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노조의 탄생에서 총파업 투쟁까지 (2편)
새노조의 탄생에서 총파업 투쟁까지 (2편)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2.05.30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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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이어집니다)

 

2. 김인규 MB특보, 마침내 KBS 사장이 되다

 

2009년 11월 19일 김인규씨가 이병순 사장의 뒤를 이어 차기 사장으로 결정됐다. KBS 기자 출신인 김인규씨는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의 방송전략실장으로 일했다. 정권에 직접 몸담았던 사람이 KBS 사장이 된 것은 1990년 서기원 사장 이후 19년 만의 일이었다. 당시 노태우 정권이 서영훈 사장을 강제로 퇴임시키고 서기원씨를 임명하자 KBS 사원들이 강력 반발해 1990년 4월 방송민주화 대투쟁이 일어나게 된다. 그 이후 정치권 인사가 KBS 사장이 되는 것은 금기시돼 왔는데 김인규 사장의 등장으로 그 사회적 합의가 깨져버린 것이다.

사실 김인규씨는 2008년 이병순씨가 사장이 될 때 유력한 후보였다. 하지만 강제로 정연주 사장을 쫒아낸 뒤 곧바로 대선특보 출신이 KBS 사장이 되는 게 부담스러워서였는지 그는 사장 공모 마감 하루 전 응모를 포기했고, 결국 이병순 씨가 사장이 됐다. 그런데 이제는 당당하게 특보출신이 KBS 사장이 된 것이다. 1년여의 시간이 지나면서 언론장악에 대한 정권의 자신감도 커졌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이병순 사장에 대한 KBS 내부 구성원들의 혐오감도 작용을 했을 것이다.

당시 노조집행부의 입장은 묘했다. 애초에 ‘김인규, 이병순, 강동순’ 세 명을 낙하산으로 규정하고 반대를 했지만 얼마 후 ‘김인규 반대’로 입장을 선회한 것. 노조가 이병순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이병순과 김인규, 두 명 중 누가 사장이 될지는 오리무중이었다. 11월 18일 차기 사장 선임을 위한 이사회가 열렸고, 마침내 자정이 다 돼서야 김인규씨가 최종 낙점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김인규 사장은 11월 24일 사원행동과 노조집행부의 출근저지를 뚫고 KBS에 들어와 취임식을 한다.

 

 

김인규 특보사장 출근 저지(2009.12.24.)

 

강동구 위원장은 “특보사장이 오면 조합의 간판을 내려야 한다”며 김인규 특보사장이 들어오면 총파업투쟁에 돌입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11월 26일 총파업찬반투표가 시작됐고, 강동구 위원장은 그 전에 찬반투표의 가결을 촉구하기 위해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사원행동은 그동안 노조와 대립적인 관계에 있었으나 이번에는 노조의 총파업투쟁을 적극 지지하기로 했다.

투표가 시작되자 예상 외로 투표율은 높았다. 노조 집행부는 높은 투표율에 가결이 될 것이라며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결과는 뜻밖에도 77표 차이로 부결이었다. 특보출신이 KBS의 자존심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며 사장이 됐는데 조합원들이 파업찬반투표를 부결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2008년 8.8 사태와 그해 말 노조선거의 패배 이후 벌어진 가장 충격적인 일에 파업투쟁을 준비하던 지금의 새노조 조합원들은 KBS의 미래에 지금껏 본 것 보다 더 짙은 먹구름이 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3. 새노조가 건설되다

 

이 충격적인 결과에 대해 사원행동을 중심으로 한 조합원들은 집행부가 파업 부결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한 뒤 특보사장에 맞설 새로운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고 집행부를 압박했다. 하지만 강동구 위원장은 이를 거부했고, 계속 단식을 이어나가며 거듭되는 사퇴촉구를 완강히 거절했다. 그리고 노조 집행부는 김인규 사장의 취임을 인정하는 수순에 들어갔다.

