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고삐 풀린 정부협찬, 이대로는 안 된다
■ 정부의 수입 쇠고기 검역 홍보에 동원된 <과학카페>
검찰이
이 내용은 외주제작사가 농림부 산하 농촌정보문화센터로부터 3억 1,200만원의 협찬을 받아 총 15편으로 부분 외주 제작 중인 ‘식품의 과학’ 연작 중 하나로, 지난해 12월 26일 약 9분 정도가 방송되었다. 방송에서는 X-레이가 식품의 검역에도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후, “수입 쇠고기에 대한 오해가 많이 해소되면서 소비도 늘고 있다”, “철저한 검역을 거친 안전한 쇠고기만 수입된다” 는 등의 내레이션으로 국내의 수입 쇠고기 검역이 철저하다는 점을 되풀이해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철저한 검역과 꼼꼼한 정밀검사를 거쳐 믿고 먹을 수 있는 수입쇠고기, 그 담백한 매력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라는 클로징 멘트로 마무리를 짓고 있다.
논란이 된 방송 내용은 해당 외주제작사가 지난해 11월 작성해 KBS에 제출한 프로그램 제안서의 예시 아이템 리스트에도 포함이 돼 있다. 이 제안서에서는 ‘광우병 소고기로부터 안전하게!-산업용 3차원 단층촬영 기술’이라는 제목으로 이 기술을 사용하면 식품의 이물질을 안전하게 검출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위 내용을 농림수산식품부 측이 먼저 제안했는지를 외주제작사 관계자에게 재차 물었지만 그는 자체적인 판단에 의해 아이템을 올린 것이라 답했다. 하지만 또 다른 관계자는 ‘(협찬기관의 의견으로부터)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해 수입쇠고기의 검역체계의 우수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농림수산식품부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음을 시사했다. 결국 어느 쪽에서 먼저 제안을 했든 간에 정부부처가 특히 외주제작사를 통해 협찬을 주어 제작한 프로그램의 경우 정부부처의 의견이 더욱 일방적으로 반영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번 <과학카페>건은 확인시켜 주고 있다. 한편 <과학카페>의 제작 책임자는 아이템의 선정과 내용 확인, 방송 시점 등을 더욱 철저히 챙기지 못한 데서 비롯된 문제라는 입장을 전해 왔다.
■ <열린 음악회>는 원전 수출 홍보까지
이런 가운데 지난 일요일(1월 31일)에는 한국전력으로부터 1억 원의 협찬을 받은 <한국 원전수출 기념 열린음악회>가 방송됐다. 정부기관은 아니지만 한국전력이 원전수출의 주체라는 점에서, 정부가 대통령의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사업을 일방적으로 홍보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MC가 수차례에 걸쳐 이번 원전수주를 ‘국가적 쾌거’라 부르며 극찬을 했고, 아예 “정부, 원자력 산업계, 학계 등 모두가 힘을 합하여 이룩한 쾌거”라는 자막까지 나왔다.
<열린 음악회>가 과거에 특집성으로 나간 방송을 보면 ‘하남 시승격 20년’, ‘안중근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 ‘세계 한인의 날’, ‘사랑과 나눔’, ‘6월 민주항쟁 20주년’ 같은 내용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정부의 성과물을 드러내놓고 타이틀에 걸었던 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 정부부처의 프로그램 협찬, 무엇이 문제인가?
정부협찬 프로그램은 과거부터 있어 왔지만 최근 법무부 협찬 건, <과학카페>의 예에서 보듯 최근의 정부협찬은 과거보다 더욱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어 계속적으로 사회적 논란을 빚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특히 적자폭을 줄이는데 경영의 목표가 맞춰져 있었던 이병순 사장 재임기간에는 정부기관의 협찬이 제작비를 아끼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측면이 있어 그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최근 논란이 된 법무부 협찬 건도 이병순 사장 재임 기간인 2008년 말에 들어온 것으로, 애초에는 2009년 초부터 공익광고와 프로그램이 방영될 예정이었으나 처음 제작을 맡게 된 보도본부의 기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외부 언론에 알려지게 되면서 잠정적으로 중단됐다.
그 후 2009년 중순 이 건이 다시 추진됐는데, 법무부가 그해 8월 KBS에 보낸
제작자의 건전한 상식에서는 아무리 돈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미녀들의 수다>같은 프로그램에서조차 관제성 국민계도 내용을 굳이 방송해야 하는지, 꼭 장관을 출연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지만 현재 KBS에는 이렇게 ‘묻지마 협찬’이 아무런 제재도 없이 횡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협찬 프로그램이 지금 이렇게 난립하고 있는 데에는 지난해 초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정부부처의 예산을 증액한데 한 원인이 있다. 정부부처의 예산이 늘어나면서 외주제작사들간에는 정부협찬 따내기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KBS가 정부와 정치권력과의 긴장의 끈을 놓아버림으로써 무분별한 정부협찬이 야기할 문제점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기관의 협찬 방송은 공익의 목적에 한해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기관, 특히 권력에 가까이 있는 기관일수록 이를 마치 지상명령으로 인식하는 경영진의 무소신한 태도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야기했다고 볼 수 있다.
■ 고삐 풀린 정부협찬,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난해부터 PD협회 등에서는 이러한 문제의 위험성을 제기해 왔었다. 하지만 사측에서는 아직까지 이에 대한 교통정리에 소홀히 해 오다 이제 와서야 외부의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협찬의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돼 건전한 공론을 가능케 해야 한다. 특히 외주업체를 통한 협찬은 정부기관의 이해가 일방적으로 관철될 가능성이 큰 만큼 더더욱 협찬 내역의 투명한 공개가 필요하다.
또한 최근 몇 년간 정부기관으로부터의 협찬 내역을 파악해 일정 시간이나 금액을 초과하지 않도록 상한을 두어야 한다. 이런 제도적 장치가 없이 지금처럼 정부협찬은 돈이 생겨 좋은 일이라는 식으로 접근한다면 KBS가 정부기관의 하청제작 프로덕션이 아니냐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앞으로도 이에 대한 사례들을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감시하는 활동을 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