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이제 함께 갑시다
선배, 이제 함께 갑시다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2.04.02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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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10년차 이하 148명 기자 성명서

<선배, 이제 함께 갑시다>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기자 후배들이 취재수첩과 카메라를 놓은 지 벌써 그렇게 됐습니다. 이번 제작 거부와 파업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고, 모두가 다 똑같은 생각이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요.

 

그러나 선배, 이것 하나만 묻겠습니다. 정녕 우리 뉴스가, 우리 프로그램이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는 공영방송 본연의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말로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취재-제작이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제작 거부라는 집단행동에 대한 판단과 별개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안에 계신 선배도, 밖에 나와 있는 저희 후배들과 비슷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공영방송의 언론인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건강한 자의식이 무엇인지 저희는 선배에게서 배웠습니다. 한때 땡전뉴스로 조롱받던 KBS뉴스를 한국 언론의 중심으로 이끌어 올린 주역이 선배들이었음을 저희는 기억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온 우리 뉴스는 이제 따르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로, 멸시와 조롱의 대상으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토론이 사라지고 회의 결정사항이 하달되면서 저희의 자괴심과 분노는 쌓여만 갔습니다. 아는 대로 취재하지 않는 부끄러움이 저희를 밖으로 이끌었습니다.

 

요즘 저희는 우리 방송이 외면했던 전국 곳곳, 각계각층의 시청자들을 만납니다. 우리 뉴스였다면 만나지 못할 취재원들에게 비로소 제보를 받고, 기대치 않은 관심과 격려도 받고 있습니다. 끝 간 데 없이 추락해온 KBS 저널리즘의 바닥을 이렇게 확인하고 또 다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희가 선배에게 배운 것을 실천하는 것이고, KBS기자로서 운명공동체인 선배와 저희 모두를 살리는 길임을 저희는 확신합니다.

 

그러나 회사 내부의 현실은 여전히 참담합니다. 이화섭 보도본부장은 총리실 사찰 문건을 특종 보도한 후배 기자들에게 징계를 통보했습니다. 앞서 이화섭 본부장은 기자들이 단체행동권을 영구 포기해야 사퇴하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기자 집단이 국민에게 신뢰받을 수 있을까요. 거대 권력에 권리를 침해당한 국민이 그런 언론사의 취재에 응할까요. 이화섭 본부장은 그가 물러나야 할 인사인 까닭을 날마다 스스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기자 사회가 곪아터지고 문드러져도 여전히 사무실 안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선배의 모습은 저희를 더욱 슬프게 합니다. 사내 게시판에는 보도본부 간부 일동이라는 실체를 알 수 없는 유령이 떠돌고 있습니다. 저희는 선배의 이름과 옛 모습을 하나하나 기억하는데, 도무지 선배의 존재감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보도자료와 후배의 취재 내용을 베껴 쓰며, 그저 연차만을 앞세워 간부 일동으로서 선배 노릇을 하고자 한다면, 저희 역시 선배로서 당신에 대한 존경을 이제 철회하려 합니다.

 

선배. 더이상 저희들을 외면하지 말아주십시오.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더라도, 저희가 하는 일 모든 부분에 동의하지는 못하더라도 이제 저희들의 손을 잡아 주십시오. 같은 곳에서 함께 어깨를 걸어주십시오. 선배를 기다리겠습니다.

 

 

- 입사 10년차 이하 기자들 -

 

강나루 강수헌 강재훈 고아름 고은희 공아영 곽선정 구경하 국현호 기현정 김가림 김경진 김도영 김동욱 김명주 김문영 김민경 김민아 김빛이라 김선영 김성주 김성현 김소영 김수연 김시원 김연주 김영민 김영은 김영인 김영준 김용덕 김재노 김준범 김지선 김지숙 김진화 김진희 김태현 김해정 김효신 노윤정 노태영 류란 류성호 박경호 박대기 박상훈 박선우 박원기 박은주 박주미 백미선 백창민 범기영 변성준 변진석 서병립 서영민 서재희 서지영 손기성 손병우 손원혁 송명훈 송명희 송민석 송상엽 송수진 송현준 송형국 신봉승 신지원 신지혜 심각현 심인보 안다영 양민효 양성모 오수호 오중호 우동윤 우정화 우한울 위재천 유동엽 유지향 윤나경 윤영란 윤지연 은준수 이경진 이광열 이만영 이성각 이소정 이수정 이수진 이슬기 이승준 이승준 이재민 이재석 이정민 이정은 이정훈 이종영 이중근 이진연 이철호 이하경 이호을 임재성 임종빈 임주영 임현식 임효주 정다원 정성호 정아연 정연우 정연욱 정창화 정현숙 조승연 조정인 조지현 조태흠 지형철 진정은 차정인 천춘환 최건일 최경원 최광호 최세진 최송현 최재혁 최준혁 최진아 최진영 최혜진 한규석 한승연 함영구 허솔지 홍성희 황재락 황현택 (이상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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