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2.12.1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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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

2013[드라마 스페셜] 예산이 절반으로 깎일 예정이다. 현재 편당 8000만원이던 예산이 4000만원으로 반띵되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예산인지는 KBS 직원이라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웬만한 한류스타 드라마 편당 출연료가 1억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특정 교양 프로그램의 편당 제작비가 4000만원이었던 경우도 있었다.

KBS의 공영성을 결정적으로 훼손한 이승만 특집 다큐’ 3부작 제작에 무려 65000만원의 예산이 배정되었다. 편당 22000만원이다. 마찬가지로 친일파 미화 논란을 빚었던 백선엽 다큐제작을 위해 백선엽의 출연료로 600만원을 책정했다.

임기 내내 수없이 많은 해외출장으로 마일리지 쌓으려고 사장했다는 비아냥을 듣던 김인규 전 사장. 그가 임기 종료 2일 전에 다녀온 뉴욕 왕복 항공료만 하더라도 족히 1300만원(대한항공 1등석 기준)은 된다.

그런데 [드라마 스페셜] 1편 예산으로 4000만원이라... 도대체 4000만원으로 70분짜리 드라마를 어떻게 만들라는 말인가? 혹시 그런 노하우가 있다면 이런 예산을 배정한 경영진이 직접 시범을 보여주기 바란다.

KBS의 양대 재원은 수신료와 광고수입이다. 수신료와 광고수입은 콘텐츠의 제작과 유통을 통해 확보된다. 그리고 가장 많은 수입을 창출하는 핵심 콘텐츠가 바로 드라마다.

[드라마 스페셜]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수익성이 안 좋을지 몰라도 KBS 드라마 전체의 경쟁력을 예비하는 씨앗과 같은 존재다. 과거와 현재를 대표하는 수많은 스타배우, 작가, 그리고 연출자들이 단막극을 통해 데뷔하고 역량을 다져갔다. 단막극의 역할과 노고를 치하하고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말도 안 되는 예산을 배정해 고사시키려는 경영진의 행태는 거의 배임행위에 가깝다.

최근 4~5년을 돌이켜보면 사측은 경영 상황이 안 좋을 때마다 가장 우선적으로 제작비부터 줄였다. 너무나도 손쉽게 제작비부터 손을 댔다. 하지만 방송국에 있어 제작비는 생산비인 동시에 미래를 위한 투자 비용이다. 제대로 된 회사라면 이런 식의 경영은 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비용은 악착같이 줄이지만 회사의 경쟁력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빚을 내서라도 추가 투입한다. 세계적인 기업들의 성공담 속에서 이런 사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KBS에 조직의 경쟁력을, 방송의 미래를 걱정하는 경영진은 없다. 연단위로 환산되는 단기적 측면의 예산 수지 균형만을 고민할 뿐이다.

내년 예산 구성을 살펴보면 KBS 경영진의 해사적 경영 행태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2013KBS의 전체예산(비용예산 기준) 대비 제작비 비중은 13%. 이는 지난 10년여 중 최저치다. 2004년의 경우 약 17.3%였다. 2013년 제작비 비중이 10년 전의 87% 수준인 셈이다.

절대 금액 자체도 줄었다. 2004년도에는 약 2400억원 정도였는데 2013년 제작비는 2076억원이다. 그렇다고 전체 예산의 절대 규모가 줄어든 것도 아니다. 2004년도 13700억 정도였던 전체 예산은 꾸준히 증가해 내년도에는 약 16000억원으로 책정되었다.

KBS의 제작비 규모는 채널별 금액으로 살펴보면 지상파 3사 중에서도 최하위다. 이는 프로그램 품질에 대한 악영향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신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제작비의 절대 규모 자체가 작다 보니 부족한 제작비를 협찬이나 간접광고로 채우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제작진에게 정 프로그램 만들고 싶으면 알아서 앵벌이 하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것은 협찬이나 간접광고를 유치하면 할수록 기본 예산 배정액이 오히려 줄어든다는 것이다. 제작진의 앵벌이가 프로그램 제작의 전제조건이나 의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경영의 논리로나 보편적 인간관계의 논리로나 말이 되지 않는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

진정한 농부라면 당일의 양식만을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농부 자신은 추운 겨울날 쌀이 떨어져 죽게 되어도, 살아남은 자식들은 남겨진 씨앗으로 그 이듬해 봄 농사를 지어 먹고 살 수 있게 된다. 농부가 남긴 것은 씨앗이 아니라 희망이다.

드라마국 PD들에게 [드라마 스페셜]은 씨앗이다. 물을 주고 돌보지는 못할망정 빼앗지는 말라. 희망이 없으면 미래도 없다.

2012. 12. 17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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