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본부 대선보도 모니터] 선거 쟁점, 유불리 따지는 보도가 아닌 토론을 위한 보도가 되어야
[KBS본부 대선보도 모니터] 선거 쟁점, 유불리 따지는 보도가 아닌 토론을 위한 보도가 되어야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22.01.1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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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선 보도 모니터링

2022년 1월 8일 <KBS 뉴스 9>

 

“‘정치공학 보도’가 너무 많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불쑥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를 SNS에 올리면서 뜨거운 찬사와 맹렬한 비판이 동시에 쏟아졌다. 당내 경선 때 내걸었던 공약과 달리 폐지라는 극단적 방향으로 급선회한 이유, 구체적 내용과 배경 설명 없이 SNS에 선언만 하는 방식 등 부차적 문제들은 차치하더라도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은 그 자체로 대단히 위험하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매우 논쟁적이다. 언론이 해당 이슈에 대해 어떻게 보도했는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성가족부는 오랫동안 이른바 ‘이대남’을 중심으로 한 안티 페미니즘 그룹의 ‘상상 속 주적(主敵)’ 가운데 하나였다. 여성가족부의 예산 규모나 운용 방식, 선진국의 여성 업무 전담 부처 현황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상태에서 각종 허위조작정보들이 난무하면서 ‘남성을 역차별하고 여성이 무임승차할 수 있도록 돕는 막강한 힘을 가진 여성가족부’라는 허구적 세계관이 만들어졌다. 이들의 비이성적 요구사항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반목과 혐오를 조장해 지지율 하락을 모면하겠다는 야당의 저열한 캠페인 전략이 사회적으로 미칠 부작용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뜨거운 논란이 벌어진 온라인 공간과 달리, 전통적 언론에서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보도는 많지 않았다. 중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논란을 의식해 윤 후보의 공약을 정면으로 비판하기 어려울 순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성가족부와 관련된 다양한 사실관계, 여성가족부에 대한 비판적 여론 및 폐지 공약의 현실성과 타당성, ‘젠더 이슈’가 선거 국면의 핵심으로 떠오른 의미와 맥락에 대한 분석 등은 충분히 가능하고 또 필요한 영역이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은 다양한 층위에서 풍부한 논의를 필요로 하는 이 사안을 단순 전달·중계하는 형식으로 다루거나, 그나마 분석을 하더라도 젠더 이슈를 둘러싼 각 선거 캠프의 정치적 유불리 계산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KBS 역시 다르지 않았다. 관련 논란을 다룬 1월 8일 9시 뉴스 <윤석열 ‘여성가족부 폐지’... ‘젠더 이슈’ 부상> 리포트는 윤 후보의 입장과 의중을 전한 뒤 민주당과 정의당의 반응을 소개하는 데 그치며 지나치게 피상적인 접근을 취했다. 이슈에 대한 해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해설은 “최근 지지율 하락세에 대한 반전 카드로 휘발성이 강한 젠더 이슈를 건드려 젊은 남성들의 표심부터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됩니다.”와 같이 지지율 득실과 진영의 정치적 셈법을 따지는 ‘정치공학 보도’에 머물렀다. 안티 페미니즘 진영의 백래시는 매우 중요한 문화정치적 함의를 가지고 있고,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젠더 이슈의 엄중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사안을 맥락을 배제한 채 정치공학적 논리로만 접근하는 건 위험하다. 이런 보도만 한다면, 중요한 사회적 과제나 현안을 놓고 ‘표 계산’만 하는 정치인을 언론이 비판할 수 있는 명분도 사라진다.

대선 관련 KBS 뉴스에서 ‘정치공학 보도’의 과도한 비중은 젠더 이슈에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다. 같은 날 정치부 기자가 스튜디오에 나와 앵커와 대담을 나눈 <D-60, 이제부터 본격 승부> 보도도 마찬가지였다. “하루하루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대선 정국의 맥락과 배경을 정치부 기자와 앞으로 매주 짚어보려고 합니다.”라는 앵커 멘트로 봤을 때 앞으로 정기적으로 정치부 기자가 출연해 유사한 코너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대담에서 다루어지는 분석들 역시 각 캠프의 셈법이나 유불리를 따지는 정치공학 논리에 매몰되어 있다는 것이다. 특정 후보의 지지율 반등 가능성,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가능성과 후보들의 의중, 캠페인 전략 등 지나치게 선거의 승패에만 치중하는 논의들이 이어졌다. 대담 속에서 현안, 정책, 유권자에 대한 관심은 찾기 어려웠다.

