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정상에서 국민의 방송을 외치다
제국의 정상에서 국민의 방송을 외치다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4.11.1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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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진선-유원중 조합원의 존뮤어트레일 360km

 지난 7월 30일부터 8월 15일까지 유원중 조합원과 함께 세계 3대 트레일로 알려진 미국시에라네바다산맥의 존뮤어트레일을 걸었다. 북에서 남으로 360KM를 걸었다. 14,000미터를 올라가고 12,000미터를 내려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삶의 길에서 가장 가깝게 내 자신에게 다가간 시간들이었다. 걷기를 선택한 내 판단은 꽤 쓸 만 했다. 그 것도 절대 고독의 공간 존뮤어트레일에서~~

해발 4421미터 휘트니산 정상. ‘제국’의 본토 최정상에 ‘국민의 방송’을 외쳤다. 다 쳐다보더라.

 매써패스에서부터 부슬 부슬 내리던 비가 굵은 방울로 바뀌더니 이내 우박으로 돌변한다. 모자에 부딪히는 소리가 맹렬하다. 비옷 위로 맞으니 아프다. 크고 작은 바위밖에 없는 3500미터의 고개를 올라가던 길이다. 3일째 비에 우박을 맞고 있다. 콩 볶는 듯 한 천둥소리가 공포를 몰고 온다. 폭발음이 들리고 저쪽 바위가 갈라진다. 번개가 떨어지고 있다. 이대로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황급히 숨을 곳을 찾는다. 붉은색 바위는 철분이 있어 위험하다. 중간 크기의 바위를 찾아 배낭을 맨 채 달음질친다. 욕이 절로 나온다. 집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2014년 8월 11일,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따라 펼쳐진 존뮤어트레일의 고개인 핀투패스에서 펼쳐진 그림이다. 7월 30일에 퍼미션을 받아 입산을 했으니 꼬박 13일째다. 우리가 영어책에서 이름만 본, 그러나 미국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관심 없는 요세미티국립공원으로 들어와서 250KM를 넘게 걷고 있었다. 아침 해가 뜨면 걷기 시작한다. 하루 종일 걸어서 해지기 전에 텐트치고 저녁을 먹는다. 어둠이 내리면 잔다. 이 짓을 13일째 반복하고 있다. 서서히 내 밑천의 바닥을 보기 시작했다.

 2014년은 내가 KBS에서 월급을 받은 지 만 19년을 넘기고 20년을 채우는 해다. 근속휴가를 써야하는 해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걸어보고 싶었다. 버걱거리는 무릎의 시큰함을 느끼고 싶었고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와 맞서고 싶었다. 문명의 이기와 떨어진 공간에서 서보고 싶었다. 그렇게 고른 곳이 존뮤어트레일이다. 요세미티에서 시작해 미국본토 최고봉인 휘트니 산 정상에서 끝나는 340KM의 장거리 트레일이다. 여기에 휘트니포털까지의 거리를 더하면 360KM가 넘는다.

존뮤어트레일은 1년에 600명정도로 인원을 제한한다. 나름 고독의 공간이다.

  존뮤어트레일은 미국국립공원아버지라고 불리는 존 뮤어를 기리기 위해 1938년에 완공한 트레킹 트레일이다. 편의시설이라고는 몇 군데 나타나는 보급용 목장이 전부다. 휴대폰도, 인터넷도, 신문도, 텔레비전도 산속에 있는 동안은 접근 불가능한 속세의 이기일 뿐이다. 오로지 내가 먹고 자고 입을 것을 지고 걷기만 하면 된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우박이 오면 우박을 맞고 곰을 피해 건조음식과 라면과 초코파이로 17일을 연명하면 다시 문명세계로 돌아온다. 모든 행위의 시작과 결말이 나에 의해 이루어진다. 내 자신을 가로막던 많은 장막들이 사라지고 온전히 나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에 들어선다.

