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호] KBS 5부작 '이승만 특집' 뉴라이트의 이승만 부활 프로젝트
[37호] KBS 5부작 '이승만 특집' 뉴라이트의 이승만 부활 프로젝트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1.04.26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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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뉴라이트 진영은 8.15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는 시도를 하며 이승만 되살리기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건국절에 대해서는 2년 전 뉴라이트의 대표적 이론가 이영훈 교수가 운을 뗐다. 그는 2006년 7월 31일 중앙일보에 기고한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라는 글에서 8.15 광복절은 외부의 힘으로 얻은 것이고, 조선왕조는 민초들에게 행복을 약속한 문명이 아니었다는 이유를 들어 ‘광복’보다 ‘건국’이 중요하다는 노골적인 주장을 폈다.
2008년 7월 3일에는 한나라당 정갑윤 등 13명 의원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는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우익단체들은 이승만 동상건립, 백범 김구의 10만원권 화폐도안 반대 주장을 폈다. 정부는 8.15 행사 명칭을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및 광복 63주년 경축식’으로 건국절을 앞세워 강조하려다 대한민국 임정 기념사업회 등 광복단체들이 건국절 제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는 등 비난여론이 들끓자 이계획을 포기했다. 하지만 이 날 MB는 연설에서 ‘건국 60년’을 10여 차례나 언급했고,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우익단체들은 청계광장에서 ‘이승만 건국 대통령에 대한 국민 감사 한마당’행사를 개최했다.
2009년 8월 4일, 교과부는 ‘이승만 정부는 친일파 청산에도 노력했다’고 기술하고 제주 4.3항쟁과 여순사건은 삭제하는 등의 새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을 확정함으로서 역사교과서 왜곡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08년 건국절 제정 소동 과정에서 뉴라이트=친일파 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다소 뜸해졌던 이승만 되살리기 운동은 ‘건국 65주년’이 되는 2010년부터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먼저 불을 지핀 것은 김문수 경기도지사. 그는 각종 강연과 기고를 통해 이승만 동상을 광화문에 건립해야 한다며 이승만을 열렬히 찬양하고 있다. 이에 맞춰 인하대 총동창회가 이승만 동상을 교내에 세우겠다고 발표했고, 한기총은 ‘이승만 건국대통령 동상 건립 소위원회’를 출범, 광화문 이승만 동상 건립 추진에 나섰다. KBS 김인규 사장이 <이승만 특집>이야기를 꺼낸 것도 2010년 7월 경이었다.

 

올해 들어서는 이승만 동상 건립 등의 움직임이 더욱 구체화되며 반대쪽과의 갈등도 점점 첨예해지고 있다. 1월 14일에는 국민행동본부(본부장 서정갑)의 ‘애국투쟁기’ 출판기념 행사장에서 4.19혁명 부상 동지회 회원들이 몰려와 4.19 혁명의 ‘의거’ 호칭과 이승만
동상 건립을 맹비난하며 몸싸움을 벌였다.
최근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건국대통령 이승만박사 기념사업회(회장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는 3월에 동상 건립 모금운동 참가자가 400만 명을 돌파했다며 조중동 신문에 광고를 내고, 이승만 136회 탄생 기념 토론회를 주최했다. 그리고 지난주 4.19 기념일에 이 단체 관계자들과 이승만의 양자 이인수씨가 유족들에게 사과를 하겠다며 4.19 민주묘지를 찾았다가 4.19 유족회 등이 거세게 저지해 충돌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두고 51년 동안 아무 말이 없던 이승만 유족이 왜 이 시점에 4.19 희생자에 대한 사과를 하려고 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다. 추론 중의 하나는 이승만 동상과 기념관 건립을 앞두고 자국의 양민을 학살한 이승만의 행적을 희석시키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날 조중동 신문은 ‘아버지 이승만, 불의에 항거한 학생들 장하다 했다’(조선), ‘이승만-4.19 역사적 화해 모색’(중앙 1면 톱기사)등의 기사에서 이승만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했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고려해봤을 때 현재는 ‘이승만 되살리기’가 가시화되고 있는 단계로 보인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8월 15일 KBS에서 5부작으로 <이승만 특집>이 방송된다면? 사람들은 대통령 특보 출신이 사장으로 있는 KBS가 이승만을 ‘건국’대통령으로 만드는 작업에 동참하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뉴라이트, 보수진영이 국민들의 손으로 아낸 독재자를 건국 대통령으로 재정립하려는 데에는 무시무시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 즉, 1948년 이전의 역사를 지워버려 친일이라는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세탁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KBS가 왜 이런 역사의 반역에
동참을 해야 하는가?

