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호-16면] 2016년 겨울의 광장, 그리고 미디어 개혁
[225호-16면] 2016년 겨울의 광장, 그리고 미디어 개혁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9.01.0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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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 겨울, 온전히 촛불을 든 시민의 힘으로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돌이켜보면 한국사회에서 개헌과 정권교체는 준비된 조건과 경로에 따라 이루어진 경우가 드물었다. 1987년 6월 항쟁이 만들어낸 개헌과 ‘문민정부’의 출범, 외환위기로 촉발된 1997년 공황 이후의 정권교체가 그랬다. 한국사회의 중요한 변곡점이었던 두 국면에서 나타난 특징 중 하나는 미디어 산업 전반에 대한 점검과 규제체제의 수립이었다. 대개의 법 제·개정과 담당부처 조정과 달리 당시 미디어 규제체제 수립은 정치적 맥락에서 분리될 수 없었다. 

 

 

 

 관리와 방임의 9년

 

  1990년 구성되었던 방송제도연구위원회는 이른바 ‘87년 체제’의 일부를 구성하는 방송체계의 재구축이었다. 언론운동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 위원회는 87년 6월 항쟁 이후 본격화된 언론민주화 요구에 맞서 지상파 공민영 체제를 도입했던 국가의 대응이었다. 1997년 정권교체 이후 미디어 체제의 구축은 방송개혁위원회를 통해 이루어졌다. 통합방송법으로 구체화된 당시의 규제체제 개편은 방송위원회의 권한 강화, 시청자 권리 확대, 그리고 유료방송의 법적 지위와 의무 도입 등을 핵심으로 했다. 당시 규제체제의 수립 또한 정치·경제적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방송위원회는 대통령 중심의 형식적 민주주의 체제가 미디어 체제로 연장되어 합법성을 획득한 기구였다. 유료방송의 법적 지위와 단일한 규제체제의 도입은 이후 모든 정권에서 추진할 뉴미디어 정책, 특히 유료방송 플랫폼 중심의 정부 주도 정책의 출발점이 되었다. 시청자 권리의 확대는 정권교체 이후 방송 민주화를 넘어 방송 콘텐츠와 정책 참여를 요구한 시민영역의 성장이 반영된 결과였다. 

 

  별도의 위원회를 두지 않았으나 이명박 정부의 출범은 또 다른 미디어 체제 개편으로 이어졌다. 이전 정부에서 만들었던 보다 강화된 방송통신위원회의 위상은 대통령 중심의 권력구조에서 방송 뿐 아니라 통신 부문까지 ‘정치적’ 시장화를 주도했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추진된 유료방송 플랫폼(케이블, 위성, DMB, IPTV) 중심의 미디어 정책을 벗어나 ‘여론 다양성’을 명분으로 방송 콘텐츠 사업자인 종합편성채널을 네 곳이나 허용한 것이다. 여기에 방송통신위원회는 유료방송 플랫폼과 통신 부문에서 사실상 방임에 가까운 재벌과 대기업 중심의 시장화를 허용했다. 방송통신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송통신위원회가 대통령 중심의 권력구조의 자장(磁場) 안에서 정치적 수단으로 격하된 셈이다. 이 때 허용했던 유료방송 플랫폼과 통신 부문의 시장화는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함께 아예 방송통신위원회라는 형식적 합의제 기구를 벗어나 미래창조과학부라는 독임제 거대부처에 일임되었다. 반면 방송통신위원회는 정치권력의 구조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지상파 방송,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채널을 관리하는 부처로 축소되었다. 지난 9년 보수정권 아래 미디어 공공성의 위축은 이렇게 정치권력과 관련부처의 관리와 방임이 낳은 결과다.