요세미티국립공원의 캠프장으로 가는 길. 저 바위 밑에서 하루 머물고 산으로 올라간다.

 트레일의 초반부는 요세미티국립공원이다. 푹 파인 계곡과 끝없이 뻗어나간 나무들을 보면서 감탄한다. 그래도 걷는다. 고도를 올릴수록 넘어진 침엽수들이 고통으로 일그러진 뿌리를 드러내고 길을 막는다. 3000미터 가까이 다가서면서 산소부족으로 호흡이 거칠어지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과 자연의 변화에 힘들어할 틈이 없다. 폭포를 지나면 거친 강물이 흐르고 거대한 숲을 지나면 끝없는 언덕이다. 건너편은 거대한 암봉이 이어진다. 고갯마루에서 보이는 풍경은 ‘반지의 제왕 세트장’이다. 우리는 그저 걷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자연이 책임지니까!

 4일째부터는 그림 같은 호수들을 좌우로 누리면서 걷는다. 겨우내 쌓인 눈이 녹은 물이라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손을 넣으면 시리다. 이 물을 정수해 마시고 식사도 해결한다. 호수 주변으로 곳곳이 캠프사이트다. 호수에는 송어가 산다. 낚시허가를 받았다면 송어낚시를 던져도 된다. 해발 3000미터가 넘는 고원지대에 널려있는 새파란 호수들, 그 위에서 낚시를 즐기고 캠핑을 한다. 흔히 말하는 그림 같은 풍경이다.

존뮤어 할아버지의 이름을 딴 뮤어고갯마루에 있는 뮤어 오두막

  우리의 보급처는 뮤어트레일목장이었다. 이곳에서는 인간욕망의 작은 실패를 목격한다. 음식이 넘치고 무게를 덜기 위해 버린 멀쩡한 짐들이 넘쳐난다. 건조 김치와 신라면이 보이고 볼펜에 수첩에 약품까지 챙길 수 있다. 실제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두려움과 욕심이 삶에 무게를 더한다. 그래도 이 날은 원 없이 먹는 날이다.

불놀이는 항상 재미지다. 물론 따뜻함을 위해 피운 것이다.

 뮤어랜치를 지나면서 트레일은 급변한다. 혹성탈출을 찍어도 무방할 고원의 황량한 풍경이 이어진다. 3500미터가 넘는 고개를 하나씩 넘는다.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우박폭풍에 휩싸인다. 우박이 강물처럼 흐른다. 우박은 녹지 않고 눈처럼 쌓여있다. 3-4일을 계속해서 맞으니 집생각이 절로 났다. 나무 아래에서 입을 부딪치며 뜨끈한 김치찌개에 소주 한 병을 떠올렸다. 그걸 먹으려면 걸어야한다. 얼마 안 남았다.

 8월 15일 새벽, 마지막 날이다. 이마에 불을 밝히고 휘트니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어둠 속에서 봐도 오로지 바위뿐이다. 일출을 보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지만 체감온도는 영하로 떨어진지 오래다. 바람까지 제대로 분다. 넓은 너덜고원이 나오고 사진에서 보던 작은 오두막이 보인다. 정상이다. 저 멀리 네바다의 사막에서 불쑥 해가 뜬다. 17일을 기다린 일출치고는 초라하다. ‘제국’의 정상에서 미션을 수행한다. 이제 내려가자. 치즈버거에 맥주가 기다린다.

매써패스 정상에서 나름 즐거워하는 모양이다. 이날 오후에 날벼락을 맞을 뻔했다.

 지나보면 모든 것이 추억이고 꿈같은 시간들이라고 말한다. 걷기의 즐거움 속에 빠져있던 그 순간들은 꿈같은 시간이었다. 돌아와서 두 달 가까이 버걱거리는 도가니로 고생도 했지만 다시 서고 싶은 그 길이다. 끝으로 초보임에도 끝까지 함께해준 유원중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가 없었으면 끝까지 안갈 수도 있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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