을 대량으로 양산하다

이번 G20특집에는 ‘징발’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일선 제작진들이 대규모로 동원됐다. 원래 하고 있던 프로그램들은 방치한 채 제작진들은 그야말로 천리마 운동 식으로 방송을 메워야 했다. 40분씩 12편을 방송해 단일 특집 중에서는 최대였던 <특별기획 국가탐구 G-20>의 경우 4명의 PD와 1명의 CP, 특파원들이 달라붙어 3주 만에 기획하고 섭외해 두 나라 취재를 다녀오고, 편집에 녹화까지 마치는 식으로 제작을 했다. PD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획회의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을 만큼 정신없는 취재일정이었고, 기획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위에서 갑자기 떨어진 기획이다 보니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도 공유되지 않아 해외에서 촬영한 원본의 상당수를 날리고 VCR의 절반을 자료화면으로 떼운 경우도 있었다. 태생적으로 ‘관급’인데다 ‘부실’이 될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을 제작해야만 했던 제작진들에게 돌아온 것은 ‘어쨎든 잘 때웠다’는 동료들의 위로뿐이었다.

After Service도 확실하게?

G20 폭풍이 지나가고 그동안 미뤄놨던 프로그램들을 준비하고 있던 지난 16일 화요일, 또 벼락이 떨어졌다. 5일 후 토요일에 <특별기획 G20을 빛낸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두 시간짜리 생방송을 하라는 것. 행사가 끝난지 8일이나 지나서, 그것도 아무런 개념도 잡혀있지 않은 프로그램을 단 사나흘 만에 만들어내라니, 상식 밖의 명령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외주로 넘겨 적당히 시간을 때우는 식으로 방송이 됐다. 3,300분 동안 G20을 목이 빠져라 찬양하고도 무엇이 그리도 아쉬워 또 특집을 하란 말인가. 정부가 하는 일은 혼신의 힘을 다해 홍보해야 한다는 사측의 강박관념도 이쯤 되면 거의 편집증 수준이라 할 만하다.


라디오는 이미 지난 여름부터 1라디오를 통해, G20 기획 캠페인 ‘국격을 높입시다’와 공개 심포지엄, ‘G20 신흥국 주재대사에게 듣는다’ 시리즈, 그리고 D-100일, D-30일 특집 등 무수한 G20 특집을 양산하면서, G20 분위기 띄우기에 매진한 바 있다. 그렇다면 G20 개최 당일인 11월 11일과 12일은 어땠을까? 아침 7시부터 자정까지 이틀 내내 반복적으로 쏟아낸 G20 특별방송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첫째, 무리한 시간 편성이란 점이다.

G20회의는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시시각각 정보가 갱신되거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 이벤트가 아니다. 그러기에 이틀 내내 거의 모든 시간을 G20 특집으로 편성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게다가 마치 스포츠 중계를 하듯 중계차를 배치하고 현장에 프로듀서와 리포터를 내보내 시시각각 현장 소식을 전하는 모습은 한 편의 코미디였다.

둘째, 구성의 허술함을 들 수 있다.

무리하게 과다한 방송시간을 편성하고, 그 내용을 채우려다보니, 자연히 구성의 밀도는 떨어지고, 동어반복하는 방송이 되고 말았다. 방송을 하다보면 때론 의례적인 프로그램이 편성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언론사로서의 최소한 모양새는 갖춰야 하는데, 그 마저도 이뤄지지 못한 방송이었다는 것이다. 11일 아침에 있었던 1라디오의 특집 방송과 CBS의 특집방송만 비교해 봐도 그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1라디오 아침 특집 프로그램에선 대국민 협조를 요하는 국무총리 인터뷰와 행사기획단장으로부터 행사와 의전 준비상황, 행사지원 단체로부터 국민들의 글로벌 에티켓을 강조하는 코너 구성을 했다. 이에 비해, CBS는 행사주변 교통상황과 개최득실에 대한 여야의 평가, G20이후 세계경제질서 변화 등에 대해 정리했다. 한번에 봐도 1라디오의 특집방송은 국가행사 홍보에 초점을 둔 캠페인성 방송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부실한 특집이 탄생된 배경에는 편성부터 전체 타이틀, 시간대별 주제까지 간부들의 일사불란한 지휘로 제작된 유래없는 특별방송이란 점이 한 몫을 했다. 애초부터 제작진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기대하긴 어려운 특집이었던 것이다.

셋째, 소구력 없는 일방적인 방송이다.

기본적으로 G20의 의제는 일반 국민들의 피부에 직접 와 닿는 아이템이 아니다. 한 두 프로그램에서 핵심을 정리하고 요약하면 끝날 것을 하루 종일 하는 것도 모자라, 국제협상의 기술이라든가, 자원봉사의 중요성이라든가, 의전의 세계까지 청취자에게 필요 이상의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했다. 게다가 그렇게 전파를 허비하는 사이, 전태일 열사 40주기의 의미나 심각한 비정규직 문제 등 악화된 우리의 노동현실은 철저히 외면되었다. 실제로 청취자의 참여로 이뤄지는 열린토론의 경우 평소 수백 통의 의견이 접수되나, 특집이 방송된 이틀간 청취자의 의견은 거의 전무했다.

넷째, 언론의 비판 기능을 상실한 전시형 방송이다.

이틀간 특집에 출연한 게스트들은 G20 행사 관계자이거나 정부관료, 친정부 혹은 여당인사 등 G20을 홍보하거나 우호적인 입장에 선 출연진이 대부분이었다. 타사의 시사 프로그램의 경우 G20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나 그 이유에 대해 조명하는 코너도 있었지만, 우리 방송에선 오로지 한 목소리만 나왔다. 현장에 중계차가 나가 있었지만 여러 가지 통제로 불편이 많았을 시민들의 목소리마저 없었다. 심지어 G20이 끝난 후 첫 방송인 월요일 아침 시사프로그램에서는 여당 의원의 입장만으로 G20을 평가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틀간 1라디오 G20 특별방송을 통해 라디오의 간부들은 그럴듯한 보고서류로 나름 생색을 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이틀간 KBS의 공영성은 더욱 추락했고, 라디오의 소중한 청취자들은 KBS 라디오에 등을 돌렸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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