더 이상 특보 사장에 맞서 싸울 방법이 없어진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결국 사원행동은 새로운 노조를 만들어 공정방송을 지키자는 데 의견을 모았고, 그해 12월 기자, PD조합원들을 중심으로 600여 명이 탈퇴, 언론노조에 가입해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새노조)를 건설하게 된다. 위원장에는 엄경철 기자가, 부위원장에는 이내규 PD가 단독으로 출마해 당선이 됐다.

 

언론노조 KBS본부 출정식 (2010.3.11 KBS)

 

노조 집행부는 사장 취임 1년 후 신임투표를 통해 거취를 결정하기로 하는 등의 몇 가지 약속을 받아내고 김인규 사장의 취임을 용인했고, 1월 4일 시무식에 강동구 노조위원장이 참석, 김인규 사장과 같이 떡케이크를 자르는 모습을 연출해 김인규 특보사장 체제를 완전히 인정했다.

시무식 자리에 함께 한 김인규 사장과 강동구 노조위원장(2010.1.4.)

 

사측은 새노조의 출범을 집요하게 방해했다. 기자, PD 외 아나운서, 기술, 경영, 카메라맨 등 새노조 조합원이 소수인 부서에서는 새노조에 가입하면 불이익을 준다는 간부들의 협박이 공공연하게 이뤄졌다. 실제로 현재 대구총국장으로 있는 강성호 당시 영상취재국장은 “ 사장이 새노조를 무조건 깨부수라고 지시했다. 탈퇴안한 애들 명단 파악해서 보고하라고 했다. 탈퇴하지 않는 애들은 인사고과를 최하로 주라고 했다. 탈퇴하지 않으면 나도 고과를 미흡으로 주겠다. 일은 탈퇴할 때까지 시키지 않겠다”고 조합원들을 협박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2010.3.25. 노보 ‘새노조 파괴작전의 전말’ 참고 http://kbsunion.tistory.com/67 )

사측은 노조 결성의 불법여부에 대해서도 법적 검토를 했으나 노조 결성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현행 노동법에서 복수노조는 금지가 돼 있으나 기존 노조가 기업별 노조고 신생노조가 산별노조인 경우 복수노조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기존 판례가 있기 때문이다. 대신 노조 결성은 인정하되 교섭권은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소송까지 갔으나 그해 7월 새노조가 승소, 결국 단체교섭권을 인정받게 된다.

 

 

정권의 KBS 방송장악이 완성되다

2009년 12월 드디어 김인규 특보사장이 KBS에 입성했다. 그리고 KBS는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5·6공 시대로 회귀하기 시작했다. 사실 김인규 사장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방송을 망가뜨리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특보출신이라는 ‘원죄’가 있어 어느 정도는 조심을 하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도 일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특보사장 등장 이후 KBS는 그야말로 속절없이 퇴행하기 시작했다. 전임 이병순 사장이 방송의 비판적 기능을 거세하는데 주력했다면 김인규 사장은 이에 더해 KBS를 정권의 홍보도구로, 그것도 놀랄 만큼 빠르고 과감한 방식으로 바꿔나갔다.

그해 12월 27일 KBS는 <도전 골든벨>의 방송을 갑자기 중단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UAE 원전 수주 소식을 속보로 전했다. 뉴스는 이 국가적 ‘경사’로 도배됐고, <원전수출 기념 열린 음악회>까지 방송됐다. 이는 앞으로 일어날 일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공정방송 추진위원회 보고서 ‘고삐풀린 정부협찬, 이대로는 안된다 http://kbsunion.tistory.com/32 참고)

 

천안함 사건이 터지자 시신이 인양되기도 전에 추모 모금 방송을 하는가 하면, 정부의 조사결과 발표 직전에 PD들이 성명서까지 발표하며 극구 반대를 했지만 서해교전을 주제로 한 ‘긴장의 서해, NLL을 생각한다’의 방송을 강행했다. 6.2 지방선거 10여일을 앞두고 공안정국 분위기를 조성해 여당의 선거에 도움을 주려는 의도라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2010년 G20 정상회담 때는 G20을 홍보하는 특집프로그램이 무려 3,300분이나 방송됐다. 3,300분이면 드라마 <해를 품은 달> 20부작 1,200분의 3배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같은 낯 뜨거운 제목을 달고 프로그램들은 G20 때문에 우리나라가 국격이 높아지고 엄청난 경제효과를 낸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성명서 ‘G20 방송 광풍, 누구를 위한 것인가?’ http://kbsunion.tistory.com/220 참고)