 

 

 

 시민 참여 의지와 미디어 시장화

 

  정권교체와 대통령 선거의 결과에 따라 미디어 정책과 규제체제가 달라지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러나 그 변화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갈수록 급변하는 미디어 테크놀로지와 환경 변화에 따른 공적 이익을 위한 대응이라면 반드시 필요하다. 촛불 정국이라는 한국사의 또 다른 ‘예외 상태’를 거쳐 탄생한 현 정부에게 주어진 많은 과제 중 미디어 생태계에 대한 진단과 이를 통한 시민 대중의 커뮤니케이션 권리의 강화가 지연되고 있는 것은 그래서 이해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현 정부를 만들어 낸 힘은 정치권과 당시 야당의 역량이 아니었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국정 운영 파행의 단서를 드러낸 것은 일부 언론이었지만 대통령 탄핵을 이루어 낸 힘은 무려 두 달 넘게 전국 도처의 광장에서 벌어진 시민들의 분노와 행동이었다. 공영방송은 황폐화되었고 다수의 신문과 방송이 시장 경쟁의 명령에 포위되어 있을 때, 시민들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소통과 대화의 양식을 만들어 냈다. 침묵하는 공영 방송 대신 광화문 광장이, 탈출구만을 찾는 정치권 대신 평범한 시민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미디어 전경(mediascape)이 펼쳐졌다. 무엇보다 지난 2년의 변화는 정권교체만이 아니라 수동적인 시청자와 수용자에 머물던 시민들이 각자의 발언이 갖는 힘을 확인했던 새로운 대중 커뮤니케이션의 출현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지난 KBS 사장 선출 과정에서 보여준 시민자문단의 숙의 능력이나, 최근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공영방송 사장 선임에서의 국민추천 방식에 대한 높은 지지율1)은 여전히 지난 촛불 정국에서 보여주었던 시민의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청와대 홈페이지의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의 괄목할 수준의 시민참여와 활성화는 정치권력과의 직접 소통 뿐 아니라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참여 의지가 드러난 예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정권교체의 시기마다 필수 과제처럼 반복되어 온 한국 사회 미디어 규제체제 수립에 중요한 전환이 필요함을 뜻한다. 이제 시민들은 당위적인 국민 참여의 구호가 아닌 구체적인 참여의 절차와 방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정권 교체 이후 1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뚜렷한 미디어 정책의 기조나 과제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지난 정부의 방송통신 정책과 미디어 산업의 지형 변화를 돌이켜 보면 이러한 공백 상태는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무엇보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의 미디어 산업 지형은 대기업과 재벌이 새로운 수익 전략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경쟁장이 되어왔다. 여기에 구글,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미디어 자본의 진출로 인한 또 다른 변수는 단순히 ‘뉴미디어’라 부를 수 없는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박근혜 정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로 분리해 놓은 ‘관리와 방임’ 체제의 연속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그 겨울 광장은 어디에 만들어야 하는가

 

  지금의 미디어 규제/진흥체제와 프레임이 만들어진 시기는 무려 18년 전인 2000년 방송법 전부 개정(통합방송법) 때였다. 아마도 당시 방송개혁위원회는 관련 정부부처에 국한되지 않은 마지막 미디어 개혁의 공론장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18년 동안이나 미디어 공공성, 공영방송, 시청자/이용자 권리, 미디어 시장의 공정경쟁, 콘텐츠 심의, 미디어 플랫폼, 광고 시장 등의 변화에 어떠한 사회적 대화와 논의도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도리어 이 변화의 과정 동안 미디어 관련 정부부처는 오래된 방송통신의 관념에 갇혀 규제기관을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했고 달라진 미디어 이용 환경은 대기업과 재벌, 심지어 글로벌 자본에게까지 이윤 축적의 장으로 제공해 왔다. 

 

  몇 달 전 정부여당 일각에서 제기한 ‘가짜뉴스’ 대응 방안을 보고 실망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비록 반려되었다고는 하지만 공개된 안은 현 정부의 미디어 체제와 시민 커뮤니케이션 역량에 대한 이해 부족 뿐 아니라 뚜렷한 미디어 정책 방향의 기조 또한 부재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의 노출이야말로 18년 전 방송개혁위원회의 수준을 넘는 광범위한 사회적 논의기구, 예컨대 미디어개혁위원회와 같은 공론장 구성이 현 정부에 절실히 필요함을 반증하고 있다. 여전히 미디어 관련 정부부처의 역할이 사업자 간 이해 조정, 정치적 논란의 최소화, 4차 산업혁명과 같은 신기루만을 쫓는다면 지금 정부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2016년 겨울, 광장이 만들어낸 정부라면 그 광장이 미디어라는 공간으로 연장되고 지속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 그것이 새로운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정책 수립의 첫 걸음이 되어야 한다.

 

 

 

1)미디어오늘, “문재인 정부 들어 ‘언론은 안녕하신가요’”, 2018년 12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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