 

[3면]

 

 

앞서 지적했듯이 이승만을 국부(國父)로 추앙해 역사를 왜곡하려는 이른바 ‘뉴라이트’ 세력의 준동은 갈수록 그 도를 더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KBS가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조명하는 그것도 5부작에 이르는 대형 다큐멘터리를 기획, 제작하고 있는 것은 결코 오비이락(烏飛梨落)이 아니다.
사측은 아직 제작도 끝나지 않았고, 방송도 되지 않은 프로그램에 대해 ‘공정성’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측의 주장은 한 마디로 ‘개 풀 뜯어먹는 소리다. 왜 이승만 ‘다큐’가 이미 공정성을 상실했는지 따져보자!


인물선정 여론조사 결과 무시
-조사 결과대로 하면 ‘김구’부터 제작해야

사측은 지난해 9월 이른바 <가제: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의 인물 선정을 위해 여론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두 번씩이나 공개적으로 강조했다. 그래서 지난해 하반기 KBS 방송문화연구소는 2번에 걸쳐(한 번은 일반인, 다른 한 번은 전문가 조사)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일반인 조사에서 이승만은 8위에 머물렀다. 1위는 김구였다. 순위별로 3명씩 선택하라는 전문가 조사에서도 1위는 김구(1순위 선호 인물)였다. 이승만은 3위에 그쳤다. 조사 결과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김구’부터 해야 한다. 그런데 지들이 좋아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실시한 이 조사 결과는 꼭꼭 숨겨둔 채 왜 이승만부터 해야 하
는지는 제대로 설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승만 특집 반대한 제작진 교체
사실 문제의 심각성은 애초 이승만만의 특집을 반대한 제작진을 전원 교체하고, 새로운 제작팀을 꾸려 이승만 특집을 강행하고 있다. 제작진이 반대하는 기획을 사람을 교체해서라도 강행하겠다는 것은 KBS방송편성규약이 규정하고 있는 양심과 신념에 따라 특정 업무 지시에 거부할 수 있도록 보장한 실무자의 제작 자율성(제6조 ③항)을 명백하게 침해한 행위다. 말을 듣지 않는다고 제작진을 제멋대로 교체하는 살벌한(?) 환경인데, 새로운 제작진이라고 막무가내 간부들에 맞서 자율성과 공정성을 지켜낼 것이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이미 다시 꾸려진 제작진 가운데 1명이 얼마 전 갑자기 다른 곳으로 인사발령 조치된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무려 5편이나!

 

프로그램 기획안을 보면 위와 같은 주제로 5편을 제작한다고 한다. 우선 KBS가 한 인
물에 대해 60분짜리를 5편(총 300분)이나 한 적은 과거 드라마를 제외하고는 전무하다.
즉 아무런 이유도 없이 5편이라는 과도한 편성을 한 것 자체가 ‘이승만 띄우기’다.

建國대통령으로서의 위상?
사측은 ‘대한민국을 建國한 대통령이니까’라고 한다. 되묻는다. 정말 이승만이 우리 국가를 온전하게 건국한 것이 맞는가? 굳이 헌법을 거론치 않더라도, 우리 국가의 범위가 한반도 전체인 상황에서 남한 단독의 정부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일지는 모르나, 온전하다고는 볼 수 없다.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은 당시에도 김구, 김규식과 같은 진짜 독립운동의 주역들로부터 반대에 부딪혔으며, 지금도 한반도 분단의 고착화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즉 사측이 주장하는 이승만 기획의 출발점인 建國은 동시에 分斷이라는 또 다른 얼굴을 갖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에 비춰볼 때, 이승만 ‘5편’은 오버를 넘어 反헌법적이기까지하다.