 

뉴스는 급격히 연성화돼 갔다. 4대강이나 BBK에 대한 내용은 뉴스에서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폭로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가 미국정부의 문서를 공개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자 뉴스는 처음에 이를 비중있게 다루다가 한미FTA, BBK 등 한국과 관련된 민감한 내용들이 공개되자 입을 다물어 버렸다. 권력을 비판하는 내용은 그야말로 가뭄에 콩나듯 하고, 대신 ‘멧돼지 도심출몰’ 같은 보도는 상당히 자주, 비중 있게 다뤄진다. 일선 기자들은 KBS가 ‘멧돼지 뉴스’가 돼버렸다며 개탄할 정도다.

김인규 사장의 등장 이후 KBS에서 일어난 공정성, 제작자율성 사례는 여기서 일일이 열거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다. 그만큼 KBS의 방송은 철저히 망가졌고, 조합원들의 분노와 치욕감은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최근 작성한 자료에 이에 대한 실태를 수록했다. 참고 바란다 http://www.kbsunion.net/651)

 

또한 김인규 특보 사장은 자신에게 우호적인 세력에게는 비리, 폭행 경력이 있어도 중용하는 반면, 새노조 등 비판적인 세력에게는 가차 없이 징계와 탄압의 칼날을 휘둘렀다.

김인규 사장이 취임한 직후 이사회는 이길영 전 보도본부장을 감사로 임명했다. 이길영씨는 2007년 7월 대구경북산업진흥원장 재직 시 친구 아들을 부정 취업시키려다 감사에 걸려 감봉 3개월의 중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는 사람으로, 이런 사람이 공영방송 KBS의 감사가 된 것이다. 이 사상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감사실 직원 20명은 “채용 비리는 감사 지적사항 중 그 죄질이 저급하고 중한 사건으로 (이에 연루된) 이 감사는 감사 책임자로서 자격이 결여됐다”는 성명을 냈다. 이 역시 사상 초유의 사태다. 그러자 김인규 사장은 감사실의 직원 8명을 교체해버렸다. 결국 비리 전력이 있는 인물의 감사 자리를 보장하기 위해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감사실 직원을 물갈이 한 것. (성명서 ‘비리감사 이길영은 자진 사퇴하라’ http://kbsunion.tistory.com/6 참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KBS에서 아무 일도 아닌 듯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

기업으로부터 수백만원어치의 골프, 술 접대를 받은 고대영 보도본부장의 경우 끝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고, 부하직원을 피멍이 나도록 폭행한 전직 노조위원장 진종철 국장의 경우도 ‘경고’로 마무리지었다. 반면 파업기간 중이던 지난 4월 20일 천막강제 철거 중 허공에 대고 사장에게 욕을 했다는 이유로 새노조 공정방송추진위 간사인 최경영 기자를 해고해버렸다.

단협에 따라 실시된 본부장 신임투표에서 2010년 집중적인 불공정 방송을 주도해 사상 초유의 88%의 불신임을 받은 길환영 콘텐츠본부장의 경우 해임이 되기는커녕(단협에는 재적 조합원 2/3 이상이 불신임하면 해임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부사장으로 영전을 했다.