선거가 전 국민의 스포츠이자 오락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이러한 논의들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공학 중심 보도는 이른바 ‘경마 저널리즘’과 마찬가지로 정치를 선거의 승패만으로 환원시키며 우리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정책 생산과 조정의 영역을 거세함으로써 광범위한 정치 행위의 의미를 경쟁과 게임이라는 협소한 영역으로 가두어버리는 문제를 낳는다. KBS에서 방영하는 <정치합시다>와 같은 프로그램도 여론조사 추이에 따른 후보의 전략적 득실과 전략 위주의 담론만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 프로그램이 다루는 내용들은 프로그램이 내걸고 있는 슬로건처럼 ‘당신의 삶을 바꾸는’ 정치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문제는 한국사회에 이미 과잉인 ‘정치공학’ 담론이 KBS 콘텐츠 내에도 지나치게 많이 침투해 있다는 점이다. 상업방송들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시청자들이 관심을 갖는 여론조사 지지율 등락과 스핀닥터들의 전략에 몰두하더라도, 최소한 공영방송은 다른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 남은 기간 동안 KBS 뉴스가 정치공학 중심의 보도를 극복할 것을 주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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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일 <KBS 뉴스 9>

 

KBS 뉴스가 본격적인 정책 검증과 의제 설정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1월 1일 새해 첫 9시 뉴스를 통해 KBS는 정책 선거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차원에서 유권자와 전문가 조사를 통해 선정한 정책 의제를 중심으로 유력 후보들의 정책을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유권자가 뽑은 의제’ 1위는 “집값 안정”> 리포트를 통해 볼 때 부동산 안정, 일자리 창출, 언론·사법 개혁, 저출생 대책, 경제적 불평등 해소 등의 의제를 중심으로 검증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10명 중 7명의 국민이 이미 선택한 후보에 대한 지지를 바꿀 의향이 없다고 응답하는 시점인지라(KBS 여론조사 결과) 정책 검증 착수가 시기적으로 다소 늦었다는 아쉬움이 들고 굳이 1월 1일에 맞춰 시작해야 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아무리 늦더라도 정밀한 정책 검증을 하겠다는 선언은 환영할 일이다. 검증 대상이 될 중요 의제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전문가가 초기 작업을 하고, 이후 여론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앞으로 내실 있는 분석과 검증을 기대해 본다. (1월 1일 당일에는 <더 커진 ‘격차’... “똑같이 열심히 일했는데”>, <청년들이 뽑은 최대 현안 ‘자산 격차 해소’> 등 리포트에서 앞서 제시된 의제와 관련 있는 이슈들을 다루긴 했지만, 선거와의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아 이것이 대선 기획용인지 여부는 분명치 않았다.)

아울러 정책 과제를 제기하는 것 못지않게 이에 대한 후보자들의 응답을 ‘듣는’ 방식에 전보다 많은 신경을 쓸 것을 주문하고 싶다. 약속 실현이 담보되지 않는 말뿐인 공약을 선대위 고위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단순 소개·전달하는 안일한 방식은 시청자들의 판단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존에 방송 뉴스가 천편일률적으로 해왔던 형식을 기계적으로 답습하기보다 시청자들의 수요와 취향에 맞는 창의적 형식을 고민해보기를 권한다.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라를 구했다”는 다소 과장된 찬사를 듣고 있는 삼프로TV의 대선 후보 인터뷰를 보면 별다른 차별성과 경쟁력을 찾기 어렵다. 대단히 새로운 형식도 아니었고 빈틈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후속 질문 같은 것도 없었다. 다만 시간의 제약 없는 유튜브라는 매체의 특성 덕분에 장시간에 걸쳐 과도한 편집 없이 후보와 대화함으로써 후보자가 얼마나 풍부한 내공을 가지고 있고 지식을 자기 것으로 충분히 소화하고 있는지를 여과없이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후보를 판단할 수 있는 날것 그대로의 재료들을 제공한 것이다. 삼프로TV에 대한 열광적 호응은 기존에 레거시 미디어가 제공하지 못했던 측면에 대한 시청자들의 갈증을 방증한다. 토대와 여건이 상이한 KBS가 삼프로TV를 모방하거나 흉내내서는 안 되겠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이 갈증을 해소하는 전략을 고민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1월 1일 9시 뉴스에서 아쉬웠던 부분은 정책 의제 중심의 검증이라는 기획을 런칭하면서 신년 여론조사 보도를 그보다 앞선 뉴스 제일 첫머리에 배치했다는 점이다. <이재명 39.3%, 윤석열 27.3%... 12%p 격차> 리포트가 톱뉴스였고, <‘한달 여론’이 관건... 인물론 vs 정권심판론>이라는 분석 기사가 뒤를 이었다. 물론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를 오차범위 밖으로 따돌리고 윤 후보의 하락세가 뚜렷하다는 것을 보여준 여론조사 결과라는 점에서 뉴스가치가 높았고 시청자들의 주목을 끌 만한 중요한 뉴스인 것도 사실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톱뉴스에 배치한 판단이 그 자체로 잘못되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뉴스 순서 배치는 뉴스룸의 핵심적 의사결정 대상이고, 뉴스의 배열 안에서 시청자들은 KBS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를 읽어낸다. 보편적 뉴스가치에만 의존해서 리포트를 배치한다면 뉴스는 아무 메시지도, 힘도 없이 밋밋해질 수밖에 없다. 때로는 뉴스가치 기준을 전복하는 배치를 통해 강한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도 있다. 여론조사 결과와 정책 검증 가운데 어느 쪽이 양질의 저널리즘을 실현하기 위한 바람직한 수단인가에 대해서는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자극성이 없다 하더라도 정책 검증에 주력하겠다고 약속하는 리포트를 전면에 배치하고 여론조사 보도를 뒤로 돌렸다면 KBS의 의지를 표현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효과적 방식이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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