2008년에도 2편의 이승만 ‘다큐’ 방송돼
MB 정부 출범 이후에도 이미 이승만을 주제로 한 다큐가 방송된 적이 있다. 3년 전
인 2008년, ‘한국사전’은 2편에 걸쳐 이승만을 조명하였다. 과거 98년에도 2번이나 이승만을 다룬 다큐가 방송된 적이 있다. 이승만을 KBS에서 홀대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직도 후속 인물은 기획조차 안 돼
이승만 다큐의 불공정성이 처음 공론화된 것은 지난해 9월, KBS본부가 문제를 제기하면서부터다. 당시 왜 이승만만을 특집 방송으로 제작하느냐는 우리의 의혹 제기에 제작 책임자들은 그렇지 않다며 여론 조사 등을 통해 후속 인물들을 선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8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승만만 진행되고 있을 뿐 후속 인물, 후속 다큐에 대해선 아무것도 확정된 것이 없다. 사측은 우선 ‘이승만부터 질러보자’는 심산이다.


결국 문제는 ‘특보 사장’
-88% 불신임 길환영, 사장 한마디에 과잉충성

이처럼 온갖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특집을 사측이 여기까지 강행해 온 것은 ‘특보사장’ 때문이다. 사측은 부인하고 있지만 이번 이승만 특집이 지난해 7월 <한국전쟁> 제작팀과 사장과의 점심 자리에서 시작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 사장은 ‘이승만은 대단한 사람이다.’라며 ‘다뤄보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고 이를 88% 불신임 길환영이 덥석 받은 것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잘못된 이승만 특집 기획은 원천적으로 사장에게 책임이 있으며 이를 중단, 취소해야할 책임도 특보 사장에게 있다.

 

[4면]

 

51년 전에 쓰러진 동상,

-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그때 끝났다

4.19 혁명의 뜨거운 열정이 더위를 누르던 1961년 8월에도 서울 남산 마루의 3천 평에 달하는 드넓은 대지 위에는 25미터 높이의 거대한 동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12년 동안 의 이승만 독재와 자유당 부패의 상징물인 ‘이승만 대통령탄신 80주년 기념 동상’이다.
이승만의 동상은 남산 말고도 시내 한 복판인 세종로와 파고다공원(탑골공원)에도 있었다. 지금 이순신 장군이 말뚝으로 서계신 자리도 대형 동상이 서있었다. 파고다공원에 위치한 동상은 기단까지 합쳐 높이가 6미터였다. 이 두 동상은 이승만의 하야가 결정된 날인 4월 26일에 ‘독재자의 퇴진’과 ‘혁명의 승리’에 환호하는 시민들의 손에 의해 끌어 내려졌다.
당시 최고의 시사월간지였던 <사상계>의 사진과 보도에 의하면 “(파고다공원의) 그 동상은 새끼로 묶인 채 몇 시간 동안 시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거리를 끌려 다녔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남산에서 하늘을 독점하며 독재의 시선으로 서울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남산의 동상은 무사했을까? 답은 단순하다. 그 당시 철거 기술로서는 엄두를 내기 힘든 초대형 구조물이었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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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에 세워졌던 초대형 울트라 이승만 동상의 건립 배경은 이승만 독재정권의 단면을 화려하게 보여준다. 1955년 이승만의 80세 생일을 맞아 국무원(국무회의) 사무국은 <이 대통령 제80회 탄신경축 중앙
위원회>의 설립을 의결한다. 이 위원회는 대대적인 경축행사를 기획하고 남산에 초대형 동상을 건립계획을 세운다. 이 위원회의 회장은 이승만의 ‘꼬붕’이자 ‘2인자’로 부정선거의 원흉인 이기붕이며 실제 실행을 위해 전국극장연합회를 조직했다. 전국극장연합회는 정치깡패이자 폭력과 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영화판의 실세로 군림하던 임화수가 부회장을 맡았다.
당시 돈으로 3억 환(1960년에 준공한 김포공항의 건설비용이 3억 환)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은 이기붕이 전국의 극장요금을 담보로 4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금의 상환을 위해 당시 100환짜리 영화요금은 110환으로, 200환을 받던 영화는 220환이 되었다고 한다. 이승만독재 체제를 폭력과 부정부패로 떠받들고 기생 권력을 휘두르던 자들이 국민의 돈으로 독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벌인 '우상쑈‘다. 더구나 동상의 제작은 대표적인 친일 행적을 보였던 조각가 윤효중이 맡았다. 독재의 2인자, 행동대장인 정치깡패, 친일조각가가 어우러진 이승만정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기획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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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열기가 가라앉고 새로운 정권이 출범한 뒤인 1960년 8월이 돼서야 남산의 이승만동상은 철거된다. 거대한 동상은 대부분은 용광로로 사라졌지만 두상은 이승만의 지지자들의 손에 지금도 남아있다.
독재에 저항하고 부정부패에 분노한 시민들은 독재자의 마지막 상징이 땅에 떨어지자 환호했다.
12년의 독재는 철저하게 이승만 개인을 위한 국가운영이었고 독재유지에 협조한 친일파세력과 반민주 반민족세력들의 세상이었다.


