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호] 8.8사태 5주년 특집호
[115호] 8.8사태 5주년 특집호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3.08.08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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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면은 다음 글 '공추위보고서'에 있음)

 

 

지면안내

2면 : 위원장의 편지 / 1990, 2008, 2013 그 같음과 다름

3면 : 사진으로 보는 8.8 사태

4면 : 잊지 말아야 할 그들, KBS 이사 6적

5면 : 잔혹소설 꿈의 회사-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6면 : 거룩한 계보-낙하산 전성시대를 영접한 이들

7면 : 공추위보고서-북한 흉내내기 홍보, 뉴스는 장단 맞추기

8면 : <뉴스타파> 합류한 김경래 인터뷰

 

 

 

[4면]

잊지 말아야 할 그들, KBS 이사 6敵

 

2008년 8.8 사태는 MB정권과 한나라당, 조중동 등 외부의 언론장악 세력과 내부의 부역세력이 결탁해 자행한 희대의 폭력사기극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홍위병 역할을 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한나라당 추천 KBS 이사 6명이었다. 이들이 어떻게 정연주 사장을 쫒아내고 낙하산 사장을 불러들였으며,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

 

 

 

 

 

신태섭 이사 축출 공작

 

2008년 2월 이명박 정권이 출범할 때까지만 해도 KBS 이사회는 열린우리당 등 과거 야권 추천 이사가 8명, 한나라당 이사 추천 이사가 3명으로 야권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정연주 사장을 해임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후 야권 추천 이사들이 하나 둘 물러나게 돼 여야 비율이 3:8에서 6:5로 역전이 됐고, 결국 정연주 사장은 해임됐다.

먼저 야권 추천 조상기 이사가 그 해 4월 총선 출마로 사임을 하면서 그 뒤를 이어 한나라당 추천으로 방석호 홍익대 법대 교수가 이사가 됐다. 그리고 5월 21일 김금수 이사장이 자진사퇴를 했다. 당시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학교 동기동창이기도 한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5월 12일 김금수 이사장을 만나 촛불집회에 대한 KBS의 논조와 정연주 사장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아직까지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후 김금수 이사장은 사퇴를 했고, 6월 5일 유재천 한림대 교수가 한나라당 추천으로 이사장이 됐다. 이로서 여야 비율은 5:6이 됐다. 김금수이사장의 자진사퇴는 정연주 사장 퇴진의 시발점이 됐고, 야권 추천 이사 중에는 아예 이에 동조한 사람도 있다. 이춘발 이사는 MB정권이 들어서자 정연주 사장 퇴진으로 방향을 전환, 5월 25일 정연주 사장 사퇴 권고 결의안 이사회 상정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는 8월 8일 때는 해외로 출장을 떠나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신태섭 이사 축출 공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6월 20일, 신태섭 이사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부산 동의대는 신 이사가 KBS 이사 활동을 하면서 학교 측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고, 강의를 소홀히 했다는 등의 허위 사실을 이유로 신 교수에게 해임을 통보했다. 7월 1일 신 교수가 교수직에서 해임되자 방통위는 18일 신 이사가 이사 자격을 상실했다며 해임을 하고 강성철 부산대 교수를 임명했다. 이로서 여야 구조는 마침내 6:5로 역전이 돼 정연주 사장 해임이 가능해졌다. (신태섭 교수의 해임 과정에 대한 정권의 불법적 개입은 그 후 하나 둘씩 사실로 밝혀졌고, 그는 이후 해임무효 소송에서 최종 승소해 대학에 복직했다)

 

정연주 축출, 공권력 투입에 홍위병 역할

 

MB정권은 정연주 사장을 축출하기 위해 검찰, 국세청, 감사원 등 권력기관을 총동원했고, 마침내 8월 5일 감사원은 정연주 사장에 대한 표적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8.8 사태 전날인 7일 유재천 이사장 등 6명의 이사는 메리어트 호텔에서 합숙하며 다음날의 ‘거사’를 준비했다.

