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헌법과 직권남용으로 점철된
방통위의 수신료 분리징수 강행은 원천무효다
오늘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법률이 정한 상임위원 5인 가운데 여당측 위원 2인만이 참여해 TV 수신료 분리징수를 위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에 착수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방통위 설립 이래 이런 기형적 구조 아래서 논란이 큰 안건을 속전속결로 의결한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독립성 따위는 안중에 없이 대통령실의 주문을 하청받아 이행하는 ‘방송장악위원회’로 전락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현행 방송법 시행령 제 43조 2항은 “지정받은 자가 수신료를 징수하는 때에는 지정받은 자의 고유업무와 관련된 고지행위와 결합하여 이를 행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방통위는 이번 의결을 통해 해당 시행령 조항을 “고지행위와 결합하여 행해서는 아니된다"로 고치겠다는 것이다. 한국전력의 전기요금 징수를 활용하고 있는 수신료 통합징수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첫 발을 뗀 셈이다. 지난 6월 5일 윤석열 대통령실이 아무런 과학적 근거나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는 엉터리 국민제안 결과를 바탕으로 방통위와 산업통상자원부에 분리징수를 위한 관계 법령 개정 및 후속조치 이행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한지 10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다.
언론노조는 줄곧 윤석열 대통령실발 공영방송 수신료 분리징수 기도가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체계적 프로젝트의 일환이라고 분명히 주장해왔다. 수신료 분리징수 카드로 공영방송의 재원을 흔들고 구성원들에게 혼란을 초래함으로써 경영진을 압박하고, 결국 정권의 입맛에 맞는 낙하산 인사들을 공영방송에 꽂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실의 의도는 누가보아도 명백하다. 심지어 대통령실 주도로 한상혁 방통위원장을 억지로 몰아내고 야당 추천 위원 임명을 미루면서 정원에 미달하는 3인・김효재 대행 체제로 쪼그라든 방통위가 공영방송 재원 구조의 핵심인 수신료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번 의결의 억지스러움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오늘 방통위의 의결은 윤석열 정권의 방송장악 야욕이 드디어 법을 무기로 본격화되는 계기라고 하겠다.
한국 사회의 공론장을 장악하려는 윤석열 정권의 파쇼적 의도를 차치하고 보더라도 이번 의결은 매우 부자연스럽다. 첫째, 이번 의결은 입법부의 권한을 침해하는 행정부의 월권 행위이다. 헌법재판소는 1999년 당시 한국방송공사법 제36조(수신료의 결정) 조항과 관련하여 수신료 금액의 결정이 “납부의무자의 범위, 징수절차 등과 함께 수신료에 관한 본질적이고도 중요한 사항이므로, 입법자인 국회가 스스로 행하여야 하는" 사항이라고 보았다(98헌바70). 이에 따르면 수신료에 관한 본질적이고 중요한 사항인 ‘징수절차’에 대해 행정부가 아닌 국회가 결정권을 가진다. 따라서 이번 방통위의 의결은 수신료 징수절차에 관한 국회의 결정권을 침해하는 월권 행위이다.
둘째, 이번 의결은 수신료 징수의 효율성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상위 법률인 방송법, 그리고 헌재의 판례와 충돌한다. 방송법 제67조(수상기 등록 및 징수의 위탁) 2항은 “공사는 수상기의 생산자ㆍ판매인ㆍ수입판매인 또는 공사가 지정하는 자에게 수상기의 등록업무 및 수신료의 징수업무를 위탁할 수 있다”고 명시해 법률상 수신료 납부 및 징수 업무의 위탁 근거를 분명히 하고 있다. 방송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징수업무 위탁을 별다른 근거 없이 시행령 수준에서 과도하게 제한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또한 2008년 방송법 수신료 조항과 관련된 위헌소원에 대해 헌재는 현행법 합헌 판결(2006헌바70)을 내리면서, “수신료는 공영방송의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하여 … 부담금으로서 입법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며 “수신료 징수업무를 한국방송공사가 직접 수행할 것인지 제3자에게 위탁할 것인지, 위탁한다면 누구에게 위탁하도록 할 것인지, 위탁받은 자가 자신의 고유업무와 결합하여 징수업무를 할 수 있는지는 징수업무 처리의 효율성 등을 감안하여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라고 적었다. 공영방송의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효율적인 수신료 징수’가 필요하다는 것이 헌재의 결정의 요지였다.
이렇듯 수신료에 관한 법률과 헌재의 판례들은 ‘징수절차’가 수신료에 관한 본질적이고 중요한 사항이므로 행정부가 아닌 국회가 결정권을 가지며 징수업무는 그 ‘효율성'을 감안하여 결정해야 한다고 보고있다. 따라서 수신료에 관한 방송법 시행령은 입법부가 정하는 방송법의 ‘징수 위탁’에 관한 규정을 과도하게 침해해서는 안되고, 징수업무의 효율성을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정해져야 한다. 이번 시행령 의결은 방송법의 규정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고, 징수업무의 효율성을 극도로 저해하는 결정이라는 점에서 3권 분립의 원칙과 상위 법률들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이미 윤석열 정권의 방송장악 선발대를 자처하고 나선 방통위는 들으라.
당신들의 깜냥을 넘어서는 이번 방송법 시행령 의결을 스스로 철회하라. 이번 의결은 위헌적인 퇴행이자 법률 위반이다.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얕은 수로 국민들을 선동해 공영방송을 압박하는 극우적인 포퓰리즘이자, 정치적 의도를 앞세워 현행 법체계를 깡그리 무시하여 밀어붙인 처사다. 윤석열 정권의 언론장악 프로젝트인 수신료 분리징수 시도와 방송 통제 시도에 단호히 맞서온 우리는, 방통위의 위헌적・위법적 의결에 관여한 방통위원・공무원에 대한 고발 등 법적 조치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투쟁에 나설 것이다.
아울러 국회의장과 국회에 요구한다.
방통위의 수신료 관련 시행령 개정 추진은 국회의 입법권을 명백히 침해한 직권남용이자, 3권 분립의 헌법정신을 짓밟는 권력의 폭력적 처사이다. 민주주의의 보루인 국회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핵심적 권한이 윤석열 정부에 의해 무시로 침해당하고 무력화되는 상황을 언제까지 용납할 것인가. 국회의장과 국회는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 개정이 입법권 침해임을 명백히 하고, 방통위의 위헌적, 위법적 직권남용을 즉각 중단시켜야 한다. 이 상황을 계속 수수방관하며 국민이 위임한 입법권을 권력에 헌납한다면 국회의장과 국회도 윤석열 정권과 동일한 무게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국회의장과 국회는 방통위의 독주에 제동을 걸고 국회 내 특별기구 등을 설치해 TV 수신료 문제의 합리적 해결을 모색할 공론장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방송장악에 눈이 멀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 윤석열 정권과 방통위는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반드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방송장악 언론통제로 독재의 길을 걷겠다면 그 끝은 역사에 익히 보아온 독재의 말로가 될 것이다.
2023년 6월 14일
전국언론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