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戀書] 파업 7주차에 드라마PD들이 드리는 글
[戀書] 파업 7주차에 드라마PD들이 드리는 글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2.04.1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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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_파업 7주차에 드라마피디들이 드리는 글

 

당신의 걱정 어린 눈빛을 뒤로한 채 별관을 떠난 지 벌써 40여일이 지났습니다. 이맘때가 되면 모든 일 잘 매듭짓고 돌아오리라, 당신을 안심시키고 또 안심시켰던 그 날이 떠오르네요. 하지만 세상일이란, 늘 그렇지요. 당신께 드린 약속은 헛된 바람이 되고 기약 없는 기다림이 되어, 이제 당신께 얼마나 죄송한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잘 있다고, 힘들고 어렵지만 그만큼 더 강해지고 깊어지고 있다고, 먼저 당신을 안심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어쩌면 빨리 끝낼 수 있다고 쉽게 속단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이 두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린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지난 4년간 KBS 보도국이 얼마나 황폐해졌는지, 그 황폐한 땅에 추적60분을 볼모로 내어준 교양피디들은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지난 파업때 라디오피디들은 왜 전원 무계결근 처리되었는지를 알게 되었지요. 늘 먼나라 남의 일처럼 느꼈던 일들을 이제 내 몸에 난 상처처럼 생생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상처를 통해 까마득히 잊고만 있었던 우리의 상처를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네, 당신의 안쓰런 얼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압니다. 커다란 국가 권력과의 싸움이지요. 그 권력은 뻔뻔하고 그를 심판할 국민의 눈과 귀는 아직 열리지 않고 있지요. 조금만 기다리라고, 다치지 말라고 간절히 말하고 있는 당신의 따뜻한 마음,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국민의 눈과 귀를 열어야 함을 압니다. 그래야 우리가 우리의 깊은 상처를 치유할 힘과 지혜를 얻을 수 있음을 압니다. 그래서 이 싸움, 꼭 이겨보고 싶습니다. 아니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서 우리의 전부를 던져 지금 싸워보고 싶습니다. 설사 당장은 진다해도 그래야만, 그랬을 때라야만 언제고 다시 피워 올릴 희망의 싹을 기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간절히 말씀드립니다. 우리의 대오는 우리 싸움의 생명줄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대오를 튼튼히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왜 사무실에 얼굴 한 번 비추지 않냐고 어쩌면 그리 냉정하냐고 우리를 나무라지 말아주세요. 사무실에서 촬영장에서 당신의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짧은 안부 나마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그곳에 가면 우리가 아무리 굳은 다짐을 하더라도 금새 흔들리고 맙니다. 피곤에 시뻘겋게 충혈된 당신의 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만 잠시 다른 생각을 하게 되곤 합니다.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촬영할 순 없을까?” “지금 저 서류작업 내가 하면 금방 할텐데...” “예고 컨셉을 다시 잡아 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작은 이탈이 우리 대오의 작은 틈을 만들고 그 틈은 분명 순식간에 커져버려 우리 싸움의 생명줄을 끊어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린, 별관에 갈 수 없답니다. 비인간적이고 못된 후배고 동료가 될지언정, 지금은 우리가 우리 싸움을 지켜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신, 이제 우리 걱정은 내려놓아 주세요. 당신의 동료가 당신의 후배가 당당히 세상과 맞붙고 있는 지금 이 광경을 지켜봐 주시고 우리를 응원해주세요.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우린, 함께 같은 길을 걷고 있을 겁니다. 그렇게 우리의 아름다운 드라마가 다시 시작되겠지요.

 

언제고 그날을, 당신을, 기다립니다.

 

 

 

2012년 4월 18일 수요일

파업에 참가하고 있는 드라마 피디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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