8월 8일 이른 아침부터 경찰병력이 KBS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고, 민주광장과 이사회 회의장이 있는 3층에서 사원들과 청경들 간에 치열한 몸싸움이 전개됐다. 잠시 후 눈앞에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철문이 열리더니 사복경찰들이 대거 들이닥친 것이다. 90년 4월 방송민주화 투쟁 이후 18년 만에 벌어진 공권력 투입이었고, 사원들은 경찰과 청경들에게 개처럼 끌려 나갔다.

 

 

8.8 사태 때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이사회장을 나오는 유재천 이사장

 

 

이 때 이사회장에는 영등포 경찰서 제00 정보과장이 동석하고 있었고, 유재천 이사장은 정보과장에게 신변보호를 위한 경찰력 투입을 요청했다. 정보과장이 공식요청 없이는 곤란하다고 답하자 직접 영등포 경찰서장과 송원섭 안전관리팀장(현재 KBS시큐리티 사장)을 불러 경찰투입을 지시했다. 그리고 권혁부 이사는 경찰이 들어오도록 3층 철문을 개방하도록 지시했다.

 

낙하산 이병순을 불러들이다

 

8.8 사태 직후인 8월 17일, 최시중 방통위원장과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정정길 대통령실장, 김은구 KBS 사우회장 등이 참석한 이른바 ‘8.17 대책회의’에 유재천 이사장도 참석을 했다. 정권 핵심인사들이 차기 KBS 사장을 낙점하기 위해 모인 이 자리에서 유재천 이사장은 “김인규 카드가 무산돼 후임 사장 문제가 시급해졌다. KBS 사장을 공정하게 잘 뽑아 이명박 대통령의 업적으로 삼는 것이 좋겠다”고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이 언론보도로 알려지자 당시 사장 후보였던 김은구 사우회장은 자진사퇴를 했다.

 

8월 21일 사장 후보를 결정하는 이사회가 열렸고, 사원행동과 몸싸움이 벌어지자 회의장소를 역삼동 노보텔 엠베서더로, 다시 상암동 KBS 미디어센터로, 또 다시 KBS 본관으로 변경해가며 기습적으로 회의를 강행했다. 이 날 이병순 전 KBS 비즈니스 사장 등 5명이 후보로 압축됐고, 예상대로 25일 이병순 씨가 사장으로 선임되었다. 이로서 MB 정권 출범부터 집요하게 진행된 KBS 장악은 마무리됐고, ‘이사 6敵’들은 그 일등 공신이 됐다.

 

 

 

 

이사 6敵들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

 

유재천 이사 6敵의 핵심인 유재천 당시 이사장은 1988년 언론개혁시민연대 창립멤버로 활동하는 등 한때 진보인사로 분류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뉴라이트 성향의 ‘바른사회 시민연대’ 공동대표를 지내며 변신을 했고, 2006년에는 정연주 사장 연임 반대를 이끌기도 했다. KBS 이사 퇴임 후 2009년부터 최근까지 상지대 총장으로 있었다. 지난 6월 24일 뉴라이트 교과서에 대한 비판을 규탄하는 보수인사들의 기자회견에서도 참석하는 등 아직까지도 그 쪽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권혁부 공화당 특채 출신인 권혁부 당시 이사는 2011년 한나라당 추천으로 방통심의위원이 돼 <추적60분> 천안함 편 제작진에 중징계를 가하는 등 지금까지 비판언론 죽이기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해 말 현직 방통심의위원으로서 KBS 사장에 지원을 하는 추태를 부려 방통심의위 노조가 사퇴 성명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박만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난 송두율 씨를 2003년 구속했던 공안검사였고, 2007년 한나라당 추천으로 KBS 이사가 됐다. 2011년 권혁부 씨와 함께 방통심의위원으로 임명됐고, 지금까지 위원장으로 있다. <백년전쟁>을 방송한 RTV와 <뉴스타파>에 대한 표적 심의를 강행하는 등 ‘8.8 동지’인 권혁부 씨와 함께 방통심의위를 정권의 검열기구로 악용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춘호 2008년 2월 MB 정권 출범 후 여성가족부 장관에 내정됐다가 40여건의 부동산 투기 사실이 밝혀져 낙마했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 부인 김윤옥 씨와 친구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고, 2009년 KBS 이사 임기를 마친 뒤 EBS 이사가 됐다. 지난해에는 연임에 성공해 현재 EBS 이사장이다. 때문에 ‘KBS 이길영-MBC 김재우-EBS 이춘호’의 비리 경력 공영방송 이사장 3각 편대가 완성됐다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다.

