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다큐’, 한국사회는 언젠가 책임을 물을 것이다.
‘이승만 다큐’, 한국사회는 언젠가 책임을 물을 것이다.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1.10.0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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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다큐’, 한국사회는 언젠가 책임을 물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 <초대 대통령 이승만> 3부작은 김인규 사장의 잘못된 역사관, 강제된 기획 의도가 부른 실패작이다. 진실성과 역사성이라는 측면에서 KBS 역사 다큐멘터리의 대단한 후퇴다. 기획의 출발점인 “이승만은 대단한 사람”이라는 김인규 사장의 지난해 발언 한마디가 긴긴 파문과 굴곡을 예비했고, 애초 ‘이승만’을 새롭게 조명해야할 하등의 학문적 진전과 사료적 필요가 없었던 점이 제작진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논란이 있다면 뉴라이트 진영이 정치적으로 의도한 소란이지 이승만에 대한 학계의 부정적 평가는 끝났고 논쟁은 없다. 그렇게 강요된, 6억 5천만원을 투입한 ‘이승만 3부작’은 결국 ‘승자의 눈으로 본 역사, 합리화한 인물 다큐’로 결론지어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승만의 공과를 함께 다루기는 했다. 그러나 공(功)에서는 미화하고 과(過)에서는 면죄부를 주는 이중구조였다. ‘이승만의 강점은 상세히 다루고 반면 약점은 간단히 다룬다는 점’, ‘잘한 것은 이승만의 공이고 잘못한 것은 상황 탓으로 돌린다는 점’, ‘어쩔 수 없이 잘못한 일을 다룬다해도 비고의적이거나 시청자의 동정심에 호소하는 방식을 쓴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승만이 ‘치명적으로 잘못한 일은 아예 누락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언론 비평은 그래서 당연한 지적이다. 이번 이승만 다큐의 목적은 분명하다. ‘이승만을 현재 어떻게 다시 볼 것인지’ 묻는 3부작 마지막편 클로징은 이승만을 긍정적으로 되살리려는 의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 이승만의 독립운동 실체에 침묵했다!

“우리는 어떤 반일적인 내용도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보편적인 인류애를 강조할 뿐이다. 이 지역 일본인 신문들은 내가 반일 감정을 일으킨다는 오해를 하지 말기를 바란다”

(호놀룰루 스타블레틴 1915년 6월 17일. 이승만 영문 기고문 中)

자신이 세운 학교에서 반일적 내용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독립운동가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1909년 안중근 의사가 히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의거를 “무법한 개인행동”이라고 폄하했고, 1932년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대해서도 “어리석은 짓들”이라고 평가했고, 항일의열투쟁에 대해서도 부정과 조소를 보낸 이른바 독립운동가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번 이승만 다큐는 이처럼 이승만의 감춰진 실체, 진면목에 대해 침묵했다. 국가적으로, 그리고 교과서에서 자랑스러운 독립투쟁으로 기록하고 있는 역사적 사건을 이승만은 과거에 모두 부정했고, 이번 이승만 다큐는 이같은 모습의 이승만에 대해 눈을 감고 있다. 이승만의 하와이 체류 시절의 분열적 태도와 ‘대통령 참칭’, 돈 문제 등에 대해 철저히 외면하면서 어떻게 이승만의 독립운동과 노선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가능한가?

- 잘못은 모두 주변 상황에 있다?

8.15 해방의 역사적 의의는 본질적으로 일제로부터의 독립, 그리고 친일파 청산을 통한 민족 정체성 확립이다. 그러나 이승만은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오히려 친일파를 중용했다. 이번 ‘이승만 다큐’는 “친일파 청산이 안된 것은 인재 부족 때문”이며, “반민특위도 중요하지만 한반도가 공산화될 위험성이 크니 이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집중하고자 한 것”이라는 상황 논리로 이승만의 친일파 등용을 변호했다. 반공이라는 이유 하나면 모든 역사적 범죄가 면죄받는가? 당시 친일파의 변명 논리를 KBS가 교묘하게 옹호하는 것이 어떻게 역사 다큐의 관점이 될 수 있는가?

‘4사5입’ 개헌에 대한 묘사도 당혹스럽다. 이승만이 집권 연장을 위해 도입한 해괴한 ‘4사5입’ 개헌을 마치 수학자의 잘못인 것처럼, 수학자들이 이승만에게 이 논리를 주입했기 때문에 받아들인 것처럼 인터뷰로 처리하고 있다. 이승만의 헌정질서 유린을 한낱 수학자의 권고라는 주변의 책임으로 호도하는가? 4사5입 개헌은 “절차상 정족수에 미달한 위헌적인 개헌이고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중임제한 규정을 철폐했다는 점에서 평등의 원칙마저 위배되는 헌법개정”이었다는 점이 역사적 평가다.

3선도 모자라 전국의 깡패를 동원하여 4선을 도모한 3.15 부정선거에서도 이승만의 책임은 빠져있고 자유당 강경파가 주도한 사건으로만 묘사됐다. 180여 명이 숨지고 6천여 명이 다친 4.19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당시 자유당 강경파에 의해 정보가 차단되어 그릇된 판단을 했을 뿐이고, 오히려 나중엔 ‘울먹이며 부상자를 위로하는’ 이승만의 감성적 모습을 보여주며 ‘선거에 문제가 있으면 하야할 생각’이 있다는 책임지는 자세를 부각시켰다.

- 업적은 이승만 개인의 공이다?

1953년 휴전직전 한국이 미국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경제원조를 제공받는 과정에서 이승만 다큐는 거제도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승부수’를 걸어 이룬 개인의 업적으로 묘사했다. 전쟁뒤 부족했던 전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자력에 집중 투자한 점에서도 명확하게 이승만 개인의 치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승만이 단독정부 수립 노선을 결정하고 국내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뛰어난 정치 행보와 연설, 선동 능력이 있었다”고 언급됐다. 급기야 이승만이 하야를 결정하지 않았다면 4.19가 성공하지 못했고, 중동처럼 혼란해졌을 것이라는 궤변에 가까운 인터뷰까지 등장해 절정을 이뤘다.

이번 ‘이승만 다큐’는 커다른 후유증을 남겼다. 사장 발언 한마디에 대규모 다큐멘터리가 강요되고, 제작자율성은 실종됐다. ‘승자 이승만 다큐’같은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점은 두고두고 오명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미 부정적으로 평가가 끝난 역사적 인물을 공영방송 KBS를 통해 다시 부활시키려 했다는 점은 ‘과연 KBS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뼈아픈 질문을 한국 사회에 던졌다. 그 대답이 고스란히 부메랑이 되어 KBS에 돌아와 준엄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진정 두렵다.

2011년 10월 4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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