(www.kbsunion.net/462 참고)

이렇게 자신에게 우호적인 세력과 비판적인 세력에 대한 철저한 이중잣대와 폭력적 방식의 통치는 KBS 김인규, MBC 김재철, YTN 배석규 등 ‘낙하산’사장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2010년 7월 총파업

 

이렇게 방송의 관제, 편파화가 급속도로 진행이 됐지만 사내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제어하지는 못했다. 기존 노조의 대응은 강력하지 못했고, 이제 막 출범한 언론노조 KBS본부는 사력을 다해 이를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 노조를 결성하긴 했지만 단체협약이 없는 상태여서 공정방송을 위한 투쟁을 수행해나가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단체협약과 그에 따른 공정방송위원회를 쟁취할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2010년 상반기부터 단협 체결을 위한 노사간의 교섭이 진행됐지만 지리한 교섭 끝에 결국 결렬됐고, 마침내 2010년 7월 1일 단협체결과 공정방송 쟁취를 위한 새노조 총파업이 시작됐다.

이제 만들어진지 6개월 밖에 안 된 노조가 파업을 실제로 할 수 있을지, 하더라도 오랜 기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사측도 반신반의했던 것 같다. 하지만 김인규 사장 반년 동안 공정방송의 파괴와 각종 전횡을 체험한 조합원들의 분노는 무척 컸고, 파업은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진행됐다. 조합의 집행부도 놀란 것은 조합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창의성이었다. 파업은 매일매일 축제분위기에서 진행됐고, 이 모든 것은 조합원들이 아이디어를 짜고, 소품을 만들고, 출연 연예인을 섭외하고, 새로운 투쟁의 방향을 제시하며 이뤄졌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한민국 파업 역사상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양상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정방송 사수, 단협쟁취를 위한 총파업 (2010.7.1-7.29)

 

2010년 파업은 합법파업이었지만 사측은 시종 이를 ‘불법’이라 규정하며 업무복귀와 징계를 언급하며 복귀를 종용했다. 한편으로는 대체근로를 투입해 결국 소송까지 가게 됐다. 이러던 와중에 7월 23일 새노조가 제기한 단체교섭응낙 가처분 항고심 소송에서 또 승소를 했다. 사측은 재항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새노조의 단체교섭권을 거부할 더 이상의 명분은 이미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7월 29일 노사는 단협을 체결하기로 잠정적으로 합의했고, 29일간의 파업이 끝났다. 그리고 지루한 협상 과정을 거쳐 그해 12월 2일 위원장과 사장이 단협안에 최종 서명을 함으로서 마침내 단체협약이 체결됐다. 그리고 <추적60분> 4대강편 불방사태가 발발해 12월 13일 첫 공정방송위원회가 개최됐다. 단협의 체결로 방송의 편파, 관제화를 막을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백선엽, 이승만 특집 방송 강행, 정율성 편 불방사태 등 제작자율성, 공정성 침해 사례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노동조합이란 무엇인가?

 

사실 MB정권이 들어설 당시만 해도 KBS가 이렇게까지 망가지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동안 언론의 민주화가 꽤 이뤄진 만큼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최소한의 공정성은 유지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2008년 초 6명이 해직된 YTN 사태를 시작으로 KBS, MBC가 차례로 장악되면서 이는 너무나 순진한 생각임이 입증됐다. 그 중에서도 KBS는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가장 급속도로 권력에 장악됐다.

왜일까? 우리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바로 노동조합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언론장악에 맞서 싸우고 공정방송을 수호하기는커녕 권력의 언론장악에 동조를 했기 때문에 8.8사태가 가능했고, 낙하산 사장들은 KBS를 손쉽게 접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KBS를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절박함 속에서 우리들은 새노조를 만들 수 밖에 없었고, 온갖 탄압과 방해를 뚫고 2010년 7월 29일간의 파업 끝에 단협을 쟁취했고, 600명이던 조합원은 이제 1,200명으로 늘어났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2012년 3월 6일 새노조는 드디어 역사적인 총파업에 돌입했다. 총파업의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13명에 대한 부당징계와 이화섭 보도본부장 등 ‘막장인사’였다.

부당징계의 경우 그 과정이 좀 복잡하다.

김인규 사장은 2009년 말 취임 직후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한다. 보스턴컨설팅(BCG)에 무려 24억원의 돈을 지불하고 컨설팅을 실시했고, 이 결과에 따라 3월부터 본격적으로 조직개편 작업이 시작됐다.

