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특집' 계획은 당장 중단돼야
'이승만 특집' 계획은 당장 중단돼야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0.09.1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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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이 점심 자리에서 던진

한마디에 시작된 기획

지난 7월 중순, 김인규 사장이 6.25 특집 방송팀과 점심을 같이 했다. 프로그램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다 사장이 방송을 보니 이승만이 대단한 사람이고, 방송에서 한번 다뤄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말을 던졌다. 그러자 옆에 있던 길환영 콘텐츠 본부장이 안 그래도 이런 기획을 이미 준비하고 있다고 사장의 말을 받았다. 콘텐츠본부에서 이 기획이 준비되고있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일선제작진들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며칠 후 길환영 본부장은 역사팀에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이병철, 정주영 등 한국 현대사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5명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다른 프로그램에서 세 명의 PD들이 차출돼 급하게 제작팀도 꾸려졌다. 하지만 제작진의 입장에서는 급작스럽게 떨어진 이 제안을 수긍할 수 없었다.

우선 5명의 선정기준이 자의적인 데다, 기업인인 이병철, 정주영의 경우 현대사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고, 특히 이병철 전 삼성 회장의 경우 특정 기업을 홍보한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 정도의 논란 끝에 제작진과 본부장은 여론조사와 전문가 참여 등의 객관적인 방법으로 인물을 선정한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아이템 선정에 객관성이 확보되고 간섭을 받지 않는다면 프로그램을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제작진의 판단이었다. 여론조사 방법에 대해 KBS 방송문화연구소 담당자와도 협의가 시작되고 제작비 이야기도 오갔다. 그런데 지난 8월 말 이 기획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뒤집히게 된다.

사장, 박정희와 김대중은 No!

그럼 이승만 특집으로?

보고를 받은 사장이 박정희,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을 다루는 것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 딸인 박근혜 전대표가 유력 대권주자라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라이벌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생존해 있기 때문이라는 것.

다섯 명 중 이병철, 정주영 전 회장은 이미 논의에서 거의 배제가 돼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자 길환영 본부장은 당초의 계획을 뒤집어 박정희, 김대중은 빼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다루라고 지시했다. 제작진은 도저히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년에 이승만 전대통령을 집중 조명해야 할 계기가 없을뿐더러 수신료 현실화 국면에서 KBS가 뉴라이트의 이념을 전파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급기야 세 명의 담당 PD들은 애초 기획안과 달라진 기형적 안으로는 더 이상 프로그램을 할 수 없다는 거부의사를 밝혔다. 사내에서는 이로서 이미 기획이 변질된 이 프로그램은 당연히 자동 소멸될 것으로 예측됐다.

이미 누더기가 된 기획,

그래도 이승만은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본부장은 이런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방송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나름의 절충안도 냈다. 그런데 그 절충안이란 것도 황당하다. 현대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 10명을 선정해 방송을 하되, 이승만은 당장 내년에 방송을 하고, 나머지 인물들에 대해서는 방송일자를 못 박지 말고 향후에 방송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승만 한 사람만 방송을 하고 끝날 가능성이 높은 기가 막힌 기획이다.

2008년 뉴라이트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담은 ‘한국 근현대사 대안교과서’를 발간하고 8.15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다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최근 보수신문에서는 이승만을 재조명하자는 기사가 부쩍 많이 실리고 있고, 김문수 경기지사는 광화문에 이승만 동상을 세울 것을 주장하는 등 보수우파진영은 ‘이승만 국부론’의 설파에 열중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위한 논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상황이 이런데 KBS 내부에서조차 전혀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방송을 강행한다면 KBS는 뉴라이트의 이념을 대변한다는 비난을 피해나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승만을 포함해 인물을 통해 한국의 현대사를 조망하려고 한다면 아이템의 선정의 객관성과 제작의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사장의 말 한마디에 프로그램의 기획이 급조되고 엉뚱한 방향으로 왜곡된 과정을 돌이켜볼 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본부장은 자신이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기획이라고 하지만 이미 그 기획은 사라져버렸다. 사내에서 ‘뉴라이트판 인물현대사’니 ‘건국의 아버지 특집’이란 별칭으로 불리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이미 기획단계에서부터 누더기가 되었다. 이승만 특집계획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이밖에 '청와대 인사시스템만큼 부실한 KBS 인사검증보도', '지금 KBS1라디오에서는...' 등 보도와 라디오 관련 공방위보고서도 있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KBS본부_특보24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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