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7시간, 사라진 저널리즘
사라진 7시간, 사라진 저널리즘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4.10.1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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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KBS 저널리즘의 성역인가?

조대현 사장이 취임한 뒤 2달여가 지나면서 사내에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돌고 있다. 이럴려고 파업하고 길환영 사장을 몰아냈는가? KBS 뉴스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공영방송 사수의 열기가 사그라지면서 자연스럽게 KBS 보도 또한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특히 대통령과 청와대와 관련된 더욱 그렇다. 최근 세월호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의 행적을 보도한 산케이신문에 대한 검찰의 기소와 관련된 우리 보도는 이러한 목소리가 괜한 우려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KBS 4꼭지, JTBC는 9꼭지 보도

 

검찰이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의 행적과 관련해 전 측근인 정윤회 씨와의 풍문을 보도한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 서울지국장을 출국금지하고 소환 통보한 것은 지난 8월 9일. 청와대가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것을 기사로 썼다’며 산케이신문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고 밝힌 지 불과 이틀 만의 신속한 조치였다. 대통령에 대한 명예 훼손을 이유로 외국 기자를 조사하고 결국 기소까지 한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청와대의 하명을 받은 검찰의 표적 수사가 명백해 보였고, 헌법에 보장된 언론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큰 사안인데다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까지 발생한 기사 가치가 큰 중요한 이슈였지만 우리 뉴스에서는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았다.

지난 8월 11일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일본 외무상에게 산케이 신문 보도에 대해 강력 항의한 것을 보도한 이래 10월 14일까지 두 달여간 KBS 메인뉴스인 [뉴스9]를 통해 이와 관련해 보도된 리포트는 단 4건에 불과했다. 종편인 JTBC가 같은 기간 보도한 9꼭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보도량이었다. KBS 뉴스가 이 사안을 얼마나 안이하게 바라봤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과정에서 검찰 조사를 우려하는 ‘외신기자 클럽’의 성명과 산케이 보도 번역자에 대한 조사, 가토 지국장에 대한 출금 연장, 일본 언론의 반응 등 이 사안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팩트들은 우리 뉴스에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KBS

SBS

JTBC

8/11

산케이, ‘박대통령 행적 보도’...외교 갈등 비화

 

산케이 지국장, 출두 연기...한일 외교전 비화 조짐

8/25

 

 

정윤회 씨 “세월호 당일 청와대 간적 없다”...검찰 조사

9/10

 

 

산케이 지국장 ‘기소 방침’...국경없는 기자회 “기소 말라”

9/15

검찰 “정윤회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 안 갔다”

“정윤회, 그날 靑 안 갔다”...검찰, 기소 여부 고심

 

9/22

 

 

산케이 보도 번역자도 기소 가닥...박 대통령 발언 의식?

10/2

 

 

산케이 간부, 오늘 3번째 검찰 조사...출국금지 연장

10/6

 

 

가토 지국장 출국금지 6번째 연장...일본 신문 ‘비판’

10/8

‘박 대통령 명예훼손’ 산케이 지국장 법정 선다

 

 

10/9

 

日, “언론 자유 침해”...산케이 前 지국장 기소 반발

검찰, 산케이 전 지국장 기소...외신클럽 ‘심각한 우려’

10/9

 

 

일 언론, 산케이 특파원 기소에 반발 “독재국가 수법”

10/9

 

 

‘대통령 명예 훼손’ 해외 특파원 기소, 과연 적절한가?

10/10

 

“당연한 조치” vs “국제 망신”...산케이 논란 공방

 

10/14

산케이 전 지국장 출국정지 연장…“법 절차 정당”

 

 

 

정부 발표만 받아쓰기...SBS만도 못한 보도

 