김인규 사장의 조직개편은 KBS를 관제화 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있었다. 김인규 사장은 이전에 서울대동창회보 인터뷰에서 “PD 300명 들어내도 문제없다”는 폭탄발언을 해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는데, 그만큼 광우병 사태 이후 정권의 탄압대상이 된 ‘PD 저널리즘’에 대한 적개심이 컸다. 조직개편은 여러 직종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추적 60분> 등 PD들이 제작하는 시사프로그램을 TV제작본부에서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보도본부 산하에 시사제작 담당 국을 신설해 기자와 PD가 제작하는 시사프로그램들을 그 곳으로 이관한다는 안이 나왔다. 하지만 이 안이 지지를 받지 못하자 최종적으로 <추적60분>을 보도본부로 옮기는 것으로 결론났다. 이병순 사장 취임 이후 <시사 투나잇>이 없어지고 등의 프로그램에서 시사기능이 거의 거세된 상황에서 그나마 TV제작본부에 남아있는 유일한 시사프로그램인 <추적 60분>을 보도본부로 이관한다는 것은 ‘게이트키핑’ 기능을 대폭 강화해 비판기능을 약화시키겠다는 의도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었다.

거센 저항이 이어졌고, 6월 10일에는 김덕재 PD협회장 등 PD들이 민주광장에서 집단으로 삭발을 하기도 했다. 앞서 6월 4일에는 새노조집행부와 조합원들이 이사회장 앞에서 집단으로 피케팅을 해 엄경철 위원장이 이사회에 조직개편의 부당성에 대한 입장을 전달했다.

지난 4월 ‘리셋 KBS 뉴스9’이 특종 발굴한 민간인 사찰 보고서에는 김인규 사장의 조직개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파업찬반투표 부결 이후 작성된 ‘KBS 최근 동향보고’ 문건에는 조직개편의 의미에 대해 ‘현재 방송국은 기술발전에 따른 과잉인력 상태로 구조조정을 가장 우려하고 있으며, 경영진단 결과에 구조조정 및 조직개편 필요성이 담길 경우 향후 주도권은 김인규 사장에게 넘어가 KBS를 장악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는 전망도 있음’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결국 김인규 사장의 조직개편은 사찰문건의 표현대로 ‘KBS의 색깔을 바꾸고’ ‘구조조정’에 대한 공포심을 유발해 조직을 ‘장악’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추적60분> 보도본부 이관에 반대해 삭발식을 하는 KBS PD 협회원들(왼쪽 김덕재 협회장)

 

새노조 조합원들은 직감적으로 이런 의도를 간파했고, 이에 대해 저항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특보사장은 이것을 징계의 이유로 삼은 것이다.

징계의 또 다른 구실은 2010년 파업이었고, 앞서 말한대로 사측 인사들조차 2010년 단협파업은 불법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었다. 그런데도 이준안 법무실장(2008년 박승규 위원장 당시 언론노조 위원장에 당선됐으나 탄핵당했고, 이후 사원행동과 새노조의 대표적인 ‘저격수’로 꼽히고 있다) 등 김인규 사장의 측근들은 무작정 이를 ‘불법’이라고 몰아붙였고, ‘불법파업 주도’가 징계 사유가 됐다.

사실 2010년 파업에 대한 징계는 파업이 노사합의로 원만히 끝남에 따라 실질적으로 종료된 사안이었다. 아무도 이 건으로 대량중징계가 내려지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이것이 다시 등장한 것은 2010년 7월 29일 파업이 종료된 후 5개월 후인 12월, <추적60분> 4대강편 불방사태가 발발했고, 새노조는 이에 청와대 비서관이 <추적 60분> 4대강 편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사내 정보보고 문건을 폭로했다. 그러자 사측은 60여명의 집행부와 조합원들을 ‘불법파업’을 이유로 징계에 회부한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보복조치였다.

