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국 후배 PD] 예능국 선배님들께 호소합니다
[예능국 후배 PD] 예능국 선배님들께 호소합니다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2.05.0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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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국 선배님들께 호소합니다

 

 

 

 

파업 65일차.

선배님, 어느덧 두 달이 넘어갑니다. 대한민국의 웃음을 책임져 왔던 예능PD들이 자식 같은 프로그램을 놓은 지 벌써 두 계절이나 지나고 있습니다. 한국공영방송의 새로운 역사를 쓴다는 자부심으로 오늘도 우리는 편집실 대신 투쟁의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램 밖에 모르는 우리는 야외촬영 및 밤샘편집 금단증상을 앓아가며, 떨어지는 시청률에 하루하루 가슴을 졸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늘 서로를 보며 웃고 있지만 TV를 보고 웃지 못합니다. 아니 차마 TV도 켜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프로그램 밖에 모르는 바보들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손이 근질근질하고, 입이 들썩들썩하더라도 아직은 돌아갈 수 없습니다. 자식 같은 내 프로그램이 나를 찾으며 칭얼대고 보채도 지금은 눈길 한 번 줄 수가 없습니다. 내 손을 타지 못해 프로그램이 망가지고 상태가 나빠지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우리는 더욱 더 차갑게 손을 뿌리쳐야 하고, 더욱 더 매몰차게 돌아서야만 합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바보같이 좋아하던 이 회사가 지난 3년 내내 처참히 망가지고 손가락질 받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말해야 할 입에 재갈이 물린 라디오, 시사PD 동료들의 울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취재현장에서 국민들께 철저히 외면당해야 했던 기자, 카메라 동료들의 치욕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말 못하고 죽은 듯 살았던 아나운서, 경영, 엔지니어 동료들의 괴로움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특보사장과 부역자들이 시키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온 프로그램을 눈감고 귀 닫은 채 만들어내는, 영혼 없는 기계가 되어가는 바보 같은 우리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부끄러움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평생을 자괴감에 곪은 속을 안고 <월급 받으니까 행복해>하는 기계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바보같이 내 프로그램만 생각할 수는 없었습니다.

 

파업 64일차.

날이 갈수록 특보 사장의 회유가 거세지고, 월급이 안 나오고, 징계를 받아도 바보 같은 우리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헛똑똑이들이 떠들어도 파업이 길어져도 바보들의 대오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더욱 꿋꿋하고 당당한 가슴으로 양심의 길, 승리의 길을 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능국 선배님들, 이 길이 KBS를 위하는 바른 길임을 확신하기에 앞으로 70, 80, 100일이 넘어가더라도 우리는 계속 바보같이 웃으며 갈 것입니다. 프로그램이 생각나서 눈물이 나더라도 소매로 한번 슥 닦고 또 그렇게 웃으며 함께 할 것입니다. 언젠가는 내 프로그램이 바른 환경에서 더 밝게 자랄 것이라는 바보같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능국을 진정 위하는 이 길을 선배님들과 함께 걷고자 합니다.

 

 

201259일 파업 65일째

예능국 후배 일동

 

 

30기 박석형 김해룡 이예지 손지원 윤고운 박덕선

31기 이동훈 최승희 고국진

32기 손자연 강봉규 강승연 이민정

33기 이태헌 이선희 박현진 전온누리

34기 원승연 유정아 유호진 박민정

35기 안상은 손수희

37기 박인석 박형근

38기 이창수 신수정 유일용 이승건 김성민 이정규 이상 3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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