 

강성철 2008년 7월 누명을 쓰고 축출된 신태섭 이사의 후임으로 KBS 이사가 됐다.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인 강씨는 2006년 지방선거 한나라당 부산시당 공천심사부위원장, 2007년 박근혜 대선 선대본 정책자문단장을 지냈고, 2008년 4월 총선 때 한나라당 부산 금정구 공천을 신청했다가 탈락했다. 경력에서 보듯 전형적인 ‘폴리페서’로, 당시 그가 KBS 이사로 추천되자 부산대 총학생회가 이사직 사퇴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방석호 홍익대 교수인 그는 2006년 KBS 이사가 됐다가 정연주 사장의 연임에 반대해 이사직을 사퇴했고, 이런 선명성(?) 때문인지 2008년 총선 때 민주당으로 출마한 조상기 이사 후임으로 다시 이사가 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8.8 사태 이후 2008년 9월 16일 방송통신정책연구원(KISDI) 원장이 돼 종편 출범에 앞장섰다. 최근에는 창조경제를 위한 IT정책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참으로 정권의 코드에 부지런히 충실한 학자분이다.

 

이렇게 8.8 사태 때의 이사 6敵들은 시류에 재빠르게 적응하며 아직까지 잘 살고들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정사에 길이 남을 언론장악 사기극의 홍위병 역할을 했던 이들은 언젠가는 단죄가 되어야 한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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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면]

 

거룩한(?) 계보

? 낙하산 전성시대를 영접한 자들. (흐름을 위해 일부 존칭은 생략합니다)

 

2008년 여름 보수언론과 정권, 국가기관이 총동원된 정연주 축출작전이 시작되자 KBS 내부엔 갖가지 물밑조직들이 생겨났다. 주 활동공간은 코비스, 보도정보게시판 등 사내 인트라넷.

당시 경영진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던 11대 노동조합(위원장 박승규)이 MB취임 한 달 후 노보를 통해 「정연주가 죽어야 KBS가 산다.(2008. 3.18)」고 선언하자 이들은 수면 위로 나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 응징대상으로 떠오른 곳은 PD협회(협회장 양승동). 오진규, 최철호, 이은수 등이 주축이 된 ‘PD협회 정상화 추진위원회’는 ‘정연주=PD협회=정치세력=적자 유발자’라는 등식으로 낙하산 반대와 공정방송 수호를 고민하던 집행부를 몰아세웠다. 윤동찬, 신경섭, 변석찬 등은 코비스에 갖가지 궤변을 동원해 사사건건 협회 집행부의 발을 묶었다.

 

 

 

수요회 논쟁이 일던 기자협회(협회장 김현석)도 비슷했다. 당시 보도정보게시판엔 ‘기자들이 회사의 적자가 이토록 심각한 줄 몰랐다’는 이례적인 양심선언(?)까지 있었다. 2008년 4월 16일 수요일, 당시 해설위원이던 고대영 씨가 소집한 수요회 역시 협회의 행동반경을 제약했다.

신태섭 이사가 해임(2008. 6.20)되고 이사회를 통한 사장 교체가 본격화되자 듣보잡 단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기 시작했다. 첫 포문은 자칭 ‘KBS 미래를 생각하는 심의위원’(김동주, 김명환, 김지문, 박성명, 박수동, 안영동, 양홍모, 오광균, 오진규, 유병택, 윤동찬, 윤흥식, 이인숙, 현옥, 황우섭)들. 이들은 황우섭 명의의 성명서 「정연주 사장은 법치에 순응하라」를 통해 정사장의 검찰 출두를 요구했다.