하지만 60여명에 대한 인사위원회 개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했고, 인사위원회는 중단이 됐다. 그런데 올해 초 다시 이 해묵은 사안을 다시 꺼내 13명에게 정직, 감봉 등의 대량중징계를 가한 것이다.(정직 6개월은 ‘해임’ 다음 단계로, 향후 진급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할 정도의 중징계다). 사측간부들조차 이해를 못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유래가 없는 비상식적 사태로, 특보사장이 그동안 새노조에 대해 얼마나 큰 차별과 탄압을 일삼아왔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실제로 2008년 8.8 사태 이후, 그리고 새노조 출범 후 새노조 조합원들이 당한 탄압과 수모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8.8 사태 당시 ‘정연주 사장 퇴진 막지 못하면 수신료 거부운동해야 한다’는 댓글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한 조합원은 ‘성실, 품위 유지 위반’이라는 이유로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이 조합원은 최근 징계무효소송에서 대법원 최종승소를 했다).

2010년 파업이 끝나자마자 김윤지 9시 뉴스 앵커 등 새노조 소속 아나운서들이 모두 프로그램에서 하차됐다. 특보사장 취임 이후 김미화 씨 ‘블랙리스트’ 파문 이후 생긴 ‘MC 선정위원회’는 MC 선정에 대한 권한을 일선 제작진이 아니라 간부들이 행사하도록 하고 있어, 새노조 소속 아나운서들의 프로그램 진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이번 파업에도 유사한 일이 반복됐는데( 2012년 3월 22일 성명서 ‘특보사장은 아나운서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즉각 중단하라!’ www.kbsunion.net/531 참고) 상대적으로 소수인 새노조 소속 아나운서들에 대한 탄압은 ‘특보체제’의 가장 가혹하고 치졸한 단면이다.

KBS 새노조 아나운서들 (2010. 7월 파업 당시 선전전을 마치고 촬영.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최원정,오태훈,최승돈,김현태,이상협,이재후,홍소연,이광용,박노원,김태규,정세진,김승휘 아나운서.

이형걸, 이상호, 김윤지 아나운서 등은 사진에서 빠져 있음)

 

이렇게 우리들은 2008년 이후 탄압과 차별 속에서 KBS가 1990년 방송민주화 투쟁 이후로 빠르게 퇴행하는 것을 무기력하게 바라봐야만 했다.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었다. 징계와 탄압이 무서워서 입과 귀를 막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는 더 이상 우리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것이 우리가 총파업에 들어간 이유다.

 

언론자유의 부활, 그 마지막 기회.

 

현재 KBS, MBC, YTN, 연합뉴스, 국민일보 등 ‘독수리 5형제’가 총파업을 벌이고 있다. KBS는 80일, MBC는 110일이 넘었다. 조용기 일가에 맞서 편집권 독립을 외치고 있는 국민일보를 제외하고는 모두 MB 정권 들어 직간접적으로 낙하산 사장이 내려와 공정성을 파괴하고 인사, 징계 등에서 전횡을 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 총파업은 MB 정권 출범 이후 겪었던 처참한 언론장악 상황을 타파하고 언론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마지막 항쟁이다. 이 항쟁이 좌절된다면 앞으로도 한국의 언론은 정권의 입이라는 숙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언론노조와 파업노조들은 이 파업의 과제를 세 가지로 설정하고 있다. 첫째, 낙하산 사장을 퇴출하고 해고, 징계 언론인을 원상복구하며 둘째, 언론장악 청문회와 국정조사를 실시해 언론장악의 진상을 규명하며 셋째, 공영언론사의 이사, 사장 선임구조 개선 등 공정성과 독립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새누리당 전당대회(일산 킨텍스) 언론노조 집회(2012.5.15.)