보도량보다도 더욱 심각한 건 보도 내용이었다. 그나마 보도된 4개의 리포트는 모두 청와대와 외교부, 검찰 등 정부 발표만을 일방적으로 받아쓴 기사들로 검찰 수사와 기소에 대한 문제점이나 이와 관련한 일본 정부나 해외 언론 등의 비판적인 입장에 대한 보도는 전혀 없었다. 4건의 리포트 전체 보도 문장 27개와 녹취 3개 가운데 검찰 수사에 부정적 입장을 가진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건 단 3개 문장뿐이었으며 녹취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리포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안을 처음으로 보도한 <산케이, ‘박대통령 행적 보도’...외교 갈등 비화>(8월 11일) 리포트에서는 산케이신문 보도의 토대가 된 조선일보 칼럼과 의혹의 당사자인 정윤회 씨가 각각 ‘국내 언론 칼럼’과 ‘옛 측근인 정모씨’로 익명 처리돼 사안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게 했다. 또 <검찰 “정윤회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 안 갔다”>(9월 15일), <‘박 대통령 명예훼손’ 산케이 지국장 법정 선다>(10월 8일) 두 리포트는 원고의 대부분이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만으로 채워졌다. 방송 3사 가운데 우리만 단독 보도한 <산케이 전 지국장 출국정지 연장...“법 절차 정당”>(10월 14일) 리포트 또한 이 사안이 법적 문제지 외교적 문제는 아니라는 우리 외교부 대변인의 주장을 전달하기에 급급했으며, 당초 취재기자가 쓴 초고에 있었던 일본 정부 관계자의 녹취는 데스킹 과정에서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반해 JTBC는 말할 것도 없이 민영방송인 SBS만 해도 ‘일본 정부나 언론 외에도 주요 외신들이 대통령의 행적 보도는 공익을 위한 것인 만큼 언론 탄압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또 정 씨가 당일 청와대에 없었다고 해서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해 세간의 의구심이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9월 15일)라며 검찰의 수사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또한 산케이신문 지국자에 대한 검찰의 기소 다음날인 지난 9일에는 <日, “언론 자유 침해”...산케이 前 지국장 기소 반발> 리포트를 통해 일본 주요 언론과 일본 정부의 비판적인 반응은 물론 ‘한국 검찰의 수사를 처음부터 주목하고 있으며 미국은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지지합니다.’라는 미 국무부 대변인의 녹취를 인용하며 미국 정부의 비판적 반응을 전했으며, 한 발 더 나아가 ‘미국과 UN 등은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하는 우리 법 조항이 권력에 대한 비판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며, 수정을 권고해 왔습니다.’라며 언론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현행법의 문제점까지 지적했다.

 

특히 아쉬운 건 뉴스 편집이 취재부서의 역량조차도 받쳐주지 못한 점이다. 검찰이 산케이신문 지국장을 기소한 지난 8일 저녁 7시경 언론사 가운데 관련 사실을 처음으로 보도한 것은 KBS 법조팀이었다. 당연히 방송 3사 가운데서도 유일하게 당일 메인뉴스에서 리포트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뉴스9]에서는 후속 보도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9일에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일본과 미국 정부가 입장을 밝혔고, 일본 언론들이 일제히 주요 뉴스로 보도하면서 외교적 파장이 일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날 단독 보도까지 했던 KBS 뉴스는 더 크게 보도하지는 못할망정 아예 후속 보도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뉴스가 이 사안과 관련된 부정적 반응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편집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KBS 뉴스, 정권과 언론자유 어느 편에 설 것인가?

 

‘국경 없는 기자회’는 성명을 통해 이번 검찰 수사와 관련해 “국가재난 시 대통령 일정에 대해 정확히 밝히지 못하는 것은 분명히 공공의 이익에 관한 문제이며, 뉴스 매체가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들의 행동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라고 밝혔다. 심지어는 보수 신문인 동아일보조차 칼럼(10월 13일)을 통해 “대통령과 외신의 갈등이 수사로까지 번지는 일은 수십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로 결국 기소 사실만 남고 교훈은 없을 것”이라며 “산케이 전 서울지국장 기소는 패착이다”라고 주장했다.

현재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과 청와대에 대해서만큼은 보수신문만도 못한 게 KBS 뉴스의 현실이다. 대통령 단 한 사람의 명예를 위해 검찰과 외교부 등 국가기관이 총동원돼 이웃나라와의 외교적 마찰까지 불사하고 있는 참담한 상황에 대해 비판을 하지 못한다면 <공정성 가이드라인>을 100번 만든다고 누가 공영방송 KBS가 공정하다고 보겠는가? 권력의 ‘감시견’은 못 되더라도 ‘애완견’은 되지 말아야 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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