산발적으로 보였던 이 조직들은 8.8이후 8. 8 이후 이들은 'KBS 정상화를 위한 사원 비상대책위원회' 결성(8.12)하고 한차례 특보를 발행한 후 낙하산 추대위원회로 변신을 꾀한다. 당시 코비스를 들썩이게 했던 17개 단체 이름은 다음과 같다.

보도 본부 - KBS 중견 기자 모임 / KBS 정상화를 염원하는 촬영 기자 모임

경영본부 - 경영정상화를 추진하는 경영인 모임

사장 직속 - KBS 미래를 생각하는 심의위원 모임

기술본부 - KBS 정상화를 촉구하는 기술본부 기술인 모임 / 언론노조 탈퇴를 촉구하는 기술본부 지역 기술인 모임

디지털 미디어 센터 - KBS 미래를 생각하는 IT직원 모임

전환협회 - 언론노조 탈퇴를 염원하는 전환협회 모임

여성사우 모임 - KBS 출신 사장을 염원하는 여성사우 모임

제작본부, 편성본부, 라디오본부 - KBS PD 협회 정상화 추진협의회 / 중견 PD협의회

프로그램 연구회 PD 일동 / KBS 미래를 염려하는 편성 PD 일동

예능 프로그램을 사랑하는 PD 모임 / 드라마 미래를 생각하는 PD 모임

라디오 프로그램의 경쟁력 향상을 고민하는 라디오 PD 모임

지역 방송 활성화를 촉구하는 지역 방송인 모임

 

 

이들이 염두에 둔 첫 옹립대상자는 대선 기간 MB캠프 방송전략실장을 지냈던 김인규 당시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 협회장이었다. 사장에 대한 그의 열망은 참여정부 시절부터 이미 甲이었다. 적어도 2008년 8월 까지는 ‘인규 반정’, ‘듣보 병순’이었던 셈이다. 이와 관련해 허수아비 이병순 전 사장은 2009년 말 사장 연임 시기에 정권 최고위층을 만난 자리에서 ‘임기 중 승진, 보직 인사 등을 내 맘대로 한 적 없다’며 김인규 옹립세력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들은 2008년에 대한 공로(?)로 사장 2대에 걸친 호사를 누린 셈이다. 전리품을 나눈 후 이들 조직은 다시 수면 아래로 조용히 가라앉았다. 다음은 이 물밑조직을 조직, 참여했던 굵직한 인물들의 화려한 성적표다.(부장급까지 따진다면 민망할 정도로 너무 많다)

 

 

이름

2008년

이병순 사장(대팀제)

김인규 사장

현재

최철호

PD협회정상화추진위

기획예산국장 직대

외주제작국장

인재개발원 원장

윤명식

공정방송위원장

외주제작국장

KBS Japan 사장

퇴직

변석찬

PD협회정상화추진위

라디오1국 EP

라디오센터장

KBS 비즈니스 감사

오진규

KBS정상화를 위한 사원 비대위 공동대표

예능국 EP

심의실장

KBS아트비전

김동주

KBS미래를생각하는심의위원

홍보팀장/시청자센터장

시청자센터장/제주방송총국장

연수원

이정봉

수요회

경영개혁단장

보도본부장

KBS비지니스사장(2013. 3)

고대영

수요회

뉴스총괄팀장

보도본부장

KBS 미디어

박갑진

KBS정상화를 위한 사원 비대위 공동대표

인력관리실장

시청자본부장

현 비즈니스 사장

윤동찬

PD정상추/미래심의위원

교양제작국 국장직대

심의실장/춘천방송총국장

인재개발원

황우섭

KBS미래를생각하는심의위원

이사회사무국전문위원

공영노조위원장

심의실장

진종철

2006년 김인규 옹립시도

KBS홀팀장 직대

시청자권익보호국장

디지털시청100%재단 사무국장

신경섭

PD협회정상화추진위

대전총국편성국장

공영노조위원장

원주국장

 

 

 

(PDF파일 표의 고대영 씨가 'KBS정상화를 위한 사원 비대위 공동대표'로 표기된 부분은 '수요회'의 오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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