 

최근까지 언론파업에 대해 함구하고 있던 새누리당은 최근 오랜 침묵을 깨고 입장을 밝혔다. 신임원내대표에 선출된 이한구 의원이 언론 파업은 ‘불법’이며 ‘정치파업’이라고 선을 그은 것. 어이가 없는 일이다. 지금의 언론장악상황을 야기한 것은 청와대와 최시중의 방통위, 그리고 지금의 새누리당인 한나라당이다. 그런데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듯 이를 불법파업, 정치파업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언론총파업이 임금, 근로조건 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불법파업이라고도 한다. 과연 그런가? 언론인들에게 공정성, 독립성은 가장 중요한 근로조건이다. 사실 이병순, 김인규 사장 재임기간 동안 우리들을 가장 괴롭혔던 것은 무엇보다 ‘창피함’이었다. 갑자기 정부행사 홍보 프로그램을 만들라는 ‘오더’가 수시로 내려왔고, 단독 취재를 해놓고도 방송에 나가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쌍용자동차에서 20여 명이 죽어나가도 멧돼지가 편의점을 습격한 뉴스만큼도 보도하지 않았다. 2010년 단협파업 때 새노조 구호 중 하나가 “쪽팔려서 파업한다”였다. 우리는 지금 ‘쪽팔리지’ 않을 권리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새노조는 승리한다

 

2012년 3월 6일, 아직 늦겨울의 추위가 매서운 날 언론노조 KBS본부는 총파업투쟁에 돌입했다. 집행부 출범 2개월 만에 총파업을, 그것도 사장 퇴진을 목표로 파업을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다. 하지만 총파업은 어느덧 80일을 넘겼고, 2010년 파업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새노조의 힘을 다시 한 번 확인해가며 하루하루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고 있다.

‘리셋 원정대’는 해남과 부산에서 서울까지 18일간 뚜벅뚜벅 걸어 국토를 종단하며 파업의 정당성을 알렸다. ‘리셋 KBS 뉴스9’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 뉴스, 침묵하는 뉴스를 대신해 열악한 장비를 들고 자기 호주머니에서 출장비를 써가며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보도를 했고, 마침내 대량의 민간인사찰문건을 최초로 특종 보도했다.

5월 7일에는 MBC, YTN, 국민일보 등 동지들과 함께 여의도 공원에 텐트를 치고 ‘희망캠프’를 만들어 아직도 이곳을 중심으로 언론자유 항쟁을 벌이고 있다.

최경영 기자가 해고되자 보직 팀장 간부 22명이 보직을 사퇴하고 파업에 동참했고, 지금도 간부들의 파업 참가가 줄을 잇고 있다.

 

김인규 사장 집 앞 촛불집회(2012.4.19.)

 

지역의 조합원들은 서울보다 더 열악하고 고립된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80여일 동안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언론장악에 침묵하고 있는 새누리당 의원들을 쫒아다니며 사태해결을 촉구하고, 농활까지 가서 언론파업을 알린다.

파업이 장기화되며 급여가 0원이 될 정도로 어려움을 겪자 대의원대회에서 만장일치로 고통분담을 결의했고, 조합원들끼리 자발적으로 파업기금을 모금하고 있다.

윤중로 벚꽃놀이 온 사람들에게 팝콘과 전단지를 나눠주는가 하면, 예비 언론인 대학생들을 초청해 나영석 PD, 서수민 PD 등이 강연을 하기도 한다. 기발한 파업 동영상을 밤새 편집해 팟캐스트에 올리기도 한다.

파업은 때로는 비장하게, 때로는 축제를 능가하는 발랄한 분위기에서 진행되고 있다. 2010년 파업의 업그레이드 2.0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조합원들이 스스로 만들어 나간다. 새노조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온갖 역경을 뚫고 조합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노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번 파업은 낙하산 사장을 퇴출시키고 특보사장이 지금까지 구축해온 ‘특보체제’를 청산하며, 2008년 8.8사태부터 시작된 언론장악의 진상을 밝히며, 나아가 다시는 KBS가 권력의 노리개로 전락하지 않게 하기 위한 지난한 과정의 일부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위기도 많았고, 한계도 있었다. 하지만 80일이 넘는 파업이 진행되면서 우리들은 스스로의 힘을 확인했고, 언론인으로서,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 굴종이 아닌 자유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확인할 수 있었다. 새노조의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8대 집행부 본부장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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