참담한 이승만 독재의 이력

독립운동의 내용에 관한 논란을 차치하고도 이승만 독재의 이력은 참담하다. 민족주의 세력의 선거배제, 친일반민족세력의 등용, 반민족특별위원회 강제해산, 전쟁관련 대국민 사기극, 부산정치파동, 국민방위군 사건, 거창양민학살 사건, 사사오입개헌, 조봉암과 진보당 사건, 보안법파동, 경향신문 무기정간, 이승만을 위한 한글 맞춤법, 3.15부정선거, 4.19 당시 187명의 사망과 수 천 명의 부상 등 국민을 사지로 몰고 민주주의와 민족의 평화를 바닥에 떨어뜨린 사건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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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군사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4.19 정신과 의미를 폄하하고 ‘혁명’이 아닌 ‘학생의거’로 주저 앉혔다.
실제로 교과서로 세상을 보던 시절 내내 우리에게 4.19는 ‘의거’였다. 박정희 정권은 5공의 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졌고 ‘독재에 대한 저항’은 묻혀 있었다. 집요하게 ‘군사독재의 연장’을 꿈꾸던 권력과의 투쟁으로 맞서 ‘피를 뿌린 이승만 독재에 대한 저항’은 ‘혁명’이 되었고 한국 민주주의의 정신을 상징하는 역사가 되었다. 1987년에 개정된 대한민국 헌법전문은 ‘3.1운동의 독립정신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승만 독재에 대한 저항’이 모든 법과 가치체계의 원천이고 따라야할 정신이라고 못 박고 있는 셈이다. 이 밖에 이승만에 대한 다른 평가가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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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년 전에 시민들의 힘으로 쓰러진 거대한 우상을 다시 세우려는 세력들이 준동한다. 독립운동의 연장으로 ‘광복’이 아닌 ‘이승만 세력’의 ‘건국’을 주장한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무시하고 친일이라는 치명적 과거를 지우면서 6월 항쟁으로 얻어낸 민주주의의 정신마저 팽개치려한다. ‘건국’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이승만의 역사적 정치적 행위가 감정의 이분법으로만 평가 받는 것은 부당하다. 사안에 따른 재평가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분명하다. ‘시민혁명으로 쫓겨난 최초의 독재자.’ 시민의 힘으로 떨어진 거대한 동상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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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면 KBS 특집이 이승만 띄우기가 아니라고?

4면 51년 전에 쓰러진 동상,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그때 끝났다

5면 ‘사기’와 ‘사죄’를 구분하자

참으로 이상했던 한 독립운동가

6면 제7차 공정방송위원회(정례) 보고서

2010.12.27. KBS본부 성명_<이승만 특집>계획을 당장 중단하라!

2011.1.27. 공추위보고서 6호_여전히 <이승만 특집>을 용납할 수

없는 이유

7면 데자뷰, 20년 전으로 회귀한 KBS

8면 KBS 엑소더스 결국 김인규의 실정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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